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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 브런치 Jan 15. 2024

어린왕자의 고향

사람들이 엘살바도르가 어떤 나라냐고 물으면 나는 꽤 난감하다. 그곳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악명높은 치안에 대해 얘기를 하거나 국내 뉴스에도 나왔던 비트코인을 자국화폐로 받아들인 독재자 같은 대통령(실제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독재자”라고 쓰기도 했다)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는 잠시 정적이 흐른다. 그리 좋은 얘기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엘살바도르산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도 많아져 인지도가 조금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최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의 친선경기를 한 적도 있어 알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파리의 에펠탑이나 스페인의 피카소처럼 누구나 들었을 때 흥미를 가질만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엘살바도르가 어린왕자의 고향이라면 어떨까. 사람들은 자세를 고쳐 앉고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이기 시작한다. 맞다, 생택쥐페리가 쓴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그 ‘어린왕자’다. 그런데 어떻게 엘살바도르가 어린왕자의 고향이란 말인가.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나 역시 그랬다. 그냥 지어낸 얘기인 줄로만 알았다. 생택쥐페리의 아내가 엘살바도르 출생이라는 걸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생택쥐페리는 어린왕자에 자신의 삶에서 가져온 모티프들을 많이 넣은 것 같다. 생택쥐페리는 비행기 조종사였고 사막에 불시착했다가 기적적으로 구출된 적이 있는데, 어린왕자는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어린왕자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 일화만 봐도 그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이야기로 만드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콘수엘로 순신. 그녀는 생택쥐페리의 아내이자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장미의 모티프가 된 여인이다. 주로 남미출신의 아름답고 지적인 여인으로 알려져있는데, 그녀가 엘살바도르 출생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생택쥐페리와 콘수엘로는 대부분 프랑스 파리에 살았는데, 언젠가 둘은 함께 엘살바도르의 작은 마을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고향인 아르메니아(Armenia), 엘살바도르 서부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 한때 커피콩을 실어 나르는 기차가 지나다녔던 철길과 역이 그대로 있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라세이바(La ceiba)라는 나무가 있다. 라세이바는 흡사 바오밥나무를 연상케하는 꽤 커다란 나무인데, 어린왕자의 행성으로 알려진 소행성 B612에는 바오밥나무가 있다. 생택쥐페리의 눈에 라세이바 나무가 바오밥처럼 보였을까? 이때만 해도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소행성 B612에는 활화산 2개와 휴화산 1개, 총 3개의 화산이 있다. 그럼 아르메이나에도 화산이 있을까? 아니, 없다. 대신, 3개의 화산이 보인다. 엘살바도르에서 가장 높은 화산인 야마테펙(Llamatepec), 그 다음으로 높은 이살코(Izalco), 그리고 세로 베르데(Cerro verde)이다. 야마테펙과 이살코는 활화산이고 세로 베르데는 휴화산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아르메니아는 소행성 B612의 모티프가 됐다는 말로는 모자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소행성 B612 그 자체로 느껴진다.


이 이야기는 몇 번을 해도 질리지 않는다. 왜냐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책 중에 하나인 어린왕자와 국내에서는 매우 생소한 나라인 엘살바도르가 매우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쁘다. 더이상 엘살바도르가 어떤 나라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대낮에도 총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얼굴에도 문신을 했다는 둥 분쟁 중인 국가에서나 들을 만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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