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내가 무덤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처음 해보는 엄마의 장례식
장례식이 대개 그렇지만, 엄마 장례식은 특히나 더 어수선했다. 도와주는 어른 하나 없이 나와 성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느라 모르는 것 투성이였고, 조문객들조차 대부분 장례식장이 처음인 ‘초보’조문객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들어오기 전부터 어디에 몇 번 절을 해야 하는지 자기들끼리 제법 심각하게 상의를 하고 들어왔지만 나와 맞절을 할 때 두 번을 절한 친구도 있었다. 나중에 친구들이 한 말인데, 이렇게 평균연령이 어린 장례식장은 처음이라고 했다.
2020.7.10. 장례식장에 도착을 했더니
나는 엄마의 시신을 태운 엠뷸런스를 타고 제일 먼저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맨 처음으로 한 일은 사망진단서를 제출하고 영정사진에 사용할 사진을 고르는 일이었다. 엄마는 이런 일을 절대 예상하지 못하고 한 행동이었겠지만, 엄마가 서울삼성병원으로 올라올 때 챙겨온 통장들 틈에 증명사진이 있었다. 덕분에 갑자기 돌아가신 것 치고는 어렵지 않게 영정사진을 결정할 수 있었다. 한복으로 합성을 할지, 그냥 할지 고르라길래 그냥 한다고 했다. 그리고 꽃을 고르라고 했다. 3단, 5단, 그보다 더 큰 단도 있었지만 가장 작은 규모의 3단으로 했다. 그리고 관을 골랐다. 조문객들에게 대접할 음식 종류를 골랐고, 수의를 골랐고, 화장터를 예약했다.
1층 사무실에서 몇 가지 절차를 마치고 2층 빈소로 올라와 상조회사 직원분께 장례식 절차에 대해 배웠다. 하루에 몇 번 제사를 지내고 그 제사는 각각 무슨 의미인지, 입관 이후 복장은 어떻게 바뀌는지 등등 복잡하고 생소한 것들이었다. 나와 성이는 맞는 사이즈의 상복을 골라 옷을 갈아입었다. 팔에 띠를 두르고 머리에 리본을 꽂았다.
빈소에 앉아서 엄마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잘 분간이 안갔다. 아무리 봐도 저 사진에 있는 사람은 우리 엄마가 맞는데, 진짜 엄마가 죽은 것인가? 조금 적응했나 싶다가도 한 번씩 무진장 생경하게 죽음이라는 현실이 와 닿았다. 그럴 때면 날카로운 칼로 가슴을 죽죽 찢어내는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 뼈에 사무친다는 말 따위의 말들을 그제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만큼 고통스러울 수가 있구나 싶을 만큼 나는 현실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7.11 장례식 둘째 날에는 입관을 하는데
입관을 하면 영영 끝이다. 관 뚜껑을 열거나 시신을 다시 꺼내지 않는다. 나는 정말 마지막으로 엄마의 육체를 만져보았다. 엄마의 살은 힘이 없이 차가웠다. 수의를 입어도 가려지지 않는 복수가 가득 찬 배는 어쩐지 위풍당당한 배 나온 부잣집 대감의 모습 같기도 했다. 얼굴까지 빠짐없이 삼배 끈으로 꽁꽁 동여 맨 엄마의 몸을 보니 지난 장례들이 생각났다.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그리고 우리 엄마. 어련히도 다들 거치는 단계를 거쳐 우리 엄마도 이렇게 흙으로 돌아가는구나 생각을 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7.12 발인
이 날 아침에는 정말 바빴다. 성이는 새벽같이 장지에 가고 아침 손님을 나 혼자 맞았다. 전 날 밤을 샌 친구들의 밥을 차려주고 아침 손님을 맞으며, 장례비와 식대 등을 정산 하고, 빈소를 비울 준비를 했다. 운구를 하는 성이 친구들과 산소를 만드는 일꾼들이 먹을 음식도 따로 챙겼다.
빈소에 있는 엄마 영정사진을 떼 1층에서 마지막 제사를 지내고 식장을 나섰다. 영정사진은 내가 들었다. 양 손에 사진을 들고 있으니 눈물을 닦을 손이 없어 얼굴 전체가 눈물 바람이었고 눈물이 지나간 자리는 말라붙어 소금기가 버석버석했다.
이번에도 나는 엄마와 같은 차를 탔다. 장례식장부터 장지까지 엄마의 관을 실은 리무진을 시작으로 깜빡이를 넣은 장례 행렬의 차들이 그 뒤를 따랐다. 엄마 사진을 안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 깊게 파인 구덩이 앞 까지 갔을 때, 차라리 내가 그 안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 충동을 가까스로 참으며 엄마만 그 안으로 들어갈 때 나는 마지막으로 엄마의 관 한쪽을 슬며시 쓸어보았다. 그것은 엄마와 나의 마지막 악수이자 포옹, 입맞춤이었다.
삽으로 흙을 떠 엄마 위로 내던졌다. 갓 파낸 흙에서는 푸근하고도 따뜻한 냄새가 났다. 마지막 깊은 잠에 드는 중에 내가 이불을 덮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흙이 두텁게 쌓여 평지보다 봉긋이 솟아올랐을 때, 동그란 모양이 어쩐지 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둥글고 봉긋한 형태의 무덤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참 편안해지고 이래서 힘들게 무덤을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댈 수 있고 끌어안을 수 있는 엄마의 품 같으면서도 동그란 지붕 아래 아늑한 집 같기도 했다.
엄마를 다 묻고 산 아래로 발걸음을 돌리자 마자 한 방울, 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었다. 내려가는 산비탈 길목에서 도저히 발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울었다. 주저 앉아 울었다. 엉엉 울었다. 목이 다 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