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예박물관에게 던지는 질문 1
<서울공예박물관에게 던지는 질문 1, ‘공예란 무엇인가’>
귀한 음식이 놋그릇에 담겨 나왔던 기억, 집안 한구석 자리 잡고 있었던 백자, 시골집 어디선가 보았던 반닫이. 이렇듯 예부터 공예는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너무 가까이 있어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공예는, 삶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주는 창조적 도구로 전통의 주거문화를 담고 있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인간과 인간의 손에 의해 이어져오는 작업으로 장인정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예와 우리 전통주거양식인 한옥은 뗄 수 없는 사이 이다. 삶의 흔적이 베여있는 한옥은 이를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 그 자체가 공예의 하나이며,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전통공예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현대공예와 한옥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서울시에서 준비하고 있는 서울공예박물관이 많은 장인들과 공예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동안 기술과 예술이 융합된 장르로 인정받지 못해왔던 공예를 조명할 수 있는 공간이자 북촌과 삼청동, 인사동을 아우르는 장소이며 왕실에 공예품을 제작해 보냈던 ‘경공장’이 있었던 역사성 때문이다.
동시에 16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며, 빠르게 추진되고 있는 만큼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이해와 협력이 필요한 복잡한 사안이기도 하여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처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서울공예박물관에 주요 질문을 던져봄으로써 박물관의 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 서울공예박물관 추진 경과
우리나라 유일의 공예박물관을 지향하는 서울공예박물관(現 풍문여고 부지 건립)의 전시를 구현할 설계공모당선작이 지난 2016년 12월 발표되었다. 이로써 서울시가 2014년 5월, 건립 기본계획 수립 후 2015년 풍문여고 매매계약 체결, 2016년 총괄계획가 위촉(한국전통문화대학교 최공호 교수), 한국자수박물관 유물기증 협약서 및 양해각서 체결 등으로 2년이 넘게 추진해 온 박물관 건립준비가 절반 넘게 진행 되었고 앞으로 2018년 예정되어 있는 1차 개관까지 2년도 채 남겨놓지 않았다.
- 공예 및 서울공예박물관의 중요성
공예는 직접적인 실용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회화·조각과 같은 순수예술과 구분되지만 재료·의장·기교 등에 의해서 미적 효과를 갖기 때문에 기능적 요소와 미적 감각을 모두 갖춘 개념으로 예술적 측면에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상품으로서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능성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와 역할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공예는 식민지배 및 근대화 과정에서 단절되면서 실생활에서 괴리되어, 생산과 유통의 자생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고 근대 디자인의 형성 이후, 문화적으로, 산업적으로 대중들의 관심에서 계속 멀어졌다. 특히 한국 정부의 공예 정책은 근대적 관점으로 접근함으로써 전통사회에서 문화이자 산업이었던 공예가 문화와 산업으로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전통과 현대 사이에 단절을 불러일으켜 괴리를 만들었다.
공예를 뛰어난 기술과 장인정신을 담은 생활양식의 결과물로 바라보는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공예박물관이 존재한다. 그 중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뮤지엄(이하 V&A)은 세계 최대의 장식미술과 공예, 디자인 전문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V&A는 시간적으로는 2천여 년의 인류 역사를 아우르고 공간적으로는 유럽, 북미, 중동, 북아프리카, 아시아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한 소장품을 총 2,118,418점을 소장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대표적인 공예박물관인 장식예술박물관은 중세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5만여 점의 다양한 장식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시를 통해 일상의 오브제들을 주목하고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공예의 기능적 요소 뿐만 아니라 미감을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이 구축되어 있어 그 나라의 정체성을 담은 공예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일반인들도 문화적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서울공예박물관은 공예를 통해 ‘한국의 정신과 미의식’을 담으며 공예 가치를 확산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2016년 4월 열렸던 서울공예박물관 운영방안 토론회에는 공예 분야 예술인 · 종사자를 비롯한 학계 · 많은 이들이 모여 그 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토론회에서 김홍남 서울시 박물관미술관사업자문단장은 “서울공예박물관은 종합적으로 한국의 문화를 담을 수 있는 박물관으로 현대미술 화랑이 주종을 이루는 사대문 안 공간 내에 공예박물관이 건립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 공예박물관 건립 계획 점검
서울공예박물관의 역할이 이렇게 주목되는 만큼 체계적 박물관 건립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문화강국 진입, 국민 문화 향유율 상승 등의 정책적 목표로 인해 대부분의 지자체장들이 박물관 확충을 내세우고 있지만 일차적인 시설 건립으로 양적 증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거나 실제 운영에 대한 비전과 방향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여 이후 예산에 비해 실질적 활용이 적은 경우가 많다.
박신의 경희대학교 문화예술경영연구소장은 “많은 경우 박물관 건립은 시설 중심으로 인식되면서 하드웨어적 접근이 우선되고, 운영과 프로그램 구성이 건물 설계 후에 이루어지는 식의 ‘뒤집힌 순서’가 반복될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식의 건립 과정은 궁극적으로 박물관 운영 활성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는 근본 요인이 된다”며 “최근에는 박물관 건립 이전 사전평가제가 의무사항이 되면서, 기본건립계획이 이루어져 이전의 박물관 설립에 비해 많은 체계를 갖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의 정체성과 미션에 혼란을 겪지 않고 박물관의 공간배분, 전시와 교육공간의 비율 구성 등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구체화된 전시계획과 소장품계획이 설계 과정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점은 서울공예박물관의 경우 역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서울공예박물관은 외형을 구축할 건물 설계에 대한 공모를 진행하였고 당선작이 발표되었지만 여전히 전시관 구성, 소장품 구성 등의 기준이 불명확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서울공예박물관에서 다루고자 하는 공예의 범위 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서울시 문화본부 박물관사업1팀은 “서울공예박물관의 전시장 구성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며 소장품 구성 기준 역시 아직 논의 중인 단계로 그동안 언론에 보도되었던 한국자수박물관의 소장품 기증에 관련 부분도 재검토 중”이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서울공예박물관이 정의하는 공예의 개념을 비롯하여 박물관의 핵심미션 역시 공개하기에 이르다”고 하였다. 각 장르의 장인, 작가들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함을 감안하더라도 2018년 5월 1차 개관을 앞두고 2017년 7월 리모델링 공사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박물관 건립에 기본적인 사안들도 합의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박물관 건립이 가능할지 우려와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서울시 무형문화재를 비롯하여 대다수의 전통장인, 현대 공예 디자이너 등 공예인들이 서울공예박물관의 건립계획과 당초 공예인들의 교류·창작공간인 공예공방과 레지던시 기능 시설이 계획되었으나 전시 및 연구의 정통박물관으로 조성계획을 변경한 내용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점을 보았을 때 현장의 목소리가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통박물관으로 조성계획을 변경하며 발표한 공예박물관의 공간구성과 전시구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공예역사관, 근현대공예관, 지역공예관과 같은 전시구성은 여전히 서울공예박물관이 바라보고 있는 공예에 대한 인식이 근대적 공예인식이라는 점을 반증한다. 공예 작품들을 지리학적·역사적 분류 등에 기초하여 ‘구조적 관계성’에 의해 전시하는 방식은 작품을 마치 성당의 제단화를 보듯 마주하게 하여 관람자와의 적극적인 상호관계를 맺도록 하는데 부적합할 수 있다. 이는 엘리트 공예가 한국 공예의 지배적인 구조를 형성하여 우리나라의 전통공예를 소멸하게 하고 다양한 공예가 역량을 발휘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과거의 공예 정책과 다를 것이 없다.
- 서울공예박물관 앞으로의 방향성
결국 서울공예박물관이 단순 건립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고, 소수의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박물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하였던 서울공예박물관의 기본 개념인 ‘공예가 무엇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공예에 대한 역사적, 개념적 이해 뿐만 아니라 근대적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장의 생생한 관점이 매우 중요하며 최근 몇 년 사이 전승공예와 현대공예 등 공예 장르간 소통 부재로 인한 논란이 있었고 공예와 디자인의 모호한 경계를 두고 많은 논란이 일었기 때문에 다양한 공예인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전통공예의 창의적 재해석을 통한 현대적이고 한국적인 미의식을 발굴하고 전승하여 공예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전시공간의 구현으로 대중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서울시는 고대 백제의 수도 한성에서부터 조선의 한양을 거친 2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로서 서울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도록 작년 11월 ‘역사도시 서울 기본계획’을 발표한 바가 있다. 이러한 서울의 정체성과 문화계획, 지역의 역사성을 종합적으로 담아낸 박물관으로서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과 차별화를 갖기 위해서는 과거 왕실이나 양반가에 공예품을 제공하던 ‘경공장(京工匠)’들이 모여 있던 종로 지역과 안동별궁이었던 풍문여자고등학교의 장소성·역사성·상징성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획이 박물관 구성에 매우 중요한 장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부분에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장인들의 역할이다.
미래유산을 만드는 것은 그 시대의 장인들이다. 현대예술에 있어 장인의 존재와 그들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은 비단 문화유산의 계승의 측면이 아니라 예술, 산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공예장인은 “한 나라의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는 글로 남기거나 전시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작업으로서 이어져야 하고 그것은 결국 기술이 남겨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며 “전통장인 뿐만 아니라 공예인들이 좀 더 개선된 환경에서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고 전했다.
<공예란 무엇인가>를 저서한 하워드 리사티는 “공예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검토하고 이해하지 않는다면, 순수미술이나 디자인과의 경계를 규정할 수 없으며 현대사회에서 공예가 가진 의미를 밝혀내지도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공예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오랜 역사를 온전히 담아내는 것은 의미 있지만 또한 매우 어려운 사안이다. 야심차게 출발한 서울공예박물관이 다른 박물관과 차별화를 갖으며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 어떠한 콘텐츠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깊이 있고 세밀화 된 고민이 없다면, 그리고 행정적 성과보다 실질적 공예인들을 위한 구상과 실행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과연 서울공예박물관이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해 무거운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서울공예박물관 건립 계획> - 2016.6 서울시 발표
○ 건립 목표
- 공예를 통한 한국적 정신과 미의식의 창조적 계승
- ‘공예도시 서울’을 위한 기반이자 ‘영감과 지식의 보고’
- 국내외 공예문화 발전을 주도하는 문화허브
○ 공간구성(안)
- 공예역사관 : 현 본관 / 수장고, 전시실(상설, 기획)
- 플랫폼 : 현 정보관 / 교육실, 세미나실, 공예품 판매숍
- 근현대공예관 : 현 동관 / 수장고, 전시실(상설), 방재·방호실
- 지역공예관 : 현 북관 / 전시실, 사무실(상설), 관장실 등
- 사전가자수관 : 현 과학관 / 전시실(상설, 기획), 수장고, 아카이브 등
○ 전시구성(안)
- 공예역사관 : 대표 사립박물관·미술관 및 개인 컬렉션 중장기 대여 전시
- 근현대공예관 : 거장 초청전시, 동서양 비교전시, 국제 순회전시 등
- 지역공예관 : 서울시 무형문화재, 지역별 명품공예 전시 등
- 사전가자수관 : 한국자수박물관 소장품 기증 상설관, 안동별궁 등 부지의 역사 전시
○ 향후추진일정
- 2017.1.~2017.2 : 잔급 납부 · 소유권 이전 (풍문여고 이전)
- 2017.3~2017.6 : 문화재 시굴조사 부분)
- 2017.7~2018.7 : 리모델링공사 시행
- 2017.9~2019.2 : 전시(콘텐츠)설계 및 전시물 제작설치
- 2018.5 : 부분 개관 - 사전가자수관
- 2019.5 : 전체 개관
<월간한옥 2017년 4월호>
안유선
curator@hanexp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