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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담킴 Nov 19. 2017

주말가족

같이 살지만 사실상.

아기를 낳기 전, 남친과 내가 결혼을 해서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은 좀처럼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고작해야 둘의 빨래가 한데 뒤엉켜 돌아가는 모습을 동그란 세탁기 창으로 바라볼 때라던가, 치약이 줄어드는 속도가 혼자살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빨라졌음을 느꼈을 때라던가, 출근 전 사과를 반으로 쪼개 나눠먹을 때라던가, 하는 아주 소소한 장면들 속에서 '아. 우리가 같이 사는구나.'하는 현실감각이 아주 희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다. 결혼은 했지만 우린 각자의 일을 하느라 바빴고, 서로의 세계는 견고했다.


누구나처럼 아기를 낳고선 모든 것이 일사분란하게 변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느낀 가장 큰 변화는 그제서야 남친이 남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기를 낳기  그는 혼자만의 세상에서 보내는 시간을 아주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다. 늘 혼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를 했다. (결혼 전 내가 그에게 반한 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나와, 아이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쁘기도 하고, 한때 내가 사랑했던 그의 세계가 서서히 허물어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아 일견 미안하기도 했다.


남친이 제법 남편의 면모를 갖춰가던 중에 다시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 다른 수 많은 맞벌이 가정들이 그러하듯 우리 세 가족 역시 평일엔 이산가족이 되었다. 주중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출근 전과 퇴근 후, 길어야 하루에 두 시간 남짓 정도 뿐이니. 그 마저도 출근 전엔 잠이 덜 깼거나 출근 준비에 바빠서, 퇴근 후엔 고된 노동에 지쳐서, 아이와의 시간에 최선을 다 하려는 마음을 몸이 쫓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우린 주말에만 비로소 진정한 가족의 시간을 보내는, 말하자면 '주말가족'이 되었다. 주말에는 되도록이면 개인적인 스케줄을 잡지 않고 셋이서만 꼬옥 붙어 있는 것은 우리 가족의 암묵적인 불문율이 되었다.


다행히 주말마다 볕이 좋았다. 어디로든 한 번 움직이려면 아기 짐이 한가득이지만, 이미 나는 눈 감고도 후다닥 모든 짐을 쌀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으므로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덕분에 아주 중요한 것을 한 가지씩 꼭 빠뜨리고 나온다. 가령 기저귀라던가...) 우리는 근교와 동네의 크고 작은 공원으로, 천변으로, 도심으로, 오래된 궁으로, 유모차와 아기띠를 번갈아 밀고 매며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바삭바삭한 가을볕을 온 몸으로 받으며 한 발짝 씩 겨우 옮기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일주일 마지막에 찾아오는 큰 기쁨이었다. 보기에 영 불안하던 아기의 걷는 폼은 매주 눈에 띄게 자연스러워졌다. 외출복으로 갈아입히며 일주일 새 자라난 팔과 다리의 길이를 헤아렸고, 걷다가 지친 아기를 안아올리며 일주일 새 늘어난 몸무게를 가늠할 수 있었다.


눈에 띄게 성장하는 아기를 바라보는 남편의 표정 또한 일주일이 달랐다. 눈에서 떨어지는 꿀의 농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짙어진달까. 함께하는 시간을 진심으로 즐기기 시작하는 그 모습 속에서 남친에서 남편으로, 남편에서 아빠로 진화하는 한 남자의 인생 여정이  실시간으로 들여다보였다. 그렇게 주말마다 쑥쑥 자라나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지난 몇 주 간 꽤 쏠쏠했다. 가끔은 남편에게도 자유시간을 선물해야겠다는 기특한 생각도 혼자 해 봤다. 내가 반했던 그 모습이 나로 인해 변하는 걸 원치는 않으니까.


떠올리면, 주말의 장면 속에선 모두가 웃고 있다.


여전히. 부모 노릇, 아내 노릇은 많이 어렵다. 그 어려운 걸 주말에 벼락치기로 몰아서 하려니 더 그렇다. 할 수록 고되고 무엇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최선을 다 해보는 중이다. 어떤 인간관계도 저절로 유지될 수는 없으므로.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는 상호간의 끝없는 노력 위에서야 비로소  온전히 성립 가능하다고 믿는다. 특히, 그 관계가 가족일 때는 더더욱. 그래서 이번 주말도 셋이서 근처 수영장에 가서 실컷 놀다 왔다. 이 짧고 굵고 강렬한 주말의 고농축 단맛으로 리 가족은 또 긴긴 주중을 견딜 것이다. 그리고 다시, 기쁘게 주말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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