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주의, 결말 포함)
일본 느낌이 물씬 나는 영화
보고 나서 처음 드는 느낌은 참 일본 멜로 영화의 느낌을 잘 담고 있구나 였다. 일본 멜로 영화의 그 특유의 잔잔함이라던지 일본 영화나 드라마의 특징 중 하나인 조금은 유치하게 보일 수 있는 장면이나 대사들. 몇몇 장면들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등 이건 누가 봐도 일본 영화다! 라는 걸 잘 말해주고 있다.
스토리적으로도 그렇다. 대표적으로 알만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등의 작품등과 마찬가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판타지스러운 소재를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풀어나간다는 점은 일본 멜로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스토리를 살펴보면 호불호가 갈릴 법한 내용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극호이다. 나는 딱히 영화에서 현실을 잊고자 하는 판타지스러운 면을 찾는 사람은 아니기에, 오히려 현실적인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을 좋아하기에 '너와 100번째 사랑'은 나의 스타일에 맞춤형 작품이었다.
타임 리프, 그러나 반전은 없다.
이 작품은 타임 리프를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주인공인 리쿠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인생 레코드'를 통해 타임리프 능력을 지니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과거로 언제든 이동할 수 있다. 영화 속 리쿠는 완벽한 인물로 나오는데 이는 모두 리쿠가 계속해서 과거로 타임리프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완벽함을 얻게된 것이었다. 리쿠는 소꿉친구이자 여자친구인 아오이가 죽는 장면을 보게 되고 아오이를 살리고자 계속 해서 타임 리프를 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는 떡밥이라고 할만한 것을 전혀 던지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떡밥은 어떻게 레코드를 사용하지 않은 아오이가 기억을 가진채로 과거로 뛰어넘었느냐인데 친절하신 리쿠의 삼촌께서 모두 해결해주신다. 타임 리프라는 소재 자체가 사실 되게 복잡해질 수 있는 소재인데 굉장히 간결하게 하지만 핵심적으로 잘 활용했다.
미래의 사건을 바꾸기 위해 과거로 계속해서 점프하는 리쿠. 대부분의 영화라면 리쿠는 아오이를 살려야 맞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그렇지 않다. 결국 죽을 운명은 죽을 운명이다. 라는 다소 현실적인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이 영화에서 작가의 입을 빌린 캐릭터는 리쿠의 삼촌인데 이 영화의 메세지를 꿰뚫는 대사는 "소중한 지금 이 시간을 레코드나 붙이며 보낼거야? " 라는 대사이다. 아오이가 깨버린 인생 레코드를 리쿠는 다시 붙이려 노력한다. 그래야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아오이를 계속해서 볼 수 있으며 살리고자 하는 노력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수도 없이 반복해보아도 아오이를 살리는 것은 실패했으며 앞으로 실패할 것도 자명하다. 그건 리쿠 스스로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현실부정을 하고 있는 리쿠에게 툭 하고 던지는 저 대사 한마디가 리쿠를 변화시킨다.
어차피 바꿀 수 없는 미래라면 지금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라. 리쿠는 지금껏 지금, 현재라는 시간에 최선을 다 할 필요가 없었다. 잘 안되면, 시간이 부족하다면 레코드를 통해 시간을 되돌리면 그만이었다. 그에게 시간이란 무한대와도 같았으며 시간의 소중함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레코드가 깨어지고 아오이를 살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그 순간, 현재에 충실한 리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신곡 연습을 해내고 아오이를 위해 불꽃놀이를 쏠 수 있게끔 노력하는 리쿠의 모습은 멜로 드라마가 아니라 리쿠의 성장드라마를 보여주는 듯 싶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건 '어바웃 타임'이었다. 내가 워낙 레이첼 맥아담스를 좋아하다보니 여러번 봤던 영화인데 '어바웃 타임'이 던지는 메세지와 '너와 100번째 사랑'이 던지는 메세지는 비슷하다.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며 여러가지 사건을 겪지만 그 일련의 사건을 통해 주인공이 느낀 건 과거가 아니라 현실에 지금에 충실하는게 중요하다라는 것이었다. '너와 100번째 사랑' 역시 그렇다. 두 영화가 가는 길은 달라도 메세지는 비슷하니 혹시 '어바웃 타임'을 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보시라고 추천해드리고 싶다.
이 영화, OST가 대박이다.
스토리도 좋았지만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OST가 아닐까 싶다. 영화에서 아오이와 리쿠는 밴드활동을 하는데 영화에 나온 노래 모두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뭔가 저렇게 기타를 치면서 일본 여자 아티스트가 노래를 부르니 YUI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가수인데 이 영화에서 나온 노래들이 뭔가 YUI의 노래를 연상시키는 느낌이 있어서 참 좋았다. 과거의 좋았던 기억이 슥슥 지나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OST 중 한 곡을 꼽아보자면 アイオクリ(아이오쿠리) 를 꼽고 싶다. 아오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 그리고 그 상황과 맞물린 가사등을 종합해보면 가장 좋았던 노래였다. 이 노래가 나온 장면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기도 했고.
엔딩 직전에 나온 리쿠에게 아오이가 선물한 레코드에 들어있는 노래도 좋았다. 참 일본은 이런식으로 감성을 자극하고 풀어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에서 활용했던 편지라는 소재와 마찬가지로 레코드에 녹음된 마지막 편지와 노래는 영화의 끝을 사근사근 정리하면서 감성을 자극하고 풀어내는 건 일본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니 말이다.
지금은 영원하지 않다.
우리는 항상 후회를 한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후회가 부질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항상 후회는 남는다. 후회란 현재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대가이다. 후회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이다. 내가 100의 능력에서 70을 발휘해서 어떤 일에 실패했다면 " 아... 70보다 더 열심히 할 걸... "이라는 후회를 하지만 성공한다면 " 와, 70으로 성공했네? 나는 정말 효율적으로 했구나" 라며 포장하기 일쑤이다. 항상 최선을 다하지 않은 대가를 치루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최선을 다하지 않음을 열심히 포장하고 있는 우리는 후회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절대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우리는 마치 지금이 영원한 것처럼 살아간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 내가 가지고 있는 행복이 영원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모든 건 순간이다. 아차 하는 순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걸 내려놓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영화는 말하고 있다. 지금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리쿠는 후회라는 게 없었을 것이다. 왜냐고? 과거로 돌아가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아오이의 죽음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나서 리쿠는 달라졌다. 과연 그에게 인생 레코드가 없었다면, 그렇게 아오이를 떠나보냈다면 그에게 남은 후회는 얼마나 컸을까?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아오이에게 고백하지도 못했고, 지켜주지도 못했다는 그 괴로움 속에서 아마 평생을 가슴을 치며 후회했을 것이다. 리쿠는 아오이를 통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게 어째서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그는 후회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알았을 것이고,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에 후회를 남기지 않고자 아마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 않았을까? 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죽을 운명은 운명이다. 라는 운명론적인 어찌보면 되게 우울할 수 있는 메세지를 던지지만 동시에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도 보여주는 영화이다. 지금은 영원하지 않다. 그럼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운명의 화살을 조금이나마 빗겨나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