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의 양면성, 그래도 난 어차피
25년간 살면서
그리고 26년째를 살면서
내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어떤 26살 모두에게 그랬듯이-
정말 딱 그만큼.
감사하게도 집안이 찢어지게 어려워
정말 힘든 가난을 경험해본 것도 아니오,
내가 혹은 가족이 아파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것도 아니오,
입시는 내게도 물론 어려웠지만
재수, 삼수를 겪으며
입시 지옥의 터널을 몇년씩 더 겪은 것도 아니었다.
딱 정말 그 어떤 26살이든 겪을 수 있는
그정도의 일들을 겪으며 살아온 거 같다.
누군가 내게는
운명론자라고 말한다.
"내 남자는 운명적으로 만날꺼야!"라는
말들을 읊었기에 들었던 말은 아니었다.
또 이상하게도 그쪽으로는 완벽한 현실주의자이기에-
"어차피 사람은 죽을 때가 다 되면 죽어.
탄 고기를 잘라 먹고, 각종 건강식품을 잔뜩 챙겨먹으면 뭘해.
지나가다가 누군가의 실수로 차에 치여 죽으면 끝인걸."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어.
아무리 내가 애를 쓰고, 발버둥을 쳤어도-
아무리 네가 벗어나려고, 겪지 않으려고 노력했어도-
어차피 벌어질 일들이었을 거야"
라는 말들을 끊임없이 해왔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해왔던 데에는
인생 속 약간의 경험때문이기도 했다.
탄 고기를 꼭 잘라 드시던,
각종 영양제는 꼭 챙겨드시던 친척 어른이
갑작스러운 암 선고로 세상을 뜨셨을 때
치매에 걸리셨지만
누구보다 정정했기에
할아버지는 이렇게 100년은 거뜬히 사실 거라고
엄마도, 이모도, 외삼촌도 말씀했지만
갑자기 추워진 어느 겨울 날,
화장실에서 씻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정말 갑자기 세상을 뜨셨을 때
이런 일련의 경험들 이후로
대부분의 일들은 어차피 벌어질 일들,
어차피 내가 겪어야할 일들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생각들은
경우에 따라
나를 굉장히 편하게 해주기도 하고,
나를 굉장히 게으르게 해주기도 한다.
양날의 검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쓴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제주여행 첫째날,
좁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 후진하다가
나의 앞 범퍼에 스크래치가 나는 일은 날 괴롭게 했지만
결국 하나의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을지 몰라.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
라며 남은 여행 길 나를 조금은 편안하게 했다.
★아 물론, 완전자차보험을 들었기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어 할 수 있었던 생각
언제나 여러분 보험은 필수입니다. 데헷-
-
하지만 이런 생각에 빠져
노력하지 않았던 그 모든 일에 '어차피'를 붙이기 시작하면
정말 골치아프다.
언제나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고,
'양면성'이 존재한다.
-
제주에 와서 혼자 3박 4일을 보내면서
서울에 있을 때보다 많은 생각을 했고
또 많은 생각을 조금이나마 글로 남겼다.
제주 여행 3일차를 지나고 있는 지금,
내게 벌어졌던 또 어떤 일들이 '어차피'였을까.
그리고 또 내게 벌어질 또 어떤 일들이 '어차피'일까.
-
내 삶으로 돌아가기 전
내게는 어떤 일들에 '어차피'를 붙일지
곰곰히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