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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논문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오늘은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미학과,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으로서 하고 싶은 다른 말들도 많지만, 나의 생각을 재확인하는 차원에서. 


브런치의 닉네임에서 너무나 명백하게 알 수 있듯 나는 박사학위논문을 쓰고 있다. 학위과정에 들어온 것은 2017년 2학기이니까, 지금 기준으로는 박사과정 5년차다. 5년차쯤 되니 슬슬, 박사과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논문 언제 나오냐고 묻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에도 논문 어떻게 돼 가냐는 전화를 받았다(물론 다른 용건으로 통화한 것이긴 하지만..)


지금 나의 논문 진척도는, 자비롭게 봐주면 1/2 정도다. 논문자격시험을 아직 안 봤다는 걸 고려하면 반보다 더 남은 셈이다. 지금의 목표는 다음 학기에 심사를 받는 것인데, 가능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결국 내가 얼마나 써 내느냐 하는 게 문제다.


본래부터 이렇게 늦게까지(?) 붙들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석사논문은 상당히 쉽게 쓴 편이다. 미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있었고, 석사과정 때에는 비교적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으며(강의를 안 했으니), 대학원에 입학할 때부터 본래 하고 싶었던 주제가 있었는데 다행히 그 주제로 논문을 쓸 수 있었다. 논문이 중간에 엎어지거나 한 일도 사실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주변 도움, 특히 같은 전공을 하는 남편의 도움이 컸다. 


석사논문을 5학기만에 썼더니 좀 오만해져서 박사논문도 본래는 4년 반 정도로 생각했었다. 

본래의 야심찬 계획 ㅋㅋㅋ

그러나 강의와 기타 일들을 병행하면서 한 학기에 한 챕터를 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게다가 지난 겨울에는 결혼도 했다. 강의가 많아 한 학기 휴학하기도 했었다. 핑계라면 핑계이지만 여튼 할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논문이 자꾸 늦어지고 있다는 것은, 브런치에도 한 번 썼었지만, 상당한 심리적 압박이었다. 진짜로 논문만 생각하면 문자 그대로 눈물이 흘렀던 시기가 있었다. 참나... 논문 생각하면서 베갯잇을 적시다니... 정상적인 현대인이 아니다. 뭘 하든 내가 논문을 쓰고 있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언제나 짐이었다. 


그런 생각이 조금 바뀌기 시작한 것은 올 초부터였던 것 같다. 스트레스를 견디다 견디다 못해 약간 포기하게 된 것도 있고, 사실상 뭔가 새로운 것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던 것이 올 초부터였다. 졸업이 빨라봐야 뭐하겠노, 백수 빨리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논문 이외의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박사논문과 나의 다른 무언가를 맞바꾸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강의를 하며 만난 동료 박사 선생님은, 박사논문을 쓰는 사람들은 논문과 자신의 무언가를 맞바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체적인 건강이건 돈이건 심리적 건강이건 말이다. 논문을 쓰면서 허리나 목이 고장나는 사람은 정말 많다. 마음이 힘들어지는 사람은 더 많다(나도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거시적으로 생각하면, 사실 박사논문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현직에서 뛰고 있는 연구자 선생님들의 커리어가 박사논문부터 시작되기는 하지만, 박사논문이 그들의 대표 업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박사논문을 잘 써야 하고, 그것을 잘 쓰는 일이 연구자 초년생으로서 중요한 단계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또 분명한 것은, 연구자의 긴 인생에서 박사논문 한 편은, 인생의 무언가와 맞바꿀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르게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이전의 욕심은 (다른 사람들을 놀래킬 정도로) 박사논문을 빨리 쓰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욕심은 박사논문과 다른 무언가를 바꾸지 않겠다는 욕심이다. 나는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다. 몸의 건강도, 마음의 건강도, 그리고 학위도 말이다. 매일매일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심정으로 글을 쓰지만, 내가 채워놓은 그 얕은 물에 코를 박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싶지만, 연구에만 매몰되고 싶지는 않다. 나는 현실을 살아가는 생활인이어야 한다. 꾸준히 운동하고 다른 사람과 대화도 하고, 연구와 논문 외에도 다른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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