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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글 Oct 21. 2021

머리색이 해를 붙잡을 수 있다면

많이 춥지 않기를

아침, 머리를 감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미용실에 전화를 했고 염색을 하러 가겠다고 했다.

염색을 할 때는 머리에 유분이 있는 상태가 좋다는 얘기가 떠올랐고,

몇 년 전 머리색을 밝게 바꾼 후 떠났던 여행 사진을 들쳐보다

여행이 그리운 건지

그 머리카락 색이 그리운 건지

모르는 마음으로,

몸의 한 부분이라도 잠시 색을 바꾸고 싶어 졌다.(머리를 감기 싫어 염색을 하러 간 건 아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해를 새기고 싶었다.

겨울을 좋아하지만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겨울인 겨울을 사랑하긴 어려울 것 같아서.

너무 오래오래 겨울이면 추운 사람들이 정말 추워질 것 같아서.


중학교 3학년 아이가 있다.

고등학교 원서를 쓰기 시작한다.

혁신학교를 준비 중이긴 한데 적당히 간절한 마음으로, 어쩌면 떨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더해진 요상한 상태로 지난 3년을 되새김질하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처럼 춥다.

흥미 있는 학습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해 본 경험이 춥고, 고등학교 진학 후 심화, 발전시키고 싶은 주제가 아이의 삶에서 없었구나, 있어야 했나 보다.. 이런 걸 어떻게 혼자 하니. 묻고 싶다가, 그래도 혼자 하는 아이가 있긴 있겠지 대답했다가... 중등과정에 이런 걸 바라는 내가 또 꾸는 꿈인가 생각했다가... 생각은 정확히 30년 전으로 건너갔다.


고등학교 입시는 비평준화였다.

한 반에 56명쯤 있었는데 평균 20등쯤은 해야 소위 1부라 불리는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이 가능했다. 고등학교 잘 보내는 학교로 소문이 난 중학교여서 이 정도였고 이 지역의 고입 평가는 당시에도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54등-56등을 도맡아 하던 두어 명의 아이들이 이맘때쯤부터, 그러니까 10월 말에서 11월 초쯤부터, 그러니까 12월 초에 있을 고입 연합고사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막바지 피치를 올리기 시작할 때쯤부터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나서 공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공장에 딸린 학교에 다닌다고 했고 그런 고등학교를 산업계 고등학교라고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도, 공업고등학교도 상업고등학교도 아니었다.


산업계 고등학교라는 말도 아리송했지만

같은 등록금을 내고(중학교 등록금을 내던 시절이었다)

누구는 점심을 먹고 남은 수업을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 정말 이상했다.

이상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무서웠다.


처음 그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가방을 챙기고 있을 때 엉엉엉 울었다. 내가.

정작 그들은 무심히 가방을 싸고 있었는데 너무 많이 울었다.

친한 친구들이 아니었고, 특별한 관심을 두지도 않았었고, 좋아한 친구들도 아니었다.


화가 났었는데 누구한테 화를 내야 할지 몰라 더 크게 펑펑 울었고

입시에 바빴던 아이들은 나를 몇 번을 달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를 했다.


머리가 띵한 상태로 야자까지 마쳤겠지. 기억은 안 난다.


다만 산업계 고등학교에 갔던 아이 중 한 명이 중학교 졸업식 날 내게 편지를 줬던 것.

스물한 살인가 두 살쯤에 졸업앨범에 실린 우리집으로 전화를 해 아빠에게 내 연락처를 물어보고 전화를 했던 것.

딸이 하나 있었는데 남편에게 주고 이혼하고 논현동의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고, 내게 그때 논현동은 심리적으로 너무 먼 곳이라 음식점까지 찾아갈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한 번 가겠다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마쳤던 것이 기억난다.

전화 음질이 매끄럽지 못했고, 그 아이의 말을 듣기가 힘들었던 것도 기억난다.

스물한 살에 딸을 하나 두고 이혼했다는 말을 스물한 살의 나는 해석할 수가 없어서 내가 잘못 알아들었던  아닐까도 생각했다가.  지내고 있나요?


아이의 원서를 준비하다가 그때처럼 울었다.

내 아이의 중학교에도 그런 아이가 있겠지.

내 아이의 앞날이 나도 무서운데, 진학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는 열여섯 살 청소년의 가슴은 얼마나 추울까. 모르는 아이의 마음을 마음대로 상상하며 우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 그는 세상이 더 징그러울까. 생각하게 될까 봐 울음을 멈추고 글을 쓴다.


많이 춥지 않기를.

오래 춥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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