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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Nov 07. 2020

나도 언젠가는 꼭 죽고야 만다.

죽음을 생각하니 살기가 쉬워졌다

  엄마가 이 세상을 뜬 지 4개월이 다 되어간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내다가도 도저히 예측할 수 없을 때, 예측할 수 없을 만큼의 슬픔이 밀려온다. 마지막으로 중환자실 베드에 누워 복수 천자를 하던 모습, 섬망 증상이 와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던 모습, 배가 아파서 제대로 눕지도 못 해 새벽 내내 끙끙거리던 모습 같은 그런 것들이 떠오를 때면 그 곳이 어디든 간에 눈물부터 차오른다. 곧이어 이런 생각도 든다. 사는 게 뭘까..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정 반대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제와 오늘같이 딱 붙어있는 운명의 무언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는데, 엄마의 죽음을 겪은 뒤로는 죽음이 무섭거나, 저 멀리 있거나, 피하고 싶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일 죽는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살아있지만 내일은 죽을 수도 있다. 지금은 살아있지만 10분 후에는 죽을 수도 있다. 인간이란 언제까지 유지될지도 모르는 겨우 목숨 한 줌만 붙어있는 상태일 뿐인데, 산다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친한 친구가 니가 꼭 보았으면 하는 영상이라며 한 영상을 보내주었다. 엄마를 통해서 알게 된, 내가 평소에도 좋아하던 철학자 강신주의 강연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부모님, 자식, 배우자, 친구 등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고 지나치게 슬퍼하는 태도는 착각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영원히 살 것만 같은 착각. 그들은 갔지만 나는 영원이 이 세상에 머물러 살아갈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그 죽음이 그렇게도 슬픈거란다. 인간은 다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절대 안 죽을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나는 겨우 25살이니까', 하며 죽음이란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살았다. 하지만 죽음은 나의 나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어제와 오늘처럼 내 옆에 있다.


  내일 죽는다고 생각을 하니 엄마를 떠올렸을 때, 지독할 만큼 슬프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일이면 볼건데 이렇게 울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내일 죽는다고 생각을 하니 오히려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 가벼워졌다. 내 위에 드리워져 있던 상실감, 슬픔, 아픔, 상처, 고통 같은 것들이 사르르 걷히는 기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생각하니, 살기가 쉬워진 것이다. 그래 이렇게 하루를 살고 오늘을 살아보자. 나도 어차피, 언젠가는, 결국에는 꼭 죽고야 말테니.


가을에 피는 구절초처럼 소박하지만 씩씩하게 오늘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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