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았다.
큰 동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아주아주 작은 시골동네였다. 옆집도 옆옆집도 그 옆옆옆 집도 건너 건너 다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곳에서 나름 골목대장처럼 지냈다.
한 번도 옮긴 적 없던 터전이라 온 마을이 내 손안에 훤했다. 지금처럼 문화적인 트렌드의 혜택은 크게 받지 못했지만 그 좁은 세상에서 잘 지냈다. 보고 들은 문화랄 것이 없는 작은 시골이라 특별히 자극이 될만한 일이 없어서일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식견이지만 기고만장한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아이로 자랐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될 수 있는 거지..'
내가 본 하늘은 고작 저만큼의 크기라 두렵지 않았다.
그 아이가 크며 조금 큰 도시로 나왔다. 세상에는 나보다 월등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 많았다. 게으른 사람도 많았지만 나보다 훨씬 더 부지런한 사람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능력도 재능도 차이가 났다. 각자의 종교가 다르듯 저마다 생각 또한 달랐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길은 다른 이들과 달랐고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 또한 모두의 동의를 얻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때에는 그것들이 별로 문제 되지 않았다. 재능 있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비교하거나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나 또한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었기에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하며 좌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좁은 세상이 키운 자존감 덕을 봤다.
우물 안 개구리의 약발이 떨어져 점차 커지는 세상의 크기를 체감할 때쯤 나의 자존감도 점차 좀먹기 시작했다. 시간과 돈과 능력의 한계를 알았고 선택에는 그만큼의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은 넘쳐났고 돈은 부족했으며 머리를 굴리는 동안 정체되며 시간만 흘렀다. 추진력은 힘을 잃어 우왕좌왕했고 용기는 신중함이란 가면 속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나의 세상은 빅뱅처럼 커지고 심오해져 갔다. 엔딩크레딧에 1순위로 오르던 나의 존재감은 어느덧 저 끝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흐릿해짐을 느꼈다.
무지했던 어릴 적 세상의 크기보다 커서 느끼는 세상의 크기가 더 커졌다. 그만큼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가 무거워져 그럴 것이겠지만 어쩐지 자신감은 많이 줄어든듯하다. 좀 더 용기가 있었다면.. 어쩌면 조금 무모하더라도...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무수한 가능성과 수많은 성공스토리, 화려한 이상들.. 이런 것들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좌절감을 줄 수도 있다. 저마다의 그릇의 크기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세상의 크기가 있지 않을까. 드넓은 대양을 바라보며 눈이 반짝이는 사람이 있고 두려움을 갖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직 가져 보지 못한 손바닥 만한 크기의 세상을 쥐고 나서야 좀 더 큰 세상을 노려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너무 넓은 곳에 있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면 조금 좁은 곳으로 내려오는 것도 방법이 되지 않을까.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 개구리보다는 용감하고 자신만만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