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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작가 Nov 06. 2023

노르마

사랑이 죄가 아니시라면...





기원전 50년 로마 지배 하에 있는 갈리아 지방(옛 프랑스 영토)의  

드루이족 여 대제사장인 '노르마'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로마에서 파견된 드루이족 총독 '폴리오네'이다.

노르마는 여사제로써 지켜야 할 정절의 약속을 깨고,

총독인 폴리오네와 비밀리에 사랑을 나누는 내연관계를

이어오면서 두 아이를 낳아 남 몰래 키우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녀의 고민과 번뇌는 날로 깊어간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아이들을 길러야 하는 숙명과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총독 폴리오네를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의 곁에 두고 싶은 욕망이다.


폴리오네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다.


폴리오네가 사랑하는 여인은 노르마 보다 더 젊고

아리따운 여사제 '아달지사'로

대제사장인 노르마의 일을 돕는 여사제다.


폴리오네는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아달지사에게 불타오르는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그녀와 함께 갈리아 땅을 떠나고 싶어한다.  

폴리오네가 사랑하는 여인이 아달지사인 것을 안

노르마의 배신감과 절망감, 분노와 복수의 칼날은

그를 향해 있다.


한편 드루이족은 자신들이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투쟁을 하고자 하나,

한사코 노르마는 평화를 위해 전투를 보루한다.

노르마의 그런 행동 이면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인

폴리오네와 관계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에

결단을 내리지 못 하고 있다.


결국,

로마군을 공격한 드루이족은 폴리오네를

생포하기에 이른다.

폴리오네를 본 노르마는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아달지사를 포기하고 자신에게 돌아와서

아이들과 함께 멀리 도망가서 살자고 제안한다.


폴리오네는 로마군 총독으로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 제안을 거절한다. (명예가 아니라, 아달지사를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 해서 일 것 같은데...)


정결 서약을 어긴 노르마!


자신이 정결 서약을 어긴 여사제라고 모인 사람들에게 밝히며, 죽음을 결심한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두 아들을 잘 길러 달라고 아버지인 오로베소에게 부탁한다.


죽음을 택한 노르마는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 간다.


이어 그녀의 고귀한 사랑과 희생에 감명을 받은

폴리오네는 노르마의 뒤를 따라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이 악보가 있는 오페라로

옮겨 가면 음악적 해석과 긴장감의 간극이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오페라라는 종합예술에서 드라마틱 한 내용이

 어떻게 치환될까?


아리아와 듀엣,합창을 통한 오케스트라의 장엄함 속에

극 중 인물의 서사가 펼쳐지면서 오페라의 진수가

드러난다.


벨칸토 오페라의 정수를 보여주는 '노르마'는

빈첸초 벨리니(1801~1835)의 최고의 작품이다.


현실적으로 종교 지도자인 대제사장 직무를 맡고 있는

여성이 정절의 약속을 깨고, 자신의 사랑과 가족을

유지할 수 없는 현실 속 고뇌가 그녀의 노래 속에 파고들어 있다.

노르마에게 종교 지도자로써 무거운 책무와

이면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을 이어가고 싶은 갈망은 숨길 수 없다.


 인간의 사랑, 윤리, 직업, 가치관 등은 세월이 흘러가고 역사가 바뀌어도 시대적 담론은 대동소이 하다.


여성의 직업과 사랑,

사랑을 통한 심리의 변화,

종교적 직업을 통한 갈등,

자식을 향한 사랑,

삼각관계를 통한 여성의 심리적 갈등과 변화,

이 모두의 결말을 '죽음'으로

끝내는 오페라의 결말이 아쉽기도 하다.


'노르마' 여제 탄생을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겼던,

1950 년대부터 60년대까지 활약했던,

프리마돈나 마리아 칼라스는 아니어도,

분명 노르마 자체가 갖는 캐릭터의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남녀 간의 삼각 관계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애증,

사랑에 버림받아 괴로워하며 절망하는 한 여인,

장엄한 여제사장의 위용 등의 단면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오페라를 기대하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가늘고 길게 뿜어내는 아리아의

 심연의 끊어질 듯 한 소리와

애수의 'Casta Diva'


아리아를 통한 절절함은

서른 다섯이라는 젊음을 뒤로 하고 요절한 벨리니의 천재성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 개관 30주년 기념으로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프로덕션을 통한 기획과

연출자로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개·폐막식

연출로 유명한 스페인 카탈루냐 연출가 그룹

푸라 델스 바우스의 핵심 예술가 6명 가운데

한 명인 알렉스 오예가 맡았다.



1996년부터 오페라 연출을 시작한 이후 오예는

세계 주요 오페라하우스에서 독창적인 무대와

참신한 해석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오고 있다.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 극장 공연과 동일하게

 ‘노르마’에서 사용한 3000여 개의 십자가를 무대에 선보이면서

오예의 컨셉을 발맞춰 준 무대디자이너 알폰스 플로레스와 자연광에 가까운 빛과 음영의

신비한 조합을 예술적인 감각으로 선보인

조명 디자이너 마르코 필리벡의 무대는 환상적이었다.








남편이 가을 오페라 한편을 내게 선사했다.

"당신과 함께 보는 노르마!! "

나와 함께 공연을 보게 되서 행복하다고 말해주는 그에게 나도 같은 언어로 화답해 주었다.

서로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둘이서 손을 꼬옥 잡고, 공연장에 도착했다.


 첫째 날인 10월 26일 저녁 7시 공연은

타이틀 롤인 소프라노 여지원(노르마)을 비롯해

메조소프라노 테레사 이에르볼리노(아달지사),

테너 마시모 조르다노(폴리오네),

베이스 박종민(오르베소) 캐스팅으로 막이 올랐다.


캐스팅 배우들의 배역에 대한 만족도,

혹은 음악성이나 그들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는지 여부는

음악 평론가들의 담론으로 논외로 한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고 이 오페라를 환상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의 노르마 공연 무대와

같은 무대, 기획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대였다.


3500여개 십자가 형상의 그로테스크한 무대가 

관객을 압도하면서,

시선을 장악하는 장치의 역할로 1막 무대를 장식했다.


거기에 더해 무대 조명의 빛깔과 세기, 위치에 따라

같은 공간 임에도 새로운 느낌으로 전이된 듯 한

황홀경을 경험하게 한다.


1막에서 노르마가  무대 한 쪽에 설치된 계단을 오르면서,

카스타 디바(Casta Diva)'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그 때, 무대 중앙에 설치된 커다란 향로는 '산티아고 순례길'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설치된 향로를 상상하게 한다.


 '보타푸메이로'라 불리는 향로에 불을 피운 후 성직자들이 힘차게 밀어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산티아고 성지순례의 꽃으로 꼽히는데,

이 장면을 그대로 연출하는데 연출가의 기발함과 참신함이 느껴진다. 


아리아의 템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향로의 움직임이 마치 음악이 그네를 타고,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2막에서 현대적인 무대 배경과 배우들 의상도 모던 컨셉으로 설정을 바꾼다.

주인공 노르마 또한, 직업 여성을 상징하기 위해서인지 바지를 입고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원작에서는 노르마가 불길로 뛰어드는 장면인데, 여기에서는 노르마의 아버지인 오로베소가

그녀에게 총을 겨누고 숨지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오페라가 이렇게 끝을 맺는데,  이건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었다.

 원작과 다른 현대적 해석이라 하지만,

마무리가 급히 일단락되는 느낌에  아쉬움이 컸다.


오페라 지휘자의 이름을 보니, 왠지 익숙한 이름이어서 혹시나 했었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역시나였다.

오페라계의 유명한 지휘자이기도 한 그는

2014년도 타계한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조카란다.

"어쩐지~~^^"

핸섬 가이 ~~

로베르토 아바도(Roberto Abbado) !!

노련미 풍기는 지휘자의 유려한 제스쳐와 오페라 전체 뮤직 라인을 선명하게 이끌고 가는

마에스트로다.


덕분에 마지막까지 오페라를 집중해서 감상할 수 있었다.

행복한 가을밤을 장식해 준 그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https://youtu.be/s-TwMfgaDC8

노르마의 여제 - 마리아 칼라스



오페라 공연 전,

몇 주간 집에서 자주 들었던, 마리아 칼라스의 카스타 디바가

동안 뇌리를 스치며 가을의 노르마를 추억하게 할 것 같다.


음악이 한 밤을 가득 채워주고,

추억을 만들어 주는 낭만이 공존하는 가을은 아름답다.



#노르마

#영국로열오페라하우스

#예술의전당공연

#예술의전당개관30주년기념공연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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