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도와주세요.
영화를 좋아한 지 벌써 꽤 됐습니다. 아마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거 같은데요.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빈 공간이 많으니, 처음부터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영화가 제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거 같습니다. 원래 제 꿈은 '글밥'을 먹고 사는 것이었거든요. 지금도 그 꿈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언제나 영화가 제 글밥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대학원 때, 제가 영화를 한 편 보게 되었습니다. 우연에 불과했지만, 자주 가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2022년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저와 교집합이 좀 많거든요. 물론 제가 누구와 '헤어질 결심'은 한 건 아니었지만요.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난 후, 저는 제 논문의 주제를 <헤어질 결심>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작품으로 정했습니다. <박쥐> (2009), 그리고 <아가씨> (2016) 라는 작품이었죠. 사실은 박찬욱 감독의 명작들인 '복수 3부작'도 다뤄보고 싶었는데, 그건 제가 쓰기에는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나고 말았습니다.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잠깐 다른 이야기로 샜습니다만, 저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이랑 교집합이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내적으로 말고요. 꼭 박찬욱 영화를 볼 때가 제 기억 속에 남는다는 겁니다. 제가 나름대로 의미를 붙인 말이겠지만요. 처음 제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본 것은 <친절한 금자씨> (2003) 였을 겁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저희 집 거실에는 에어컨이 있었습니다. 낡은 편이었지만, 여름만 되면 시원한 바람을 내뿜었습니다. 태풍이 왔을 때도, 또 불볕 더위가 왔을 때도, 제 역할을 다 했습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바람의 범위가 그렇게 넓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거실만 시원하게 만드는 에어컨. 저희 가족은 여름만 되면 언제나 거실에 모여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 더위에 방에 들어갈 수 없었거든요.
그때 저희 아버지가 비디오를 자주 빌려서 왔었는데, 저는 그 비디오 대여점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만화책부터, 거꾸로 뒤집어 놓은 비디오 박스들. 그리고 아버지가 빌려주시는 영화들. 저야 만화 영화를 가장 좋아했지만, 아버지는 이따금 어른들이 보는 영화를 빌려오셨습니다. 하긴, 아버지가 제가 빌려온 <고양이의 보은>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좋아하실 리가 없죠.
그래도 이따금 아버지가 빌려온 비디오를 몰래 훔쳐보곤 했는데, <분홍신> 같은 공포 영화도 있었던 거 같고. 또, <천군> 같은 영화도 있었네요.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친절한 금자씨> 였습니다. 직접 본 건 아니고요. 그 때 그 거실이 기억이 나거든요.
시원한 바람, 아빠랑 엄마. 누나는 소파에서 자고 있고. 저는 부모님의 한가운데에 낑겨서 자고 있었습니다. 잠에서 깼을 때, 텔레비전에서는 비디오가 재생되고 있었고.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나중에 텔레비전을 꺼버렸거든요. 그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게 아마 제가 처음으로 접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일 겁니다.
영화 <아가씨>는 제 인생에 남을 기억일 겁니다. 2016년은 제가 대학에 처음으로 입학했을 때인데, 그 때 저는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거든요. 말이 좋아하는 거지, 다가가는 법을 너무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지금에야 아, 그때는 그랬지. 하겠지만서도, 당시의 저는 필사의 몸부림이었다고요.
<아가씨>를 본 적이 있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게 여럿이 즐겁게 보러갈 영화는 아니더라고요. 당시의 저는 친구들과 좋아하는 여자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그 때 좀 당황을 많이 했지만, 나름 괜찮았습니다. 그 때도 생각해보니 여름이 다 되어 갔네요. 그 때의 그 공기, 어스름한 길거리. 밤에 길에서 당신과 같이. 물론 친구들도 많았지만.
그 때는 즐거웠습니다. 정말.
다시 <헤어질 결심>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대학원 때, <헤어질 결심>이 나왔고, 그 영화를 분석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2023년 6월부터 시작한 논문 초고가 끝났을 때는 꼬박 여름을 모두 지낸 뒤였습니다. 이렇게 보니, 영화는 제 여름과 많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름을 참 싫어합니다. 덥기도 하고, 습도 때문에 짜증도 나고요. 또 돌아다니는 벌레들은 어떻게 하고요. 여름은 그렇게 유쾌한 계절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끔 제가 여름을 두고 이렇게 말하거든요. 지옥 같다고. 이 지옥에서 구해줘! 하고요.
언젠가부터, 아니지. 제가 글밥을 먹겠다고 다짐했을 때부터 이 꿈은 절 지옥에 가둬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그 도구였을 뿐, 제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더군요.
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영화는 나를 구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 제발 나를 구해주세요!
그럼 구하러 가야지..... (서부극 톤으로.)
이런 느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