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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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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레이 Dec 22. 2021

소꿉놀이

갖지 못한 노스탤지어


아주 어렸을 때, 떠올리기만 해도 반짝이는 기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신가요?


나는 좀 안타까운 것이, 아주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보려고 해도 선명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거예요. 가끔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꼬꼬마 시절 잠깐 만났던 친구의 이름과 신체적 특징까지 기억하고, 수십년 뒤 운명적으로 재회하잖아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수십 년 전 내 사진을 봐도 너무 새롭고 낯설 지경인데... 그저 내가 기억력이 너무 나빠서 공감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조각조각 흩어져서 맞추기 어려운 퍼즐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작은 조각들 중에서 제법 큰 덩어리를 가진 기억이 있긴 해요. 아마도 5~6살 사이인 것 같은데, 유치원을 다녔던 순간들이 떠오르거든요. 10대 때 극심한 사춘기를 겪으며 많이 가라앉은 나에게, 부모님 친구분들은 꼭 한 마디씩 하시곤 했어요.


" 너 어릴떄 맨날 막대기 들고 망아니처럼 뛰어다니던 사고뭉치였는데, 기억 안나니? 하루 종일 혼자 노래 만들어서 부르고 춤추고 다녔잖아. 장기자랑도 매번 1등으로 나와서 하고...


많이 변했네? "


내가? 시니컬하기 짝이 없는 내가... 그런 때가 있었다고? 발표 시간에도 목소리가 덜덜 떨리는 찌질한 내가 무대를 휘젓고 다녔다고? 그떄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똥꼬 발랄했던 시절이 전혀 기억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런 코멘트들이 자극이 되었던 것인지, 가끔 키 크는 꿈을 꿀 때, 왜 높은 곳에서 훅! 떨어지는 꿈을 꾸면 키가 큰다고 하잖아요. 그런 꿈을 꿀 때 꼭 등장하는 언덕길이 있었어요.


사진 출처 : https://blog.daum.net/1004co2/7646268(최근 촬영본이라고 하는데, 기억 속 언덕길과 제일 비슷해요.)


그러니까 내가 장꾸였던 5살쯤 무렵 우리 가족은 부산 문현동 언덕 꼭대기에 있는 집에 살았는데, 마당 있는 단층 주택이었던 그 집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고 동생을 가져 배가 부풀어올랐던 엄마의 모습, 까만 머리를 쪽지고 한층 젊었던 할머니의 얼굴도 떠오르는 거에요.


사진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brainstorm81&logNo=3017982


그리고 꿈속에서 나는 이런 슈퍼마켓 앞에서 쫀드기를 얻어먹기도 하고 나뭇가지 같은 걸 들고 와다다다 뛰어 다니며 다른 애들을 쫓아가기도 하는 것이죠. (유치원 짝꿍이었던 남자아이를 그렇게 때리고 괴롭혔다고 하네요. ㅠ ㅠ) 하얀 커버를 씌운 식탁 아래에 숨어 있으면 할머니가 "찾았다!" 소리치며 안아주신 장면도 번쩍 떠올랐는데, 늘 무뚝뚝했던 할머니에게 이런 다정함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롭게 느껴졌죠.


물론 꿈속의 전개는 늘 괴랄맞아서, 그 높은 언덕길을 아무리 쫓아 올라가도 결국 꿀렁꿀렁 대다가 나를 나락으로 내치는 이상한 결말로 끝나곤 했지만요. 그래도 그런 꿈을 가끔 꾸면서 잊고 있었던 내 어린 시절들을 떠올려 보곤 했어요. 극 기억이 진짜였는지, 내 꿈에서 만들어낸 가짜 추억인지는 아직도 몰라요. 하지만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소중한 걸 찾아낸 것 같은 작은 기쁨이 있었어요.



artwork by LazyRay( Playing House / 4000px * 2834px / Created in 2018 )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내 인생에서 절대로 그 반짝이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걸까. 걱정이라곤 '뭘 하고 놀아야 오늘 하루 더욱 재미있게 보낼까?" 이것 하나밖에 없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죠?


설사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아무런 계산없이

아무런 가면도 쓰지 않고


오롯이 즐겁게 그 시간을 누릴 수 있을까요?


난, 이미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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