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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Nov 07. 2023

나는 꼭 100살까지 살아야 합니다.

단색화의 거인, 박서보를 기리며 

"재밌다."

화면 속에서 90세가 훌쩍 넘은 한 노인이 말한다.


"이거 내가 처음 시도해 보는 거거던. 이렇게 해보니까 재밌네."


노인의 이름은 박서보.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서양의 추상미술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한국의 단색화를 전 세계에 알린 거인. 바로 그 박서보가 파들파들 떨리는 야윈 손으로 캔버스에 붓칠을 하면서 내뱉은 말이었다. 


백 세가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진심으로 즐겁게 몰입할 일이 있고, 그 순수한 희열에 저렇게 기뻐할 수 있다니. 충격적이었고,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났고, 또 그가 왜 거장인지 알 수 있는 한마디였다. 


박서보의 이름을 안지는 오래되었다. 그의 작품도 간간히 보았었다. 하지만 언제나 내 미술 작품 감상 방식은 '아는 만큼 보인다'였다. 그래서 항상 '모르는 건 완전히 까막눈'이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주가 지난 시점에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 <다큐 인사이트>를 통해 박서보라는 예술가와 그의 작품에 완전히 홀려버렸다. 그리고 이것이 더 운명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며칠 전에 박서보 화백의 영혼의 단짝이었던 김창열 화백의 미술관에 방문했었기 때문일 거다.


박서보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인'이라고 하면 될까. 아니, 투사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그는 평생을 싸워왔다. 혁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성 화단과, 가난한 외국화가를 우습게 여기는 세계의 큰 무대들과, 언제나 할 말은 하는 자신의 드센 성격을 힘들어하는 동료들과, 단색화를 동양의 모노크롬으로 자신의 아래로 편입시키려는 서방 세계와.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오랜 시간, 가장 치열하게 싸워온 것은 바로 늘 이렇게 불처럼 활활 불타오르는, 폭주기관차 같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런 박서보의 전성기를 만든 역작 <묘법> 시리즈의 시작은 뜻밖에도 둘째 아들의 한글 쓰기 연습장에서부터였다. 


어느 날 박서보는 한글 쓰기를 막 배우기 시작한 아들이 격자무늬 연습장에 글자를 쓰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아들은 '한국'이라는 단어 쓰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연습장은 정사각형 안에 한 글자씩 쓰도록 되어있는데, 아직 그걸 몰랐던 아들이 정사각형 한 칸마다 자음과 모음들을 모두 따로따로 분리해 썼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아들은 자신이 잘못 썼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지우개로 마구 지우다가 종이가 찢어지고 구겨졌다. 그러자 아들이 '에이'하면서 잘못 쓴 글자에 연필을 찍찍 그어 글자를 모두 덮어 지워버렸다고 한다. 그 과정을 곁에서 바라보고 있던 박서보는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걸 몰랐구나. 안 되는 것은 포기하고, 체념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내가 이제까지 이걸 몰랐구나.'


합정동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박서보 화백, 1977

일평생을 불타는 정신으로 싸워왔던 화가, 단 한순간도 포기를 몰랐던 박서보는 그때부터 깨끗한 캔버스 위에 자신의 어린 아들처럼 선을 그어간다. 채워지지 않고, 다스려지지 않고, 앞으로도 길들여지지 않을지 모를, 뜨거운 욕망들을 하나씩 찍찍, 그어간다. 그렇게 잠재워간다. 그리고 그 수행의 과정은 아름다운 단색들과 어우러져 30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미술에 대한 열정, 더 새로운 예술을 하고 싶다는 야욕, 불이 꺼진 적인 없는 구들장처럼 언제나 뜨거웠던 그 마음들. 그 모든 불꽃을 하나씩 꺼뜨려 캔버스 위로 아름다운 색깔의 재가 쌓여가는 수행의 과정. 그 정신성이 결합된 한국의 '단색화'는 색채예술의 반대성으로서 발전한 서양의 '모노크롬'과 그렇게 구분되는 존재감을 조용히 드러낸다.


다큐멘터리 속 그는 죽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았는데, 아직 하고 싶은게 많은데... 

박서보 화백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삶에 대한 노년의 '집착'이 아니었다. 절대 꺼지지 않는 생명력이 낡은 몸 안에서 용암처럼 끓고 있었다. 마치 늙은 호랑이의 거죽을 뒤집어쓴, 눈빛이 형형한 젊은 호랑이처럼. 


그랬던 그가 지난 10월 14일에 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2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뒤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면서 그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올렸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


어쩌면 이 놀라운 화백은 아마 하늘나라에 도착한 그날에도 여독을 풀지 않고 지체 없이 바로 붓을 잡았을 것만 같다. '몸이 안 아프니 이제 더 재밌는 걸 해볼 수 있겠네!'라고 말하면서. 


단색화라는 아름다운 예술을 일생을 바쳐 일궈낸 멋진 예술가가 그곳에서도 자유롭게 붓질을 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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