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 해외봉사단원 현지적응훈련
내가 파견될 임지는 소야팡고(Soyapango)라는 지역의 대한민국명 학교였다. 정식 명칭은 Centro Escolar Republica de Corea이다. 정부나 외교부에서 세운 건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 교민들과 관계된 곳도 아니었다. 그냥 교명만 이렇게 지은 것이다. 현지에는 이런 학교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교명을 이렇게 짓고 학교 내부에 그 나라의 사진이나 국기 등으로 장식을 하고 가끔 그 나라와 관련된 행사를 하면서 원조를 받는 것이었다. 대한민국명학교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다목적 체육관 건설 등 여러 크고 작은 원조를 받았다. 이번에는 코이카에 단원까지 요청해 이렇게 파견까지 이뤄낸 것이다. 덕분에 내가 이곳에 왔다.
나는 마리오와 함께 이곳에 파견됐다. 나는 태권도 교육, 마리오는 수학 교육 담당이다. 소야팡고는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차로 20~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소야팡고라고 적힌 도로 표지만을 지나자 시내가 보였다. 버거킹, KFC 같은 패스트푸드점, 우니센트로(Unicentro)라는 커다란 멀티플렉스, 월마트 같이 대형 마트도 있었다. 이 정도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생활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해외봉사하면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을 떠올리게 되지만(물론 정말 그런 오지에 파견되어 활동하는 단원들도 있다) 이곳에서는 그렇게까지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하는 단원은 없었다. 대부분 코아키에 단원 파견을 요청하는 곳이 시청이나 체육협회, 보건소, 학교 같은 공공기관이었다. 그리고 코이카 사무실도 단원들의 안전과 건강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돌발상황에 지나치게 통제가 안 될 만큼 취약한 곳엔 잘 파견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점점 학교가 있는 안쪽 동네로 들어갈수록 빈민가처럼 보이는 허름한 주택가가 나왔다. 당시에 소야팡고의 시장이 소속된 정단은 붉은색을 상징으로 하는 좌파 FMLN(파라문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의 소속이었기 때문에 시청과 몇몇 집들은 외벽을 붉은색으로 칠하고 있었다. 작은 구멍가게 만한 상점조차도 안에는 산탄총을 든 경비가 서 있었고, 길가엔 복면을 쓰고 무장한 군인이나 경찰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쓰레기들까지 을씨년스러웠다.
엘살바도르는 치안이 그리 좋은 곳은 아니다. 인구대비 총기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전쟁이나 분쟁국가를 제외하고 늘 상위권을 차지할 만큼 살인이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엘살바도르 안에서도 소야팡고는 치안이 더 안 좋기로 악명이 높았다. 나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엘살바도르에 있는 갱단인 마라(Mara)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La vida loca> 주 촬영 장소도 이곳 소야팡고였다.
나는 엘살바도르에서의 첫날밤을 잊을 수 없다. 늦은 밤 들려오는 흡사 총소리를 연상케 하는 굉음 때문이다. 시차 때문에 그렇게 피곤했는데도 밤늦게 울려 퍼지는 굉음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코이카 사무소 현지인 직원은 폭죽소리라고 우리를 안심시켰지만 내게는 그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물로 현지인 직원의 말이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 소리들 중 몇 개는 진짜 총소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총소리를 들은 게 불과 한두 달 전이었기 때문이다. 육군 훈련소에서 사격을 할 때 하루 종일 들었던 그 총소리 말이다. 나는 총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두려웠다. 그래서 호흡이 자꾸만 떨렸고, 사격 훈련 때 3차 시도까지도 통과를 하지 못하고 사격장에서 내내 엎드려쏴 자세를 하고 사격 연습을 해야 했다. 총소리는 내게 그리 낯선 게 아니었다.
폭죽소리는 소야팡고에서도 났다. 산살바도르와 달랐던 점은 소야팡고에서는 사이렌 소리도 들렸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현지인들이 확신에 차서 그것은 총소리가 아니라 폭죽소리야,라고 나를 안심시켜주지도 않았다. 그들도 확신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이 정말 총소리가 아닌 폭죽소리라는 것을 말이다.
마침내 도착한 대한민국명학교의 정문은 커다란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었다.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높은 인디고 블루로 칠해진 철문이었다. 우리를 이곳까지 데려다준 코이카 사무소 직원 호세는 차에서 내려 동전으로 철문을 두드렸다(엘살바도르에서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릴 때 열쇠나 동전을 주로 사용한다.) 쇠끼리 부딪히는 차가운 소리가 짧게 세 번 울렸다. 잠시 후 성인 눈높이에 위치한 작은 미닫이 문이 열리며 철문 너머의 모습이 드러났다. 작은 문에도 촘촘하게 창살이 쳐 있었다. 사람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작은 문이었다. 그곳으로 밖에 누가 왔는지 신원을 확인하는 한 남자의 긴장된 눈빛이 보였다.
잠시 후 붉은색 티셔츠와 펑퍼짐한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커다란 철문을 열었다. 남자는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호세는 다시 운전석에 앉아 스타렉스로 철문을 통과해 학교 안에 주차했다. 차가 다 들어간 것을 확인한 남자가 다시 커다란 철문을 닫았다. 차에서 내리자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쓴 흰색 스포츠머리를 한 남자와 키가 작고 풍채가 있는 중년의 여자가 얼굴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 우리를 맞았다. 교장 선생님 프란시스코와 교감선생님 롤리였다. 교장선생님과는 악수를 했고, 교감선생님과는 가벼운 포옹과 베소(Beso, 볼키스 인사)를 했다. 그밖에 몇몇 선생님들도 우리를 반겨주었다. 방학 중이라 학생들은 없었다.
학교는 이층짜리 'ㄱ'자 건물과 'ㅡ'자 건물이 각각 있었고 'ㄱ'자 건물 중앙에는 작은 풋살 경기를 시멘트 바닥 운동장이 있었다. 대각선으로 이 학교에서 가장 큰 건물이 보였다. 인디고 블루 색깔의 골함석지붕이 있는 다목적 체육관이었다.
교감선생님 롤리는 우리를 교장실로 안내했다. 교장실엔 엘살바도르 대표 음식인 뿌뿌사(Pupusa)가 준비돼 있었다. Bienvenidos(환영합니다)라는 글자들이 인쇄된 A4용지들이 벽에 붙어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소개하고 뿌뿌사를 먹었다. 뿌뿌사는 호떡처럼 생겼는데 옥수수가루로 반죽해 강낭콩, 돼지고기, 치즈 등으로 속을 채운 음식이다. 커다란 머그잔에 담긴 커피도 함께였다. 아주 단 커피였다.
나는 내 이름을 캘빈(Calvin)이라고 소개했다. 안드레스는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드레스는 나와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안드레스라고 소개를 하면 다들 이름과 외모가 매치가 잘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새로운 이름을 캘빈으로 한 건 쇼핑몰에서 캘빈클라인 매장 앞을 지날 때 캘빈이 무슨 뜻인지 묻는 내게 그건 사람 이름이야,라고 마리오가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캘빈, 굉장히 그럴듯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내 이름을 캘빈이라고 소개했을 때 사람들은 안드레스라고 할 때보다 더 의아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교장선생님은 나를 자꾸만 케빈이라고 불렀다. 그때마다 내가 캘빈이라고 수정했지만 그는 금세 다시 케빈이라고 불렀다. 급기야 나중에 현지적응훈련을 마치고 임지에 파견됐을 땐 커다랗게 Bienvenidos Mario y Kevin(마리오와 케빈을 환영합니다)라고 붙여놓아 그때부터 나는 속수무책으로 케빈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한두 명이 나를 이렇게 불렀다면 케빈이 아니라 캘빈이라고 다시 고쳐주었겠지만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케빈이라고 부르니 캘빈이라고 나를 소개하는 건 더 이상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모든 걸 포기하고 나를 케빈으로 소개하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도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첫 스페인어 이름을 얻었다. 안드레스도 아니고, 캘빈도 아닌 케빈이라는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