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평생 받아온 편지 중, 운 좋게 남아있는 편지를 제외하곤 행방을 모른다. 본가 서랍 구석에 박혀있기도 하고 버려진 것도 있다.
15살 학년이 바뀌기 전 무렵 롤링페이퍼를 쓴 적 있다. 서른여덟 명이 넘는 친구들에게 글로 작별을 고하느라 꽤 소란스러웠다. 안 친한 친구에겐 짧게, 꽤 친한 친구에겐 쓰다 보니 길어지기도 했다. 그 사이 반에서 제일 친했던 친구의 롤링페이퍼가 넘어왔다. 간단 명료하게 딱 한 줄을 적었다. 기억엔 아마 ‘재밌었어. 남은 얘기는 말로 하자’ 라는 식의 정 없는 ‘몇 음절의 글자’를 적었다. 본인의 완성 된 롤링페이퍼를 보고 있던 친구는 서운한 듯 이게 뭐냐고 물었다. “이렇게 말로 하면 되는데 왜 굳이 길게 써?” 웃으며 말하니 친구도 웃었다. 웃었다기 보단 웃긴 했다. 분명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받았던 편지를 가볍게 흘려보낸 이유는 내가 편지를 쓸 때 진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중할 때가 몇 번 있긴 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알릴 때, 아빠에게 핸드폰을 사달라 할 때, 최신형 MP3를 사달라 할 때. 닭 똥 같은 눈물 한 방울 떨어져 잉크 자국 번지는 연출까지 잊지 않았다. 이렇듯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만 소원 꾹꾹 눌러 담아 편지가 묵직해졌다.
일상에서 편지 쓸 일은 스스로가 만드는 거라는 걸 알지만 누군가의 생일에만 썼던 거 같다. 한 사람을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고, 한 사람을 생각하며 한 글자씩 눌러 적는다. 지금은 이따금씩 짧은 편지를 적고 쪽지 모양을 접어 내민다. 오직 상대방을 떠올리며 쓸 말을 정리하다 보면 사랑이 뚜렷해지고 괜히 애틋해지기까지 한다. 사랑해서 편지를 쓰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더 사랑할 방법은 편지를 써보는 거다. 곧 생일인 동생에게도 편지를 썼다. 편지에 못 지킬 약속은 적지 않는다. ‘잘 챙겨주는 친구는 못되지만’ ‘늘 곁에 있어 주는 친구는 못되지만…’ 이어서 장난스럽게 한마디로 내 진심을 전한다. “내가 평생 생일 축하해줄게.”
편지의 힘을 괄시한 지난날을 반성한다. 반성문 대신 퇴사를 앞둔 동생이자 친구이자 ‘나의 백수 후배’에게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는 편지를 쓸 거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며, 마냥 행복한 나날은 아닐 거라고. 꼬박꼬박 들어오던 급여보다 값진 무언가를 얻길 기도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