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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토리 Mar 14. 2019

7번째 내가 죽던 날 - Why?가 아닌 How?


스포주의



비슷한듯 다른 영화


7번째 내가 죽던 날은 샘이라는 한 여고생의 하루를 따라간다. 누구보다 즐겁고 두근거리는 하루를 보내던 샘은 집에 돌아가는 와중 차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하지만 어떤 운명의 장난일까? 샘은 다시 사고가 있던 그 날 아침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하루. 어떤 행동을 해도 그녀는 사고 당일의 아침으로 되돌아간다.


줄거리만 듣고 보면 전형적인 타임리프물이다. 특히나 하루가 반복되는 류의 영화는 이제껏 많이 있어왔다. 한국 영화 '하루'라던지 '해피데스데이' 가 대표적일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해피데스데이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여자 주인공, 하루가 반복되는 점, 벨소리와 함께 깨어나는 장면 등이 흡사한 장면인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중반, 후반부를 접어들면서 두 영화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두 영화 모두 갇혀버린 하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영화이지만 '해피데스데이' Why?에 초점을 맞췄다면 '7번째 내가 죽던 날'은 How?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피데스데이는 내가 '왜' 죽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그 범인을 찾고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고자 노력한다. 반면 '7번째 내가 죽던 날'은 삶의 의지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되려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죽어야 한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BECOME WHO YOU ARE


이 영화를 보며 꼭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단어가 있다면 'Hero'라는 단어이다. 샘의 어린시절은 누군가의 영웅이 될 정도로 반짝였다.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던 켄트는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엿을 날린 샘의 모습을 보며 감탄한다. 그리고 그녀를 자신의 영웅이라고 표현한다. 어린시절의 정이었는지, 아니면 불의를 못참는 성격이었는지 어느쪽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가 용감한 행동을 한 것은 확실하다.


그랬던 그녀는 무슨 일인지 영웅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시간이 흐르며 사춘기가 온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연유로 왕따를 당했던 경험 때문인지(확실치 않지만 샘과 린제이의 대화에서 이와 유사한 대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들과 함께 남들을 헐뜯고 자신을 추켜세우기 급급하다. 적극적으로 왕따에 가담하지는 않지만 그 모습을 방관한다. 어릴 적의 샘이었다면 그렇지 않았을텐데.


이쯤 되면 뭔가 아주 익숙한 스토리가 생각난다.

젊은 시절 영웅이었던 주인공은 어떠한 이유로 홀연히 사라진다. 그렇게 주인공은 잊혀진다. 다시 나타난 주인공은 굉장히 피폐한 모습이다. 그런 주인공에게 어떤 큰 사건이 벌어지게 되고 두 눈 번쩍 뜨인 주인공은 다시금 젊은 시절의 영웅적 면모를 보여준다.


뭐 이런 스토리 말이다. 이 영화는 히어로물이 아니지만 영웅의 서사를 담아내고 있다. 껍데기 같은 삶을 살아가는 샘에게 하루가 반복되는 저주가 찾아온다. 하루를 반복해 살며 샘은 본인이 깨닫지 못했던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재차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점점 다시 영웅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 켄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신의 영웅이 되돌아 온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엔딩은? 영웅적 희생이다. 줄리엣을 살리고 본인이 대신 차에 치여 죽는다. 이때야 비로소 그녀는 지옥같던 하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영화 중간중간 계속 던지는 메세지 중 하나가 바로 켄트의 방에 있던 'BECOME WHO YOU ARE' 이라는 문구이다. 의역하면 너 다운 사람이 되라 일 것이다. 어릴 적 샘의 영웅적 모습. 그 모습을 잃었던 샘이 다시 영웅이 되어가는 영화. 결국 샘은 BECOME WHO YOU ARE에 부합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앞서도 말했지만 영화는 죽어야 한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비슷하게 살아봐도, 그 상황을 피해봐도 그녀는 그 하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렇게나 막 살아봐도? 당연히 벗어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며 그녀는 하루를 어떻게 해야 가치있게 보낼 수 있는지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답을 찾은 그녀의 마지막 하루를 따라가보면 참 눈물나는 장면들이 많다. 사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기도 하고, 또 굉장히 평범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샘에게 반복되는 하루는, 주어진 그 하루는 마지막 하루이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걸 예감하고 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삶이라는 걸 인지하고 보낸 하루이다.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울음을 참으며 자신의 어린 동생을 꽉 안아주고, 친구들의 장점을 하나하나 말해주고, 자신을 영웅이라 불러주던 아이와 키스를 나누고, 자신이 못되게 군 아이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전하고..  그렇게 그녀의 하루는 끝을 향해 간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 하루를 반복하며 죽음에 무뎌진걸까?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줄리엣을 살리기 위해 몸을 내던진다. 그렇게 그녀는 또 한 번 누군가의 영웅이 된다.


이 영화? 평범했다. 정확히 말하면 엔딩 10분 전까지는 지극히 평범한 영화였다. 그렇게 줄리엣에게 사과를 하고 줄리엣이 사과를 받아줘서 다 함께 하하호호 하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던지, 줄리엣이 차로 뛰어들었지만 줄리엣을 구하고 샘도 차를 피해서 다함께 하하호호 하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던지, 대신 차에 치였지만 병원에 빨리 도착해 목숨을 건지고 하하호호 하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던지 뭐 이런 엔딩이었다면 굉장히 평범한 영화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딱 10분만에 모든걸 뒤집어버린다. 엔딩에서 샘이 죽는 건 개인적으로 정말 최고의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샘 본인이 죽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구나. 라는 시각으로 샘의 마지막 하루를 보면 영화가 색다르게 보인다. 샘의 표정이나 미묘한 감정선, 말들을 보면 따뜻함과 동시에 슬픔이 묻어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죽고 난 샘의 표정은 복잡미묘하다. 줄리엣을 구했다는 그리고 드디어 반복되는 하루에서 벗어났구나 라는 안도감. 하지만 본인이 죽었음을 알게 되며 느껴지는 슬픔과 수많은 생각.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듯 싶다가 약간은 울상인듯한 표정으로 변하는 샘의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도입부가 짜릿한 영화는 2시간동안 유효하지만, 엔딩이 짜릿한 영화는 20년도 더 여운이 남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꼽아보자면 후자에 속하는 영화이니 내 기준에서는 훌륭하다.


내가 마지막 하루를 보내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 보낼까?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영화이다. 샘만큼이나 만족스러운, 멋진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죽음 앞에 그렇게 망설임 없을 수 있을까? 초연해질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7번이나 죽어본 소녀에 비하면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할테니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우리는 모두 살아간다. 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이 영화는 살아간다. 라는 긍정 보다는 죽어간다. 라는 부정에 방점을 찍어 놓고 있다. 마냥 행복한,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게 아닌 두렵고 무서운 죽음의 하루 앞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묻는다. 문득 잊고 있던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한번 쯤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이다. 그래서 더 좋은 것 같다. 내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또 어떤 내일을 보내게 될지 스스로를 들여다보자. 들여다 본 나의 하루하루에서 의미를 찾는건 이 영화를 본 우리들의 몫이다. 하루를 반성하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의미있는 하나를 찾아보자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던지는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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