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가벼웠지만 마음은 뭉클함으로 가득했던 그날
퇴사 통보를 하고 정확히 3개월이 지난 11월 8일,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회사를 나오는 길은 저도 모르게 찡한 감정도 있었지만 사실 기쁜 마음이 더 컸어요. 단순히 지쳤던 업무를 떠나 자유의 몸이 되어서가 아니라 목요일과 금요일에 걸친 회사 동료들과의 작별 인사 속에서 내가 2년 8개월 동안 그래도 괜찮게 일했구나를 새삼 느끼게 되었거든요. 목요일 퇴근 후, 회사 근처 독일 펍에서 있었던 마지막 술자리에는 예약한 15명 자리가 조금은 부족해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와주었고 이미 퇴사한 사람들도 찾아와 축하의 말을 건네며 자리를 빛내주었어요.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그날만큼은 돈 걱정 없이 먹고 싶은 술을 다 시켜서 마셨어요. 신기하게도, 다음 날 아침 7시에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저절로 눈이 떠졌고 술을 섞어 마신 날이면 항상 찾아오던 숙취도 없었죠. 금요일에는 같은 부서의 사람들이 작은 작별 파티를 마련해주었고 마음에 쏙 드는 선물들과 메시지가 빼곡히 적힌 커다란 굿바이 카드도 받았어요. 정신없이 인수인계하는 도중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꽃다발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전에 함께 일했던 ('사랑스럽다'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영국인 에디터가 보낸 거였어요. 꽃다발과 함께 온 메시지를 읽는데 사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티 내지 않았어요. 배달된 꽃다발을 보고 새로 오신 에디터께서 한 얘기가 기억에 남네요. "같이 일하는 분들께 사랑을 많이 받으셨네요." 그동안 불평불만만 쏟아내느라고 몰랐는데 그랬나 봐요. 몰랐어요. 정말. 회사를 나오면서 업무 관련 자료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어요. 그만큼 미련도, 후회도 없었으니까요. 그곳에서 보낸 2년 8개월의 시간 속에서 제가 가져갈 수 있는 게 단 한 가지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했던 추억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거든요. 문득 제 매니저가 작년 퍼포먼스 리뷰를 하면서 제 업무 방식에 대한 얘기를 했던 것이 생각이 나네요. 회사에서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될 필요는 없다고.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고 누군가는 깊게 동감하리라는 것을 저도 알아요. 유감스럽게도 저는 과거에도 그렇게 일했고, 지금도 그렇게 일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일할 거예요. 일만 하는 직장 내 '누구'가 되고 싶지 않아요. 바보처럼 보이지 않는 선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먼저 손을 내밀며,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은 그런 '동료'로 기억되고 싶어요.
부끄럽지만 사실은 한번 울었어요. 펑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