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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실패, 실패

논문 쓰기 대모험


얼마 전, 학술지에 출판될 논문의 최종 파일을 제출했다. 이걸로 이 논문은 정말로 출판이 되는 것이다. 학술논문을 출판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내 글이 논문의 꼴로 편집되어 나온 것을 볼 때마다 마냥 신기하다. 애가 걸어다니고 말을 하는 걸 보는 부모의 심정이 이럴까?


이번 논문의 심사평은 좀 신랄했다. 다행히 게재 가능을 받기는 했으나, 심사평의 불닭맛으로 인해 며칠 간 정신을 못 차렸다(이 짬밥쯤 되고도 아직 심사평에 충격을 받다니 아직 멀었다). 문제는 그 심사평들은 대부분 다 맞는 지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익명의 심사위원 님들, 이렇게 꼭 맞는 비판으로 두들겨 패면서 어떻게 게재 가능을 주시기는 하셨는지... 성실성에 점수를 주신 것이 아닐까? 일단 나는 분량을 엄청 많이 쓰기는 한다. 논문을 낼 때마다 제한 분량을 넘겨서 추가 게재료를 최소 십만원씩은 내니까...


여튼 내 내면의 우여곡절 끝에 논문을 냈다. 이것은 이제 빼도박도 못하게 공식적으로 출판이 된다. 그러나 사실 최종 원고를 보낼 때까지, 아주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게재 가능 판정을 받은 논문이므로 논문을 적게 고치건 많이 고치건 게재가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으며, 나에게는 실적이 필요하고, 상당히 애써 만들어 놓은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이걸 그냥 안 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지마.. 포기하면 편해..


이걸 그냥 안 내면 어떨까? 왜냐하면 심사위원들이 이렇게나 많은 지적을 할 정도로 결함이 적지 않은 논문이라면, 그리고 이 논문이 그런 결함들로 인해 이 주제에 관련된 논의를 잘못 이끌어갈 우려가 있는 결과물이라면, 그냥 안 내면 되지 않을까? 출판하지 않는다면 내가 잘못 갔던 모든 경로들은 그냥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내 마음 속에서 순간 회의감이 번득였음을 의식했던 것은 나에게 하나의 작은 사건이었다. 나는 이 너덜너덜한 논문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왜 공개하고자 했는가? 여러 현실적인 이유들을 제외하고서라도 나는 이 논문을 결국 출판하고 싶었으며 그래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왜 그랬을까? 당신에게 답을 맞춰 보라는 게 아니라, 이 사건에 대해 내 스스로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는 뜻이다. 




철학을 전공하지 않거나 철학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흔히 듣는 질문이 있다. "철학을 왜 하세요?"라는 질문이다. 때로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취향을 묻는 것이기도 하지만, 철학이라는 학문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철학은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 완성된 것이 아닌가? 우리에게는 이미 수많은 걸출한 (죽은) 철학자들이 있는데, 21세기를 사는 철학자가 또 필요한가? 이런 의문에 대해서 유려하게 답하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거칠게나마 내가 답변으로 제시하는 것은 '철학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학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에 정답이 없다는 말은 아무나 헛소리를 지껄여도 다 나름의 의견으로 존중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철학은 정답을 고정시킬 수 있는 그런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름다움이 무엇이고 선함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누가 최종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겠는가? 


철학이 정답을 구할 수 없는 학문이라면 철학 연구자들은 대체 무엇을 한단 말인가? 내 생각에 철학 연구자들이 하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철학 연구자들은, 정답이 있을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최선의 답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철학자들은 여러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최선의 답이라고 철학적인 방식으로 주장한다(학술발표나, 토론이나, 논문이나, 저서를 통해서). 그러나 최선의 답이 최종적인 답은 아님을 모든 철학 연구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목표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다. 


철학 연구를 하면서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았구나!"라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올까? 나는 매우 회의적이다. 외부 세계에 대한 가설을 세우는 학문이라면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예를 들면 자연과학?). 그러나 철학은 경험적으로 탐구될 수 없는 문제들을 대상으로 하므로, 내가 생각한 철학적 설명이 외부 세계의 어떤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은 그리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철학적 이론은 외부 세계의 경험적 사실을 알아맞히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으니까. 요는, 철학에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성공'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철학 논문을 쓴다는 것은 끊임없는 의심과 실패의 과정이다. 한 줄 한 줄을 써 가면서 매번 내가 생각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제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논리적으로 쓰고 있나? 내가 못 본 부분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맞는 소리일까? 혹시 개소리이지는 않을까? 이런 의심은 이전에 썼던 문장들을 수포로 돌린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논문이 한 편 출판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피하기만 할 수는 없다. 비록 학생이지만 연구자(지망생)이니까, 뭔가 결과물을 내야 한다. 끊임없는 자기 의심에 더해서 심사위원들의 의심이 쌓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나는 조금이나마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설명을 내놓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냥 안 해 버리면, 안 내 버리면 아무런 실수도 의심도 없이 완벽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이런 생각을 했으며,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동료 연구자들에게(그리고 가능하다면 후배 연구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온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점은 연구자라는 직업의 큰 장점인 것 같다.



논문은 정말 끊임없는 실패의 과정임을 피부로 깨닫고 있다. 진짜 진부한 얘기지만 진짜 맞는 말이다. 나는 박사학위논문을 쓰고 있는데, 이미 써 놓았던 50페이지 가량의 내용이 학위논문에 쓸모없어졌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깨달았고, 어제는 다 써 놓은 목차를 역순으로 수정했으며, 2019년에 써 놓았던(네.. 제 논문은 2019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아직도 안 끝났습니다...) 챕터는 2021년에 관련 내용의 주요 저자가 새로운 단행본을 내고 새로운 주장을 하는 바람에 완전히 새로 써야 했다(나한테 왜 그랬어요!). 매일매일이 버라이어티한 실패의 연속이다. 컴퓨터로 쓰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손으로 써야 했으면 열대우림을 꽤 파괴했을 것 같다. 


사실 안 쓰면 실패할 일도 없다. 그래도 매일매일 조금씩 쓴다. 그래야 한다. 내 주장이 대단하고 엄청나게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그게 철학 연구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패할 줄 알면서도 그래도 지금의 선에서 최선을 다해서 내 머리로 제일 나은 설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어 보는 것. 어차피 이 길을 선택했다면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실패는 숨쉬는 것보다 더 자주 찾아올 것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당연히... 그렇다고 해서 실패가 달게 느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논문쓰기가 맛없다고? 게재불가 많이 겪고 나니깐 그냥 달달하다


철학이 어쩌구 심각한 이야기를 해댔지만, 사실 끊임없는 실패를 견디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실패들로 인해 열등감 가득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실패가 어떤 방식으로든 유익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나는 좀 실패를 해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지금까지 저의 거대한 정신승리였습니다. 어쨌거나 나는 논문을 써 나아가야 하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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