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ICA(한국국제협력단) 첫 번째 파견은 군복무를 대체하여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선발 과정에서 실기에 합격한 후 최종 면접에 들어갔다. 준비된 답변을 하던 중 태권도는 군대에서 가르칠 수도 있는데 왜 굳이 해외봉사단원으로 파견되어 태권도를 가르쳐야 하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나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준비된 답변이 있기는 했지만, 아마도 이 질문을 직접 듣자 순간 나 또한 나의 진정성을 의심했던 것 같다. 나에게는 내가 꼭 봉사단원으로 파견돼야하는 당위가 없었다. 애초에 군복무를 대체해서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말에 혹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 면접은 그렇게 끝이 났고 나는 당연히 불합격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엘살바도르 행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해서도 나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현지에 도착하면 TV에서 보던 봉사단원의 활동과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모든 게 준비되어 있어서 나는 봉사단원으로 활동만 하면 될 것이라는 환상은 곧 깨진다. 어쩌면 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수혜기관은 그리 열악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곳에 내가 없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일도 없어 보인다. 심지어는 나로 인해 자신의 일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는 코워커와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나쁜 치안, 열악한 환경에도 노출된다. 풍토병에 걸리기도 하고 강도를 당하기도 한다. 아직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것 같지도 않고 현지어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은데 몇 개월이 훌쩍 지난다. 시간을 그냥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만난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나의 태권도 수업에 찾아온 아이들, 나의 현지 적응에 도움을 준 사람들, 내게 고맙다며 과일을 준 학부모, 휴가를 혼자 보내는 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준 가족, 배탈이 났을 때 나를 응급실로 데리고 갔던 시니아, 그밖에도 떠오르는 수많은 얼굴들.
엘살바도르에서 첫 번째 단원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후 나는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어떤 이유로 해외봉사단원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든 간에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내가 만났던 엘살바도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이타심이 존재했다. 첫 번째 봉사단원 생활을 마친 후 비로소 나는 봉사단원으로 떠날 준비가 되었다. 그렇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같은 해에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다시 엘살바도르에 봉사단원으로 지원했다. 나의 두 번째 엘살바도르 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