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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란 Feb 12. 2019

의미 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일 1

꽤 늦은 시간, 

오랜만에 보자는 너의 말에

그러겠다 대답한 것은 

순전히 내 외로움 때문이었다.

어느 날부턴가가 시작된 그 하릴없는 마음은 

숫기 없고 부끄러움 많은 나조차도

짓궂고 약삭빠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서점 .

너가 오는 그 시간까지 나는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오늘 집 밖을 나서면서부터 했던 생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뺐다 꼽았다 하며 마음 맞는 글귀 하나 있으면

선 김에 깊이 빠져보겠다고 언젠가 꿈꾸었던 날들이 있었다.

반복되는 출퇴근과 함께 오래전 전부 사라져 버린 것 같던 그 열망이

오늘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살아났기에.


책을 펼쳤다. 

습관적으로 향한 곳이 여행서적이 가득한 코너라 

나도 모르게 손이 여기저기로 뻗쳐가고 있었다.


일본에 관한 책이었다.

오사카. 

언젠가 너가 함께 가자고 했던 그곳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꺼낸 것인가 하고 묻는 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답할 것이다.

그런 건 너무 철없고 순진한 일시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으니까.


'위이잉'

몇 줄, 그곳에서 유명한 음식 사진 몇 개와 

작가의 덧붙인 글 같은 것을 읽다 보니

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낯익지만 늘 낯설게만 다가오던 그 음성이 

오늘 나는 좀 더 듣고 싶어

전화를 끊지 않고 만날 때까지 들고 있기를 청했다.


너는 오래지 않아 자리에 나타났다.

"여기서 뭐 해"라는 말과 함께.

그래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걸까 한 1초간 갸우뚱하다 너의 얼굴을 보았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표정,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지 내내 싱글벙글한 너를 보니,

오늘 저녁도 별 맛없을 것이다. 

어떤 유명한 음식점에 간들, 

내 잃어버린 입맛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바깥의 날씨는 꽤 쌀쌀했다.

2월이나 되었건만, 아직 겨울이라는 건가.

사람들은 바삐들 어딘가로 스쳐갔고

너는 내 곁에서 걸으며 이런저런 일상을 풀어놓았다.

나는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였으며, 

너의 말을 끊고 속에 담아두었던 감정을 뱉는 대신,

응- 그래- 하는 식의 짧고 간단한 대답만을 주었다. 

나에게는 절대 남지 않을 것이나, 너는 분명 무언가를 남기고 있었다.


꽤 시끌벅적한 일본 가정식 요릿집의 문을 열고 자리에 앉으니

웬일인지 조용해진 너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 말했다.

나는 티슈를 꺼내 내려놓으며, 포크와 젓가락을 가지런히 그 위로 올려두었다.

아직 음식도 시키지 않은 주제에 

먼저 준비를 하는 것은 

언제나 너가 없는 자리에서

습관처럼 이루어지던 내 행동들이었다.


잠시 후,

점원이 메뉴판을 들고 나에게 내밀었다.

"주문은 손들고 저 부르시면 돼요"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를 이 시끌벅적한 곳에서 부르라니...

분명 아직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거나, 

내 목소리가 아주 클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줄곧 다짐했었다.

의미 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일 따위, 하지 않으리라.

아무리 멋진 풍경이라도 해도, 곧잘 지워져 버리는 내 기억력을 생각하더라도

아무것에나 렌즈를 들이밀며, 찰칵하진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너무 우습다.

너는 생각지도 못한 것을 품고 있는 내가 처량하다.

모르겠다 갑자기 그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오늘 억지로 맞잡은 

이 약속이, 녁식사가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닐까 하고.


너는 손에 물기를 묻힌 채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런 너를 향해 티슈를 건네며,

연어와 돈카츠가 포함된 세트메뉴를 주문하였고,

누군가의 취향을 생각한 내 선택에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올 뻔하였다.

'연어 같은 건 좋아하지도 않는 주제에..'


생선은 오래전부터 좋아하지 않았다. 비려서.

그중에 연어란 녀석은 느끼하기까지 해서 더더욱 사절인 음식이었다.

도대체 왜 이 비린 것을 좋아하는지, 어린애 입맛처럼 돈카츠는 또 뭐고..


하지만 기대감에 가득한 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그래 아무렴 뭐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시간은 느긋했다.

너가 연일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메뉴가 나오고서도 몇 분이 지난 후에야 포크를 집어 들 수 있었고

너는 무엇이 그리도 할 말이 많은지 쉬지 않고 이야기를 늘어놓는 탓에 

나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너는 즐거운 것 같아 보였다.

갑자기 잡은 약속에 화답한 내가

너에게 퍽 마음에 든 것이었나 보지.


다시 나온 바깥은 

더 쌀쌀해져 있었다.

밤이면 바람이 많이 불어 더 추울 거라던 일기예보는 웬일로 정확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도 없이 근처 카페로 몸을 들이밀었고,

따뜻한 홍차라떼와 카페라떼 한 잔이 우리 둘 앞에 놓였다.


"춥다 그렇지"


너는 멍청한 눈을 하고선 별안간 그런 말을 했다.

남자 녀석이 추위는 왜 이렇게 많이 타는 건지

평소에도 나보다 더 덜덜 떨곤 했다.


"할 말 있다며"


대답은 않고, 퉁명스레 던진 내 말이 신경 쓰였던 건가

너의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바뀌었다.


"화났어?"


화났으면 어쩔 건데.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쿨한 여자니까.


"아니"


나는 불필요한 이해를 돕는 대신  덜 퉁명스럽게 대답하기로 했다.


"근데 왜 꼭 화난 것처럼 말해. 섭섭하게."


"됐고. 용건이나 말해. 나 추워서 빨리 집에 가고 싶으니까"


섭섭하긴 무슨. 언제나 여지를 주고, 뭔가 큰 의미라도 있을 법한 말을 하는 건

너의 특기이자 버릇이었다.

늘 그런 식이니까 내가 정리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거다.

말하자면 다 너의 탓이라는 거다.

꼭 빨리 집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고는 싶었다.

너와 말을 하고 있자면, 내가 뜻한 바대로 [정리]라는 것을 할 수 없을 테니

스스로에게 내린 처방 같은 거였다.


"가시나. 말 진짜 못되게 하네~"


못됐단 소리는 지금의 나에겐 칭찬 같은 거다.

청천벽력같이 들리겠지만, 우리에겐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멀리, 아주 오래는 아니지만 되도록 그것에 가깝게 되어

서로를 향한 감정의 정체를 부디 멀리 할 필요가 있으니까.


너는 내 앞의 홍차라떼를 가져가 한 잔 입을 대더니

툭 내려놓고는 말했다.


"맛 더럽게 없네. 이런 걸 뭣하러 먹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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