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이 세상에 없으니 스타였다..고 해야하나?
우리 엄마는 브런치 스타다. 엄마의 장대한 첫 글은 <그날 밤, 야구방망이를 든 남자가 찾아왔다>이다. 맨 처음 그 글을 올렸을 때 독자들은 차마 그 심각한 내용에 댓글조차 달지 못했고, 하트 수와 구독자 수만 쭉쭉 늘었었다. 엄마의 남편이자 우리 아빠의 외도를 요란하게도 알게 되는 그 글 시작으로 매일 매일 글을 올리며 두 달도 되지 않아 구독자 1000명을 넘겼다. 그리고 약 반 년 만에 구독자 5000명을 막 넘길랑 말랑 할 때, 엄마는 이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글을 올린 뒤 나에게 링크를 보내주었다. 엄마의 첫 구독자는 나였고, 엄마의 글에 항상 맨 첫 번째로 하트를 누르는 사람도 나였다. 엄마가 보내준 첫 번째 글을 읽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이미 다 아는 얘기였는데도 그렇게 자세하게 글로 보니 어지간히도 새롭고 충격적이었는지 글을 읽다가 눈물이 나서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다시 읽어서 겨우 다 읽어냈다. 당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눈물이 어찌나 나던지 하루 종일 그 글이 생각나서 당분간 엄마의 글을 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작년 말, 몇 달 만에 엄마를 만나 새벽까지 수다를 떨었던 날이 있었다. 새벽 4시까지 잠도 안자고 울다가 웃다가 하며 그간 못 한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그 생각이 나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엄마 브런치 글을 읽으면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글을 읽는 것이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 진짜 힘들었겠다. 엄마가 그 모든 일들을 다 감당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 어떻게 그걸 다 버텼어? 하루하루 그 세월을 다 지나와서 지금 내가 이렇게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됐네. 나 스스로도 그게 안 믿기는데 엄마는 믿어져? 엄마도 안 믿어지지? 엄마 진짜 대단하다. 엄마가 내 엄마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
엄마가 대단하고, 자랑스럽고, 또 나에게 그런 엄마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 너무나 뿌듯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을 겪은 엄마가 안쓰러워서 자꾸 눈물이 났다. 그 때의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냈을 지를 생각하면 숨이 가빠 올 만큼 슬픔이 밀려왔다. 엄마의 글에서 본 문장 중 잊히지 않는 문장이 있다. ‘나의 젊은 날은 그저 힘껏 견디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 문장을 처음 읽자마자 내 가슴에 박혀 마음이 계속 콕콕 쑤시듯이 아프다.
나에게 엄마의 브런치는 그런 의미였다. 엄마의 인생을 증명하며, 그 깊은 생채기를 내 눈으로 다시 확인하게 되는 계기. 깊었던 생채기에 새 살이 돋고 굳은살이 배겨 이제는 웬만한 상처에는 별 타격도 없을 만큼 강인해진 엄마가 내 옆에 숨 쉬고 있다는 증거.
그리고 지금, 브런치는 나에게 숨쉬는 구멍이 되었다. 엄마의 글을 읽었던 독자들이 나의 글을 읽고, 나의 글을 기다려주고, 나의 글에서 엄마를 발견해준다. 여러모로 브런치를 남기고 가 준 엄마에게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