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었음에도 겪지 않은 세계, 꿈
구름이 조금 낀 오후 3~4시쯤이었을까.
친구들과 산자락을 걸으며 해변 앞 리조트를 찾고 있었다.
"숙소 앞까지 도착해서 해변에서 놀기에는 너무 어두워질 것 같아. 이쯤에서 해수욕하고 가자."
(논리가 없다. 산자락에 해수욕이라니..)
지평선보다 높은 드넓은 바다에 물속으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 물에 몸을 담갔다.
제법 깊어 보였고 내 신변을 담당해 줄 가드 같은 건 없었다.
물속으로 들어가니 어둑해 보였던 하늘은 노을인지 태양인지 모를 만큼 노랗게 서서히 물들었고
바닷물도 노랗게 빛났다. 군데군데 노란 파장이 일었다.
따뜻했다.
살짝 긴장하면서도 안정감이 들었다.
몸이 두둥실 떴다.
바다라서 그런가. 힘들이지 않고도 몸이 뜨는구나.
노란 바다에서 하늘을 보았다.
바다와 하늘이 가깝다.
눈이 부시게 노랗다.
온통 다 노랗다.
울렁울렁 너울도 노랗고 하늘도 노랗다.
바다에서 나온 나는 숲에 가려진 동굴 입구 속으로 들어갔고
넓은 온천과 디즈니 성을 발견했다.
여기까지 인 듯하다.
늘 그랬듯 꿈을 꿨다. 정확히는 어제 꾼 꿈을 오늘도 기억한다.
나이가 들 수록 기억을 못 한다고 하는데 어째 잘도 기억한다.
여느 창작가처럼 불면증 시달림은 없지만 깊이 못 자는 편이다.
가끔 유독 진하게 기억나는 꿈이 있다.
시각적으로 뇌리에 박히는 광경을 볼 때다.
현실 속에서 아주 멋지거나 웅장한 장면을 봤을 때 보다 그 충격이 더 큰 것 같다.
어느 정도냐 하면 스위스 라우터브루넨의 절벽과 폭포를 보았을 적보다 일본 하코네 유황온천 산자락을 보았을 때 보다 감정의 여운이 더 진했다.
바다와 하늘만 남은 장면과 일렁이는 노란 색감들.
온통 노랗게 물들었던 장면은 꿈에서 깨고 나서도 따스한 기억으로 남았다.
픽션을 경험할 수 있는 세계.
웃기게도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과 꿈 해몽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곤 길몽으로 짜 맞춘다.
내가 이미 겪었음에도 앞으로 겪을지 안 겪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행운을 점치는
없는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