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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시형 Jul 28. 2016

'떠남'이란 언제나 설레던 것이었다.

누군가를 떠나는 게 아닌, 어디론가 떠나는 것


내게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던 것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것, 

새로운 사람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

매번 같은 혹은 비슷한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엄청난 설렘으로 다가왔다.



소풍날 아침, 김밥 써는 도마소리에 주방으로 달려 가면 김밥은 없고 당근만 있었다.

김밥을 만들기도 전에, 재료 손질하는 소리에,

그 새벽에 일어날 정도로 밤잠 못자게 하던 그런 설렘.

잠을 충분히 못자도 상쾌한 아침이었다. 

떠나는 날이었으니까.


떠나는 날은 몸이 먼저 반응한다. 

6시, 7시, 8시 계속 눈이 떠진다. 


 그건 지금도 그대로다.

'떠남'에 대한 설렘.  


하지만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지킬 것이 좀 더 많아진 지금에는

몇 가지 생각이 더 공존한다.





죽어도 좋다.


2006년 7월, 세계무전여행을 떠나며 나는 생각했다.

24살밖에 되지 않았고 앞으로 살 날이 훨씬 많겠지만 

혹시 내가 여행 중에 아파서, 나쁜일을 당해서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죽는 건 괜찮을 것 같다.







어찌보면 당찬, 우습기도 했던 각오였다.

돈 없는 무전여행이라도 '죽음'은 쉽게 찾아오지 않겠지만

그냥.

그정도로 좋아하는 일에 열정적이었던 때였다.  





하지만 여행을 떠난지 네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은 바뀌었다.

죽고 싶지 않다.


말 그대로 죽어도 좋다가 아닌, 죽고 싶지 않다.

동유럽으로 넘어오며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향하던 때, 

많은 현지인들이 '인신매매' 등을 이야기 하며 히치하이킹이나 무전여행은 위험하다고 말했고

나는 그게 두려웠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여행 초반이었다면 괘념치 않고 그곳을 지나 터키로 향했겠지만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경험을 한 이후였다. 

그동안 했던 경험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죽어 없어질 수 있다는 게 불안했다. 

그 여행에서 느꼈던 소중한 경험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내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난 결국 루마니아 국경 앞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이 딱 그런 기분이다. 



페루 푸노로 향하던 길, 2014



며칠 후 나는 다시 남미로 떠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떠남'이 주는 설렘보다 다른 감정이 앞선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지만 테러나 치안문제에 대한 두려움,

벌서 다섯번째인데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이니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

현지 재료수급, 행사장소, 주차 등에 대한 걱정,

그럼에도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하고 긍정적인 기대. 


지키고 싶은 것이 많아서일까.

생각이 많아서일까.

나이가 들어 '떠남'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일까.




그래도 막상 떠나면 즐겁겠지. 즐기겠지.

그렇게 잘 다녀오겠지.

그리고 또 가고 싶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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