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벽을.... 갈고, 또 갈고, 갈고, 갈자
벽을 어떻게 갈아야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사포질 하는 건데... 층고를 2.5m로 보고 방의 한 면을 3m 정도로 계산하면, 한 방당 30제곱미터, 그런 방이 거실 주방까지 해서 5개 정도 있으니 150 제곱미터... 물론 창문이나 문 자리를 빼면 이것보다 훨씬 적겠지만... 사포 종이를 들고 단과 둘이서 사포질을 하면 아마 3년쯤 후에 우람한 팔뚝과 함께 끝수 있을 것 같다. 그라인더 같은 걸로 촥촥 대기만 하면 갈아주는 최첨단 장비가 있을 줄 알았으나, 우리의 목적에 맞는 건 없었고 있다 해도 비싸서 살 엄두를 못 냈을 것 같다.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 Sander를 Home Depot에서 70불 주고 샀다. 홈데포는 온갖 하드웨어를 파는 곳으로 종로 상가에서 파는 자재들을 한 곳에 모아 파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하드웨어계의 이마트라고나 할까? 정말 없는 것이 없다. 캐나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택에 살다 보니 집을 보수할 일이 많고, 사람을 쓰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울며 겨자 먹기로, 혹은 취미로 대부분 집을 직접 보수한다. 심지어 여기서 파는 자재들로 집을 짓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각종 파이프, 목재, 장비들, 장판, 페인트 심지어 샤워 부스까지 판다. 내가 사는 몬트리올에는 Home Depot와 Reno Depot가 제일 규모가 커서 단과 나는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두 곳을 모두 가보고 가격이나 품질이 더 나은 곳에서 쇼핑을 했다.
우리는 벽을 간 후에 회반죽(Plaster)으로 면을 다듬어야 하기에 그레이드 40 정도의 거칠거칠한 사포 종이 팩도 함께 구매했다. 복도의 벽까지 다 가는 건 무리여서 복도를 제외한 곳만 갈아야지. 힘들어서가 아니라 인테리어로!! 절대 힘들어서가 아니라... ㅎㅎㅎ
처음에는 얇디얇은 저렴이 마스크를 썼는데 미세먼지가 장난이 아니었다. 끝내기도 전에 폐병 걸려 죽을 것 같은 느낌? 살기 위해 필터 달린 마스크를 60불 주고 2개 샀다. (타이틀 사진에 보이는 분홍 필터 마스크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애들이 이런 거 쓰고 다니는 거 보고 신기해했는데, 거기 야외 공기 질이 회반죽 사포질 할 때 나오는 미세먼지 수준으로 안 좋았나 보다.
사포질은 한 군데서 한 번만 스윽하면 되는 게 아니라 같은 자리를 열 번 이상 체중을 실어 밀어줘야 어느 정도 매끈해진 면이 나왔다. 그것도 완전히 평평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해서, 큰 요철만 없앤 후에 회반죽을 발라야 할 것 같다. 2시간 열심히 해도.. 한 벽의 삼분의 일 정도를 할 수 있었다. 아이고... 벽을 삼등분했을 때 중간이랑 밑부분은 그나마 할 만했지만 제일 윗부분은 10분만 해도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의자 위에 올라서야 했기 때문에 자세도 불안정하고 먼지가 위에서 떨어지다 보니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었다. 벽을 갈다 보니 그전에 페인트 칠했던 색깔들이 하나둘씩 보였다. 밝은 핑크색, 초록색... 흥미로운 색깔들이군. 샌더가 하나였기 때문에 교대로 작업을 하면서 사포질을 안 하는 사람이 바닥과 보더를 망치와 정을 이용해 떼었다. 샌딩 하는 작업이 너무 고되어서 바닥을 때는 순간이 무척 행복하게 느껴졌다. 작업한 결과가 바로 보이기 때문에 성취감도 있었고 :) 보더와 바닥을 떼는 작업은 모서리에 박힌 못 들을 제거해주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여기는 대부분 아귀를 맞추어서 설치하는 나무 바닥을 설치하는데, 현재 설치되어있는 것은 0.8 cm 두께였다. 새로 설치할 때는 아마 1cm 두께로 더 두꺼운 바닥을 설치할 듯싶다.
샌딩/바닥 장판제거/보더 제거 이 세 가지 공정을 하는데 거의 1년 반이 걸렸는데, 이유는 첫째, 일하는 날보다 안 하는 날이 많았다. 우리가 임시로 살았던 반지하도 점차 살기 아늑해졌고 그곳을 꾸미는 것도 무척 재밌었던지라 반지하 인테리어가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나니 2층 공사를 열 올려서 할 모티브가 부족해졌다. 지금 월세를 내고 어딘가에 살고 있거나 거주하는 환경이 안 좋았다면 어여 끝내고 여기서 살아야지! 하고 했을 텐데... (핑계 ㅎㅎ) 그리고 단은 일하고 나도 학교/불어 이것저것 알아보고 배우며 방황하느라 리노베이션에 신경을 쓸 여력이 부족했다. 두 번째, 작업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밤에는 망치질하는 소음 때문에 작업을 못 해서 주로 주말 오후에 일을 해야 하는데 2,3시간 동안 샌딩 작업을 하면 어깨랑 팔이 빠질 듯 아파서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벽 갈고, 바닥 떼고, 보더 떼는 데 썼다. 덤으로 중간중간 벽이 무너진 부분을 드라이 월로 보수하며 완벽하진 않지만 전보다는 훨씬 평평한 벽을 완성하게 되었다.
정말 이때를 생각하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한 우리가 자랑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