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에 가기 전
나는 KOICA(한국국제협력)를 통해 엘살바도르에 2번 다녀왔는데, 한 번은 협력요원으로, 한 번은 해외봉사단원신분이었다. 처음 갔던 협력요원은 지금은 사라진 군복무대체 해외파견 제도였다. 나는 태권도 교육 직종으로 지원을 했고 희망국가였던 세네갈이나 도미니카공화국 대신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엘살바도르라는 나라에 파견이 확정됐다.
내가 엘살바도르에 간다고 했을 때 그곳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곳은 "위험한 나라"라고 했다. 다짜고짜 위험한 나라라니, 걱정이 앞섰다. 차라리 듣지 못한 편이 더 나았을까. 인터넷에 검색해 본 엘살바도르는 구원자라는 "엘살바도르 El Salvador" 그 자체의 의미와는 반대로 구원받지 못한 나라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엘살바도르에 간다고 하자 한 노교수님은 나에게 점심을 사주겠다고 불렀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교수님은 먼저 나와 중국어 공부를 하고 계셨다.
"나이가 들어도 공부를 해야 돼요. 내가 십 년만 더 젊었어도 다른 외국어도 공부하고 그랬을 텐데 참 아쉬워요. 그나저나, 엘살바도르에 간다고요? 그곳은 어떤 곳이죠?"
나는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곳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인터넷에 검색을 해서 알아낸 몇 가지 정보들을 말씀드렸다.
"일단, 치안이 매우 안 좋은 나라래요. 음주운전을 하다 걸리면 사형을 시키는 아주 무서운 나라라고 하더라고요. 총기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고, 멕시코 아래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사이에 있고, 날씨가 덥나 봐요"
내가 알고 있는 엘살바도르는 이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음주운전을 하다 걸리면 사형을 시킨다는 건 아주 터무니없는 헛소리였다. 대신 총기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은 맞았다. 인구 10만 명 당 살인으로 인한 사망자 수 비율이 전쟁이나 분쟁국가를 제외하고 늘 상위권에 있는 곳이었다.
"아주 살벌하네. 이름은 참 예쁜데. 엘. 살. 바. 도. 르...... 멕시코 아래면 중남미에 있겠군요. 잘됐네요. 그곳에 가면 꼭 여유를 배우세요. 이곳에서 여유를 배우는 것보다 더 수월할 거예요. 그리고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해요. 위험한 곳이라고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어요. 그런 곳에 보내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처음이었다. 엘살바도르에 가는데 무언가를 배우고 오라는 말을 들은 것은. 게다가 그것이 여유라니. 내가 사람들에게 엘살바도르에 간다고 하면, 내게 돌아오는 반응은 '그게 나라 이름이야?' '어디에 있는 곳이야?' 같은 질문을 한 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스마트 폰으로 엘살바도르를 검색한 후에는 그리 가난하고 위험한 나라에 뭐 하러 가냐며 막말을 하거나, 부디 몸조심 하라며 걱정 섞인 위로를 할 뿐이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나는 괜히 의기소침해져서 '이런 나라에 가도 될까' 하는 의심을 하곤 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부터 더 이상 그곳은 두려운 곳이 아니었다. 그제야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 차분해졌다. 그렇다. 아직 가본 적도 없는 엘살바도르에 대해서 남들 말만 듣고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어쩌면 한국에서는 배우기 힘든 여유를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교수님의 말씀을 곱씹었다.
"그곳에 가면 여유를 배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