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현 작가 Mar 31. 2023

화이트 데이에 사탕 안 먹어  본 사람 없지? 2

신고합니다. 이제 스무살입니다.

잠깐동안,

드라마 속 영상이 돌아가는  카메라와 칵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느낌이다.



이대로 우리가 사귀면, 영화 속 러브스토리처럼...?





머릿속에 지글거리는 상상스위치가 잠깐 켜졌다가 꺼졌다.

그 이후, 내가 그에게 어떤 내용과 단호한 어조를

읊었는지...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의 내 모습은 이해불가이기도 하다.




"오빠! 나는 오빠를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이제부터 생각하면 되지?"

내가 말하자 마자, 그가 나에게 받아친 말을 들으니,

오빠는 내게 남자로써 당당히 대쉬하는거였다.


나도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갑자기 내 안에 숨어 있던 전투력이 급상승했다.


나의 생각을 그에게 선전포고하 듯 말하고

그와 내가 왜 이성 관계까지 갈 수 없는 이유를

두 가지 정도를 얘기했지.

거기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내가 오빠에 대한 이성적인 느낌이 안 드는 것이었다.

그에겐 그것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의 본심을 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맞는 것이라 생각했다.

.

.

.

그렇게 나는 호기롭게 오빠와 나의 관계를

그저 좋은 선배와 후배 사이라는 선을

미리 분명하게 그어 놓고,

장황하게 십분 정도 끊임없이 얘기했던 것 같다.


그는 나에게 설득 당한 듯 하다.


아니, 그에겐 별다른 선택지도 없었겠거니와

내가 너무 정색하며,

관계를 더 진전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태도에 실망한 듯 하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나에 대한 이성의 감정을

접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로 했을지도 모른다.

.

.

.

클래식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카페에서

그는 나에게 일종의 사랑고백을 했고...

나는 그에게 그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고백을 해버렸다.


상황이야 어느쪽으로 흘러가던지...

그는 마지막 의식을 치루는 사제처럼 절도있게 손을 가방쪽으로 움직였다.

가방에서 포장용 비닐봉지로 예쁘게 포장된

사탕꾸러미를 꺼내서 살포시 내 테이블 쪽으로 건넸다.  


사랑고백 용으로 받는 사탕꾸러미 선물은 처음이었다.


"오늘이 화이트데이라네...일단 받아줘"





그는 뒷말을 마져 다하지는 않았지만,

그 말 속에 숨겨진 뜻에는,

"네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생각과 마음은 이미 알지만,

그래도 내가 네게 선물하는 사탕에는 진심이니,

이건 받아주라" 는 뜻인 것 같았다.


사탕을 받아 든 나는 마음 속으로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가 준 사탕 선물을 넙쭉 받으면서

호들갑 떨 수도 없었다.


그의 진심도 알고, 고백도 들었으니...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마도, 그는 우리집 동네로 나를 만나러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내내,

마음속으로 언제,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

고백 후 내 반응에 대한 상상 등,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내 앞에 섰을게 분명하다.

.

.

.

 그의 표정은 점점 무겁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의 표정을 살필 여력도 없이,

열심히 나의 진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최후에 그의 막판 뒤집기도 성공하지 못하자,

그는 그로키 상태가 된 듯 했다.

눈빛과 낯빛이 점점 변해갔고, 이제 자포자기한 듯

눈을 내리깔고는 쓴 미소만 내게 보여준다.


"그래, 알겠어. 니가 말하는 좋은 선후배~ 그렇게 해야지"


그럼, 그래야지 라는 생각으로 나는 그의 말에 동조한 듯,

만족하며 고개를 두어번 정도 끄덕였다.

그는 이미 길을 잃어버린 어린양처럼

고개 만 떨구고 있다.


"오빠, 그렇다고 우리가 앞으로 안 볼 사이도 아니고, 잘 지내게요"라며

나는 애써 오빠의 기분을 위해 준답시고,

웃으며 얘기를 마쳤다.

그 때는 내가 참 나이스하게 거절했다고 만 생각했다.


30년쯤 지나서, 그 당시 내 모습을 떠 올려 보니,

어쩜 그렇게 매정하고, 차갑고 모질게 상대를

대했는지...


이성과 사귀어 본 경험이 없는 풋내기의 재단되지 않은 언행은 괜찮은건가?


다듬어지지 않은 인격과 나 자신 만을 생각하면서 상대의 인격을 배려할 줄도

모르는 어린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던 철없던 스무살의 내 모습을 기억하면,

참 부끄럽고 민망하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몇 주간 동안은 눈인사로 대하면서 어색했고,

입가에는 어색함을 지우기 위한 거짓 미소를

몇 번 주고 받았다.

기억은 자연스럽게 퇴화하면서,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자연치유가 이루어졌고,


우리의 선후배 관계에는 그닥 큰 어려움도 없었다.

그건 오빠의 지혜로움과 재치가 뒷받침 되었을 것이다.


그 날 나의 미성숙한 언어와

그의 감정을 무조건 막아서면서 장벽을 쳤던

요령없는 어린 숙녀의 무례함이 머리 속에 떠 오를 때면,

낯이 뜨거워진다.


그 날 미쳐 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함께 전하지 못 했었다.


"오빠~ 그 날 미안했고, 사탕 고마웠어요"


그날 밤 그에게 받았던 화이트데이 사탕 꾸러미 선물을 집에 들고 들어왔을 때,

나를 보고 놀렸던 남동생의 얼굴이 유난히 해맑았는데...

그래도 행복한 밤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내 사탕 꾸러미는 동생들에게 모두 털리고 말았다.


그가 내게 던진 사탕꾸러미는 불발이었지만,

.

.

.

수 년의 세월이 흘러 그는 내가 모르는 여느 여인에게 사탕을 선물했고,

그녀는 그의 진심을 알고 그 사탕 꾸러미를 받았다.

.

.

.

이제 그는 50대 중년.

누구의 아버지이자 남편이 되어 있다.


그의 사탕 꾸러미 선물 성공 확률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오빠! 몇 번째 만에 성공한거예요?"


실패가 진정 실패가 아닌 것이다.

그러한 전철이 있었으니, 성공이 있는 것이다.

그에게 그러 한 성공을 안겨 준 디딤돌 혹은 견인차 역할을 했던 나도

그의 인생에 잠깐 출연한 셈이다.


오빠~ 앞으로의 인생도 계속 응원할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화이트 데이에 사탕 안 먹어 본 사람 없지?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