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하면서 승마는 못 참지
갑작스럽게 시작한 제주 한달살이가 길어져 어느덧 제주에서 머문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아이는 이제 이곳에서 어린이집을 다니고, 나는 아이가 등원한 뒤 얼마간의 집안일을 끝내고 글쓰기를 한다. 한달살이였다면 평일 주말할 것 없이 섬 이곳저곳을 쏘다녔겠지만, 이제는 제주살이가 이벤트가 아닌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역시, 사람 사는 일은 어디나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이 일상이 이루어지는 곳이 제주라는 곳을 새삼 인식하는 때가 바로 일주일에 한번씩 가는 승마 강습이다. 승마장이 무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이다. 헬스장에 가는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로 승마를 할 수 있다니...! 이 감격도 1년이 다 되어가니 역시 정도가 약해졌다. 하지만 아마도 서울로 돌아가면 가장 그리워질 것들 중의 하나겠지.
승마를 시작한지 반년만에 어제는 처음으로 '구보'라는 것을 해보았다. '구보'는 실제로 달리는 것이다. 적당한 속도로 걷는 말 위에 잘 자세를 잡고 타는 평보나 경속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구보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그 전까지는 털털털...하는 트랙터를 타고 가는 기분이었다면, 말에 박차를 가하며 말이 달리는 순간에 느껴지는 그 속도감과 해방감이란...! 트랙터에서 순식간에 람보르기니로 갈아탄 느낌이었다.
승마는 스포츠 중에 거의 유일무이하게 살아있는 다른 생명체와 함께 호흡을 맞춰 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이 점이 바로 승마를 매력적이게 하는 지점이면서 동시에 쉽게 기량을 닦을 수 없게 하는 지점이다. 나 혼자 잘한다고 잘해지지가 않는 것이다. 허리를 세우고 발과 어깨를 모두 한 선에 맞추는 것, 종아리로 말의 몸통을 잘 쥐어잡는 것, 등자 위에서 잘 어쩌구 저쩌구 하는 모든 기술과 기량들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되지 않으면 모두 무용지물이다. 바로 이놈의 말을 앞으로 달리게 만드는 것.
말이 그렇게 사람 간을 보는 영물이자 난폭한 동물이라는 것은 승마를 해보기 전에는 꿈에도 몰랐다. 달릴 줄 아는 말들은 내 위에 탄 사람의 실력을 말에 올라타는 순간 귀신같이 알아본다. 그리고 재갈을 물리고 안장을 채울때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늘 물거나 뒷발을 앞으로 요상하게 뻗어 나를 찰 준비가 되어있다. 개도 아닌 말이, 나와 닮은 고른 치아로 사람을 물려고 한다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을 못 했던 일이다.
쓰다보니 자꾸 말을 험담하려 쓰는 글 처럼 돼버리는 느낌이 드는데, 어쨌든 승마의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을 앞으로 보내는 일이다. 그리고 말을 그렇게 쉽게 앞으로 나가주지 않는다. 아무리 고삐를 좌우로 흔들어 보고 부조를 힘차게 줘도 말은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도무지 내 뜻대로 안되는 내 인생과 꼭 닮았다. 내가 씨름해야 하는 이 거대한 생명체 - 마치 인생에서 내가 뭘 하려고 할 때마다 달라붙어 나를 옴짝달싹하게 하는 장애물덩어리 같은- 를 보내기 위해선 바로 두가지가 필요하다. 리더쉽과 그에 상응하는 실력.
간을 보는 말에게 나는 어떻게든 너와 함께 달릴 것이다-라는 강력한 의지, 그리고 앞으로 가기 시작한 말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 그 커다란 말은 정말 야속하리만큼 단 한 발짝도 움직여주질 않는다. 하지만 일단 말을 설득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말의 쿵쾅대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말과 한 몸이 되어 자유롭게 바람을 가를 수 있다. 일단, 말이 첫 발을 내딛기만 하면. 그렇게 만들수 있기만 하면.
요즘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어거지로 해야 하는 일인가, 안써지면 안쓰면 되지 뭐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인가,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온갖 잡생각만 머리 안에 가득하다. 하지만 어찌 됐든, 나는 무언가에 대해 쓰고 이야기 하고 싶다. 잘 움직이지 않는 이 거대한 덩어리를 어떻게든 한번 굴려봐야겠지. 일단 한번 굴러가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든 되리라 믿으면서. 그래도 고집불통인 말보다야 글쓰기가 백번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