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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Nov 19. 2020

당신은 나의 불행을 딛고 일어나셔요.

진실로 그러기를 바랍니다.

  올 초에 아빠랑 베트남 여행을 갔었다. 우리 아빠는 마을 이장인데 같은 면 단위 이장님들끼리 해마다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간다. 아빠는 부인이 없으니 나를 데리고 다닌다. 스무살 때부터 아빠를 따라 마을 이장님들과 종종 해외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여행을 다니며 한 이장님 부부와 친해지게 되었다. 달지1리(가명) 이장님이신데, 부인과 12살 차이에 다섯 남매를 키우고 계시다고 했다. 다 큰 딸래미가 아빠 따라 이런 데를 다 오냐며 부둥부둥 나를 참 예뻐해 주셨다. 올 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막내가 음악을 배우고 싶어 하는데 뭐부터 가르치면 좋겠냐고 하셔서 피아노를 추천해드렸었는데..  

  

  

  오늘 그 이장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침에 머리가 조금 어지럽다고 하고는 소 밥 주러 나가다가 현관에서 쓰러져 그대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 나는 한동안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4박5일 베트남 여행 동안 재롱을 부리던 내 손에 용돈을 꽂아주시던 그 얼굴이 영정사진 속에 들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는 참으로 잔인하고 따뜻하게도, 그 소식이 나도 모르게 위안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사고로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은 친구가 있었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나랑은 코드가 좀 맞지 않아서 자주 만나지는 않는 그런 친구였는데, 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나는 이 친구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심지어 장례식장에서는 이 친구가 저 멀리서 걸어 들어올 때부터 눈물이 줄줄 났다. 그 친구가 구석 자리에 앉아 육개장을 먹고 있는 모습만 봐도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 느낌이었다. 아, 쟤도 저렇게 잘 살아있구나. 나도 언젠가 저렇게 괜찮아질 수 있겠구나. 그 애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남의 죽음 이야기를 들을 때,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일인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 뉴스에서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져 명을 달리했다 해도, 뺑소니 차량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해도, 행방을 찾지도 못하고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시체조차 찾을 수 없다 해도 우리는 그러려니 한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누구네 아빠가, 어느 가게 사장님이, 어느 마을 이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분명히 슬프긴 하지만 금새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 때는 도통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좌절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난 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오늘 아침에 돌아가신 달지1리 이장님을 보며, 고등학교 때 사고로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은 내 친구를 보며 나는 위안을 얻는다. 달지1리 이장님의 부인과 다섯 자식들은 어떻게든지 남은 삶을 살아 낼 것이며 나의 친구는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 가 땅을 치며 울고 싶을 만큼 엄마의 죽음이 아프고 괴롭다. 하지만 나는 이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가는 중이며 나의 아픔 또한 누군가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 인생은 참으로 남의 불행이 없으면 내 삶을 위로할 길이 없으며 나 또한 이렇게 누군가의 위로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 저의 불행을 딛고 일어나세요!


엄마의 책상에서 발견한 메모지를 보고 영감을 받아 이 글을 썼다. 익숙한 엄마의 글씨체가 내 마음을 콕콕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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