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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키 Jan 06. 2018

태양이 마치 지갑을 스치는 월급마냥 뜬다

어둠속에 눈을 뜨고 점심먹고 커피마시면 해가 지기 시작한다.

  처음 우메오에 도착했을 때는 한국에서와 별로 다를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날씨는 훨씬 좋았는데, 더위가 기승을 부린 한국 여름 막바지에 제법 시원한 곳으로 날아오니 마치 휴가 온 것 같았고, 잔디밭에 앉아 태양을 쬐는 학생들을 보며 '한가로운 때'를 느끼는게 다였다. 그땐 몰랐지.. 해만 나면 뛰쳐나오는 이유를...

"밤은 날마다 태양을 먹고 길어지는 것만 같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8월 말에는 해가 9시가 넘어서 지고, 4시면 해가 뜨기시작해서 하루를 굉장히 길게 사는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첫 몇주는 정신이 없어 시간의 변화는 못느꼈지만, 10월 중순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급격히 해가 짧아진다는 느낌이 들기시작했다.

밤이 스네이크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곤한다.

매일 매일 밤은 조금씩 조금씩 낮을 먹어가며 몸집을 늘리는것만 같았다. 해는 기세에 눌린듯 눈치보며 겨우 모습을 드러내고, 쫓기듯 몸을 숨긴다. 밤이 스네이크 게임을 하듯 하루하루 조금씩 조금씩 길어진다. 아마 제 덩치를 못이겨 스스로 꼬리를 물 때쯤 다시 낮은 길어질 듯 하다.

요즘은 점심먹고 설거지하고 커피 내리며 한숨 돌릴까 싶으면 노을지는 하늘이 맞아준다. 날씨가 좋을 때면 하늘은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게하는 마법을 부린다.

전문 포토그래퍼가 아니어도 이곳의 하늘은 자비롭다. 하지만 대략 4시 전후로 찍은 사진들이라곤 내가 찍어도 믿기 힘들다.

  해가 지는 동안 잠시 감상에 빠져있다가도 너무나도 빨리 어두워져버려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해가 지니 이제 마무리를 해야할 것 같은데 막상 한건 별로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평소에도 워낙 저녁형 인간으로 살아와서 오히려 이런 어두운 하늘은 나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기분이다. 한국에서 해가 지면 덩달아 마음도 차분해져서 '아 오늘 하루도 벌써 이렇게 보냈어.. 안돼 얼른 앉아서 과제/팀플/보고서 해야지..'를 이곳에서도 여전히 실천중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7시 넘어 자리에 앉았다면 이젠 4시쯤 자리에 앉아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가 저녁을 먹고 다시 글자들과 씨름을 시작한다. 낮동안 학교에서 너무 시달려서(워크샵 두개를 연달아 달리면 진짜 진빠진다..) 이른 저녁을 먹고 저녁 시간(해가 져 있는 시간)을 좀 '낭비'하면 8시 밖에 안 됐다는 사실에 기뻐하곤한다.(왠지 득 본 느낌이다.) 해가 다 지고 밥도 먹고 여유부리며 게임도 했는데 여덟시밖에 안됐다니.. 두 시간정도는 내일 수업을 준비 할 수도, 방을 청소할 수도, 장을 보러 나갈 수도, 내일 저녁 재료를 다듬을 수도, 아니면 작정하고 앉아 영화를 보면서 즐길 수도있다니!! 해가 지면 일을 시작하는 나로서는 오히려 이곳 스웨덴 우메오의 어둠이 감사하다. 여름엔 어떡하지...


그래도 광합성은 필요해

  인간이 비타민 D를 합성하기 위해서는 태양이 필요하다고 했다. 스웨덴 오기 직전, 친구들이 사랑과 자비로 베풀어준 비타민 D로 매일 아침을 시작하니 아마 비타민 자체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 상태는 꽤나 햇볕을 갈구하고있다. 게다가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을 관찰하고 만끽하려면 해가 떠있을 때여야한다. (남는 건 사진뿐인데 내 핸드폰은 밤에 찍을 수 있는 능력이 안된다.) 하지만 날이 흐릴때면 이조차 쉽지않다. 해가 떴는지 확인도 되지 않는 구름 낀 하늘이 나를 맞이할 때면, 여름 휴가 때 그토록 피해다니기 바빴던 햇볕을 그리워하곤 한다.


나처럼 이렇게 자연광을 그리워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조금 독특한 시설을 마련해두었다. 바로 Aurora Room이다. 

출처: http://www.ederma.net/

학교의 학생건강서비스센터에서 제공하는 오로라룸의 동영상이다. 화이트톤 인테리어로 꾸며진 방인데, 조명은 자연광 램프로 되어있다고한다. 이 글을 쓰려고 잠시 오로라룸을 들렀는데, 사실 일반 형광등과 별다른 차이를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햇볕'은 아무래도 따듯하게 내려쬐고 꽤나 눈부신 느낌인데, 이곳의 조명은 눈이 피로하지 않은 정도에 온도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어둠에 지치고 밝은 곳에서 쉬고 싶다면 들러도 좋을 듯하다. 게다가 이곳은 '공부를 위한 장소로 제공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으니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당연히 조용하고 안정된 장소로서의 목적이 있으니, 시끄럽게 떠들거나 통화, (소리를 켠)게임, 비디오 감상은 금물이다. 흥미를 위한 종이책을 한 권 가볍게 가져가는게 가장 좋은 선택일 것 같다.(긴 겨울동안 한국에서 가져온 '북유럽 신화'를 여기서 읽어야겠다..) 오로라룸은 월-금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열고, 도서관과 이어진 사회과학대건물에 위치하고 있으니,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잠시 들러도 좋을 것 같다.

우메오대학교의 오로라룸과 관련한 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고!

http://www.student.umu.se/english/during-your-studies/student-health-service/aur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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