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를 위한 브랜드 에티튜드 01
하릴없이 돌고 돈 삶
생각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저는 늘 늦습니다. 늦는 걸 뻔이 알면서도 뭔가 계속 뭔갈 하다 보니 어느덧 청춘이 다 가고 말았죠. 어쩐지 젊은 시절 성공한 사람들은 진즉에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그렇지 못한 저의 삶을 채근하는 듯 보였고 조급해 속도를 내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룬 것 하나 취한 것 하나 없이 40줄이 되고 말았군' 하며 후회하려던 찰나 저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긴 샘플링의 시간
학교 공부보단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수업에서는 곧잘 공상에 빠졌으며 교과서는 낙서 투성이, 고등학교 때는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고 대학에 진학할 때는 대학 진학보다 다른 걸 하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취미로 하던 춤을 스무 살이 넘어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로댄서의 길은 쉽지 않았지만 즐거웠습니다. 그러다 패션에도 관심을 갖고 컴퓨터 그래픽도 독학으로 했습니다. 사진작가인 아버지께 배운 사진 기술로 패션 쪽 작은 스타트업에 들어가 툴과 촬영, 고객관리 등을 해 월급을 받으며 틈틈이 그림 외주로 돈을 벌었습니다. 직장 근처에 댄스학원에 강사로 퇴근 후 강사로 활동했죠.
네 전 한우물을 파지 못했습니다. 문득 '내가 그때 춤을 안 췄더라면' 내가 그때 조금 참고 재수해서 원하는 미술대를 들어갔더라면, 뭔가 진득하게 하나에 집중했더라면 전 성공했을까요? 정답은 모른다입니다.
사업을 시작, 6개월도 안되 망하다.
등 떠밀리듯 준비를 못한 채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래선지 보기 좋게 첫 번째 BM이 망했을 때 저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 싫었습니다. 로고 만드는 일을 시작했고 재벌가 키즈 파티 사진사부터 쇼핑몰 제품 촬영, 누끼 따기 등 그동안의 잡기를 살려 버텨 보았습니다. CMYK가 뭔지도 모르고 프린터에는 왜 흰색 잉크는 없는 거냐며 출력소에 항의하던 저는 결국 충무로를 돌며 인쇄일도 배웠죠. 동대문 종합시장과 성수동 공장을 돌던 저는 옷 제작과 인쇄일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패션을 전공했고 댄서로 일해 봤으며 포토그래퍼의 경험이 있고 회사에서 팀장으로 중간관리자가 되어봤고 의류 판매점원, 웹 기획한답시고 개발자랑 동업해 가산디지털단지 한편에 사무실을 내고 종일 개발자처럼 컴퓨터 앞에 노예가 돼 보기도 하고, 독립 책방 주인, 버거집 사장 등 지금도 다양한 경험이 저를 스치고 갑니다.
여러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직 갈길이 멀었고 이제 넘어지지 말고 서둘러 가야 함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 길이 있다는 것, 문제가 닥치면 이제 어떤 방향으로든 길이 있다는 것을
다양한 경험은 유연한 사고를 하게 했고 저를 단단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 글은 뱅뱅 돌고 왔다갔다한 저의 삶이 바로 비로소 저의 브랜드를 뚜렷하게 만들었다고 믿었기에 '너무 늦은 것이 아닌지 아님 막다른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모든 창업가께 드리는 메시지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샘플링 과정이며 이 과정을 거쳐야 진짜 자신의 브랜드가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경험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가장 쓸데없는 시간은 망설이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