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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달하 Jul 14. 2023

세상에 좋은 엄마는 없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들이 있을 뿐


유럽에서는 일 년에 한두 번씩 2-3주 정도 긴 휴가를 쓰는 직장인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회사는 여름과 겨울에 2주씩 필수적으로 휴가를 써야 하는 규정까지 마련하고 있어, 7-8월이나 12월이면 모두들 설레는 마음으로 긴 휴가를 계획한다. 원래도 눈치 안 보고 휴가를 잘 쓰기는 했지만, BCG에 오고 나서 나의 휴가는 조금 더 대담해졌다. 프로젝트 중에 출장도 많고 야근도 잦아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못 보내는 대신에, 지난겨울, 육아휴직을 포함한 6주간의 휴가를 시작으로, 이번 여름에는 아예 2 달이 넘는 휴가를 계획해서 실행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보러 간다는 공식적인 명분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도 이번 여름에는 이든이의 방학에 맞춰 집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맞벌이 중인 엄마 아빠 때문에 방학이나 긴 연휴에 낯선 곳에서 여름캠프나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했던 이든이었기에, 올해만큼은 억지로 다른 곳이 보내지

않고 원하는 것 실컷 하며 놀게 해 줄 요량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리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해서인지 학교에 가지 않는 아들 녀석과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꽤나 말을 잘 듣기로 동네에서 소문이 난 이든이지만, 밥도 차려줘야 되고 (그럼 또 치워야 하고) 놀아도 줘야 하고 이것저것 해달라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이 친구와 함께 있으면 티비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쉬는 시간이 없다. “자, 엄마 좀 쉴게.”라고 얘기해도 “아, 엄마?”하고 새로운 요구거리들을 늘어놓는다.




나는 다시 이든이와 하루종일 붙어있던 그때가 생각났다. 아이들을 워낙 좋아했던 나였기에, 내 새끼가 세상에 나오면 누구보다 잘해줄 줄 알았는데. 타국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남편이 회사에 나가면 온전히 아이와 둘이 남아 생활을 하는 일은, “내가 갑자기 쓰러지면 이 아이는 어쩌지.”라는 생각과 함께 나를 힘겹게 짓눌렀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던 그 시간들을 무슨 정신으로 지내왔는지. 그때와 비교를 하자면 다섯 살 형아가 된 이든이와 시간을 보내는 일은 아주 식은 죽 먹기여야 하는데, 나는 왜 다시 힘겨워하는 것인가.


며칠 뒤, 이든이는 그렇게 다시 여름캠프에 가게 되었다.




벨기에는 한국만큼 학구열이 높은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섯 살 즈음되면 슬슬 수영이나 악기 등 방과 후 활동을 시작한다. 일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주변의 엄마들을 보면 이것저것 알아봐서 아이들에게 좋은 것도 가르치고 재밌는 곳에도 많이 데려가는데, 이든이는 언제나 학교 집, 학교 집 신세다. 아직 어려서 투정은 안 부리지만, 회사 집, 회사 집만 하고 사는 나는 괜스레 이든이에게 미안해진다.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친구에게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전업맘으로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살뜰히 잘 챙기고, 집에서 이것저것 잘 놀아주는 친구라 항상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친구 역시 본인이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육아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는데, 이게 아이들에게 맞는 건지, 혹시 내가 뭘 잘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걱정 돼. “


옆에서 보기에 완벽한 엄마라 생각했는데. 자신을 희생하면서 그렇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주면서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친구를 보며,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자신은 좋은 엄마가 아니라 말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자신을 부족한 엄마라 생각하는 그 자체로 이미 좋은 엄마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니까, 너무나도 많이 사랑하니까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서, 더 더 노력하면서도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이렇게 매일매일 부족한 부분을 찾고 메꿔나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도 모르는 새에 조금은 더 좋은 엄마가 되어있지 않을까.


사실 어쩌면, 세상에 좋은 엄마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냥 “엄마”만 있을 뿐. 내 아이에게는 좋든 싫든, 엄마가 필요한 거니까. 크면 클수록 지지고 볶는 일들이 더 많이 생기겠지만, 내가 이든이 이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처럼, 이 아이들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있지 않을까.




얼마 전 이든이와 자기 전 읽을 책을 고르는 데, 내가 한 번도 읽은 적 없는 새 책이라고 한 권을 골라든 것을 보고는, 이든이가 이미 아는 이야기라며 다른 책을 읽자고 투덜댄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진짜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 책이었고, 내가 새까맣게 기억을 못 하고 있던 것이었다. 멋쩍은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하는 내게 이든이가 말했다.


“엄마, 괜찮아. 나는 아직 어려서 머리에 담을 것이 많이 없지만, 엄마는 어른이라 많은 생각들이 가득 차 있잖아. 그래서 그래.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


흠… 나는 좋은 엄마는 아닌데, 그럼에도 “운” 좋은 엄마 이기는 한가보다. 이든이가 알아서 자기 생각을 잘 채워나가는 걸 보니, 지금처럼 이든이에게 손을 좀 떼고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지 많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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