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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담킴 Oct 27. 2017

일하는 엄마 적응기간

언젠가 적응되겠지.

아침 7시 반. 아기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일어난다. 이제 막 자고 일어난 아기와 살을 부비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 시간 정도 아기와 놀다보면 옆동에 사는 친정엄마가 집으로 '출근'한다. 아기를 엄마에게 맡기고 우리의 출근준비를 시작한다. 최대한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출근길에 나선다. 남편은 집에서 차로 20~30분 가량 거리에 있는 회사에 나를 내려주곤 옆동네의 자신의 일터로 향한다.


그렇게 저녁 7시. 다시 남편과 만나 퇴근한다. 집에 오면 대략 8시 전후. 저녁을 먹고 아기를 재운다. 아기는 잠투정 없이 금방 까무룩 잠이 든다. 먹은 것을 치우고 집안을 정리하면 9시. 하루 끝.


아기는 아침마다 헤어지면서도 울 않는다. (새로 배운 개인기 '빠빠이'로 배웅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오히려 내가 아기와 헤어지기 싫어진다. ㅠㅠ) 남편은 나와의 퇴근을 위해 평일 저녁 약속은 좀처럼 잡지 않는다. 엄마는 아기 봐주시기도 버거우실텐데 자꾸 반찬이며 찌개며 저녁 찬거리까지 해두신다. 새로운 회사의 사람들은 다정하고 친절하다. 일을 시작한지 한달도 안되었지만 마치 기름을 꼼꼼히 칠하고 날을 잘 갈아둔 톱니바퀴처럼 모든 것들이 착착 맞물려 돌아간다. 완벽하다. 나만 빼면.


역시 문제는 나다. 첫 출근 이후로 의욕만 앞섰지, 뭐 하나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다. 처음 듣는 용어들이 오가는 회의자리에선 나도 모르게 툭, 정신끈을 놓아버린다. 하는 일마다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고, 하는 말마다 자기 전 하이킥을 하게 만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져, 남편에게도 엄마에게도 표정과 말이 곱게 안나간다. 아기와 보내는 시간이 하루 두 시간도 채 안되는 건, 굳이 보태어 이야기 할 것도 없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최악의 한달'을 보냈다. 일에 쫓기는 회사에선 집 생각을 하고, 집에 돌아와선 회사 생각을 하는, 결론적으론 어느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지나가는 개미만도 못하게 느껴지는 매일 매일이었다. 출근길은 지옥길이요 퇴근길은 황천길 같았다. 그 속내를 혼자 꾹꾹 눌러담다가,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줄줄줄 털어놓았다. 그러자 돌아오는 답. "너 이제 한 달밖에 안됐잖아."


엄마로 산 지는 이제 1년차. 일하는 엄마로 산 지는 이제 한 달차. 아기의 뒤집기를, 잡고 서기를, 또는 걸음마를 기다려주던 그 마음이 나 자신에게도 필요했었나 보다. 언젠가 해 낼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확신과 성공의 때를 기쁘게 기다리는 마음으로, 일하는 엄마로는 신생아나 다름없는 나 자신을 잘 달래면서 가야했나 보다. 그걸 하지 못해 이렇게 탈이 났나 보다. 나 스스로에게도 시간을 주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 아닌 후회가 밀려들었다.


주말엔 최선을 다해 아기와 붙어있기!


다시 주말과 월급날만을 기다리는 직장인1로 돌아왔지만 마음가짐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먼 훗날 호박이가 '왜 그때 나와 함께 있어주지 않았어?'라고 물어왔을 때 '응, 엄마는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느라 그랬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포부가 원대해지니 초조해질 수 밖에. 하지만 먼 발치의 대답은 잠시 접어두고 나에게 '일하는 엄마로의 적응기간'을 부여하기로 한다. 더 나아지겠지. 더 좋아지겠지. 적어도 지금보다는.


야근의 연속이었던 이번주도 다 지났다.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는 루시드폴의 노래 '걸어가자'를 크게 틀어놓고 시원한 맥주 한잔 쭉 들이키고 싶은 금요일 밤이다. 꾸물대지 말고 어서 퇴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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