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호 작가님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오롯이 느껴지는 따뜻한 감성� 김예지 팀의 〈House I Used to Call Home〉♪ 슈퍼밴드2(superband2) 7회 | JTBC 210809 방송
< House I Used to Call Home >
기어 다니기를 배웠던 바닥이 여기였죠
위층 복도에서 첫걸음마를 떼었구요
그 시절 제겐 어찌나도 커보이던지
장롱 문에는 아직도 표시가 남아있네요
엄마 아빠가 네 살부터 키를 재어주셨거든요
장롱은 숨바꼭질할 때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했어요
....<중략>...
그러니 누구든 이 다음에 사실 분들께 하나만 부탁할게요
절 제일 잘 알아주는 이곳을 보살펴주겠다고 약속해 줘요
전 추억을 싸들고 떠날게요 그래야 당신의 추억을 새길 방이 생길테니까
제가 우리집이라 부르던 이 집을 잘 부탁해요...
저는 경연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이 곡을 알게 되었어요. 바이올린 연주자와 보컬, 기타리스트로 구성된 밴드의 연주는 심금을 울렸고, 저는 글 그렇듯이 노래 가사와 밴드의 표현력에 깊은 감동을 받아 눈물 콧물을 줄줄 쏟으며 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되내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정말 인간은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구나...! 이 노래의 작사가는 자신의 모든 추억을 담은 공간으로써의 집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이 집에서 새롭게 살아갈 사람에게 자신처럼 이 집을 소중히 대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겠지요. 마치 자신이 아끼는 친구나 가족이 새로운 가족을 꾸려 다른 곳으로 떠날때처럼요.
우리는 수많은 기억을 쌓으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모든 기억이 같은 중요도를 가지지는 않기에, 우리가 더 의미있었던 기억들을 '추억'이라고 이름 붙여 소중히 간직하는 것일거에요.
그리고 그 추억을 다시 소환할때 <공간>은 정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몸을 가진 존재들이기에, 같은 공간에서 계속해서 행복한 추억을 축적해 나간다면 그 축적물은 담은 그릇으로써 공간마저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저는 이 곡을 들으면서 서도호 작가님의 작품을 떠올렸어요. 서도호 작가님은 한국과 뉴욕, 런던을 오가며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리움 미술관에서 생존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었어요. 리움의 우혜수 수석 큐레이터는 “서도호는 백남준과 이우환 그 다음 세대로,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가”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요. 그만큼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서도호 작가님은 '집 짓는 미술가'로도 불리웁니다. 그의 작품관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자 오랜 시간 탐구해온 주제가 바로 '집'이기 때문입니다.
서도호 작가님은 1900년 대 후반부터 '집'이라는 주제를 얇은 실로 직조해 겹쳐 보여주는 설치 예술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여름 한복에 쓰이는 가벼운 은조사실로 반투명한 형상의 집을 만들어 공중에 띄운 설치 작품인데요. 한국, 로드아일랜드, 베를린, 런던, 뉴욕에서 작가가 거주했던 집의 표면을 직접 수치를 재고 바느질로 그대로 재구성한 직물조각입니다.
서도호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때의 기분을 아직 기억합니다. 작업을 마주한 순간 "아, 이건 천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구나...!" 라고 느꼈어요. 그만큼 한 눈으로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답고, 서정적이면서 작품의 주제와 그 재료, 구성까지 꼭 맞춰 짜낸듯한 압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작품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입니다. 작가님이 우리에게 귀여운 장난을 거는 제목 같지 않나요?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니가 그린 기린 그림...>같은 문장처럼 꼭 우리의 발음 실수를 기대하는 듯한 그런 제목입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작품을 보면 집 속에 집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에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집들은 모두 작가가 직접 살았던 집들입니다. 그가 한국에서 태어나 살았던 한국집, 그리고 뉴욕에서 유학을 하는동안 세를 들어 살았던 아파트. 한옥의 은은한 색깔이 전시장 안에 퍼지며 서도호라는 한 사람이 살았던, 그가 울고 웃고 슬퍼하고 다시 일어났던 모든 기억을 간직하는 두 개의 집이 반투명하게 겹쳐보입니다.
서도호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추억을 따스히 덮어줄, 집에 입힐 수 있는 가벼운 옷이 된 집은 이제 가볍게 이동이 가능해집니다. 우리가 살던 곳을 떠나더라도 그 집과 이어진 추억은 우리와 함께 어디든 가고 다시 펼쳐볼 수 있는 것처럼요.
은조사나 얇은 비단처럼 투명한 천을 이용하는 이유도 명확합니다. 반투명한 모습으로 공중에 부유하는 실로 만든 집은 잡을 수 없고 부유하는 '기억'의 느낌을 직관적으로 표현합니다. 기억은 우리 각자에게 손에 잡힐듯 세세한 부분까지 남아있지만, 결국 형체는 없는 것이니까요.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집의 의미에 대해서 서술한 책 '공간의 시학'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우리의 첫 번째 집은 단순히 과거의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꿈과 기억을 품은 장소이며,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결정짓는 첫 번째 우주이다. 그 집의 방, 복도, 구석구석은 상상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며, 우리가 떠난 뒤에도 존재한다."
'집'은 이렇듯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가 집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바로 거기서 우리가 외부에서 받은 상처들을 회복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며 소중한 기억과 꿈을 쌓아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집'은 사라지더라도 우리가 기억하는 '집'은 기억의 총합체로서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이죠.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우주를 계속해서 간직하고 또 만들어 갑니다.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의 집은, 여러분의 추억은, 여러분이 통과해 온 그 우주들은 따뜻한가요. 추억할 아름다운 집이 여러분께 많이 있었으면 합니다.
집이란 한 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곳에 따라가는 것,
언제나 반복 가능한 것이다.” - 서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