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 Feb 02. 2022

속초가 힙하다고?

나의 속초이야기 1.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나만의 속초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스무 살을 몇 달 앞둔 어느 겨울, 속초를 떠났다. 속초에서 나고 자란 지 열아홉 해. 당연히 속초는 고향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세월과 기억이 녹아있는 도시였다. 물리적인 의미에서 속초는 내게 고향이 맞다. 그런데 어쩐지 고향이라는 말이 입에 잘 달라붙지 않았다. 내 마음에서도 속초가 고향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자라던 시절의 속초는 고립되고 소외된 지방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일자리는 없었고 고등학교도 여고와 남고로 나뉜 인문계 고등학교와 실업계 고등학교 세 개뿐이었다. 아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젊은 부부들은 일자리와 아이들 교육 문제로 도시를 등졌다. 중장년층과 노인들만이 동해바다와 설악산을 자원삼아 요식업이나 관광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이 마저도 여느 바쁘고 활력넘치는 상업도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반적으로 침체된 분위기가 도시 전체에 흐르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내 고향 속초의 모습은 이러했다. 지금처럼 주말이면 20만 대의 자동차가 모여들고 해안가를 중심으로 늘어서 있는 포장마차에는 젊은이들도 발 디딜틈이 없으며, 그저 시장에 있는 수많은 닭집 중 하나였던 만석 닭강정이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거라곤 그 당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세상 모든 도시가 조금씩 변한다 해도 절대 속초만은 발전하지 않을 거라고, 우리 친구들은 모이면 혀를 차며 성토했다. 영화관도 하나 없는 속초를 답답해하며 말이다.


그런데, 속초가 달라졌다. 서른 초입, 서울로 이주한 뒤 십여 년동안 등한시 했던 내 고향 속초를 다시 찾게 된건 직장 동료들의 속초 여행담을 들으면서부터였다. 뭐? 속초를 '여행'했다고? 부산도 아니고 전주도 아니고 강릉도 아니고, 왜 하필 속초를? 속초가 여행할 만한 도시 축에 끼다니, 의아했다. 그런데 그들이 보여준 사진 속 속초의 풍경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지방 소도시 특유의 낙후함은 여전했지만 사진을 뚫고 나오는 공기가 달랐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무엇이 속초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야말로 역변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속초는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었던 건 고층 아파트들이었다. 속초에 인구가 이렇게 많았었나. 이 많은 아파트에는 다 누가 살까. 그리고 두 번째로 놀라웠던 건 이 아파트들의 가격이었다. 신축 아파트뿐만 아니라 90년대 후반에 지어진 노후아파트들의 가격도 1억원이 넘어가고 있었다. 한 달이 멀다하고 새로운 호텔들이 지어졌고, 대부분은 세컨드 하우스로 이용되는 레지던스 호텔들이었다. 이런 고층 건물들은 바다와 산, 호수뷰가 전부였던 속초에 '야경'이란 개념을 심어줬다. 속초에 사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집값이 오르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다. 속초를 넘어 고성 양양까지 땅을 사려면 지금 사라는 말도 덧붙였다. 더 늦으면 아예 못 산다는 말과 함께. 그렇다. 이제는 속초가 투자의 도시가 되어버린 거다.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면 땅 투자 얘기를 하고 아파트 가격 얘기를 한다. 이렇게 변한 속초의 얼굴을 어떤 표정으로 바라봐야할지 나는 당혹스러웠다.

속초는 언제부터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까. 사실 속초는 예전에도 관광도시였다. 동해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도시들 중에서 관광 도시가 아닌 것이 있을까. 하지만 과거의 속초는 자원은 있었으나 사람이 없었다.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텅 빈 도시, 버려진 도시, 이 도시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상관없다는듯이 도시는 돌아갔다. 어린 나는 그런 속초가 갑갑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와 평화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싶었던 그 시절의 아이들에게 속초는 너무 좁았다. 게다가 가정환경이 불안정한 아이들에겐 안팎으로 벗어나고만 싶은 도시였을 테다.


그랬던 속초가 서울 사람들에게는 주말마다 찾고 싶어 하는 여행지가 되어 있다니. 속초는 서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재평가받고 있었다. 속초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생각했다. 십수년 세월이 흘렀고, 속초가 변한만큼 나도 변했다. 우린 서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고, 그런 두 존재가 10년의 터울을 두고 다시 만난다면 어떤 감정일까. 그 시절 아이들은 모두 취업과 진학을 위해 속초를 떠났다. 속초에서는 미래가 없다고, 속초에서는 삶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야 비로소 속초를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화려하게 변한 도시가 아니라 속초 어딘가에 묻어둔 기억과 스며든 흔적과 다시 마주해보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마냥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를 주고 받고 싶어졌다. 내가 달라진 만큼 속초도 달리 보일 것이다. 내 이야기를 넘어, 먹방과 관광의 도시 이면에 감춰진 속초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시절 속초에서 서울로 이주했던 열아홉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졌다.

작가의 이전글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호텔에 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