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이탈하고 싶다



말 그대로, 이탈리아를 이탈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 인종차별 받을 때.

- 사회 시스템이 엉망인 것을 견뎌야 할 때.

- 즉각적으로 말이 안 통할 때.

그리고

- 이탈리아 음식이 물릴 때.



인종 차별이야 말로

기분을 가장 신속하게 더럽힐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인데,

이건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 자주 겪는 것 같다.


여자에다가 동양인.

게다가 오늘은 중국인 밀집 지역에 갔다.

이런 걸 보고 삼 박자가 딱 맞는다고 하던가.


혼자 평화롭게 주차할 자리를 찾고 있었는데,

별 늙은 이탈리아 꼰대가 나타나서

아주 뭘 가르치듯이 손가락으로 여기로 들어오면 안 된다는 몸짓을 한다.

거만한 얼굴로.

그때는 뭔 소린가 했는데, 알고 보니

아무 문제없는 곳이었다. ㅅㅂㄻ


물론 그 노인네는 자기 감정 쓰레기만 나한테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난 후에서야


할 일 없는 노인네가 길가다가

만만한 동양인 여자애한테 뭐 그냥 시비 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나처럼 생긴 이들은 끽소리 못 할 것이라는 걸 아니까.

바로 이 부분이 내가 가장 빡치는 포인트다.


더 빡치는 건 정말 나도

진짜 내가 잘못했나 하고 끽소리 못 하고 넘어갔다는 사실.


우리나라가 아니니까 정말 확실한 게 아니면,

내가 잘못 알고 있나, 실수했다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시 생각해도 복수감만으로도 이 도시 전체를 태워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말 하면,

그게 뭐라고 그러냐는 사람이 있겠지만,


항상 이런 류의 사속한 기분 더러움을 느껴야 하는 사람은,

성난 상처처럼 조금만 건드리는 척만 해도 욱신거린다는 말이다.



오늘 일은 어쩌면 양반이다.


대놓고 니하오나 칭총챙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상 야리꼬리하면서도 경멸이 느껴지는 더러운 눈빛으로

위아래 훑음을 당한 걸 세려면 열 손가락 발가락이 모자라다.


하긴, 이건 좀 과감하다 싶은 옷을 입고 한국 지하철을 타고

노약자 보호석 옆에 봉 잡고 서 있거나

동네 아저씨들 앉아서 맥주 마시는 편의점 파라솔 앞을 지나가면서도

많이 당해 보던 눈빛이라

인종차별이라고 하기도 좀 뭐하긴 하지만,


어쨌든 여기서는 자기 나라 사람은 그런 식으로 쳐다보지 않으니까

인종차별인 것 같기도 하고. (자기 분열 중...)



웃긴 건, 인종 차별이란 게 어느 나라를 가건,

진짜 그 나라 사람만 사는 곳에서는 덜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탈리아 산골 시골에 살았다면

인종 차별 면에서는 별 고민 없이 잘 살았을 것이다.


김중만 사진 작가도 중학생 때 프랑스 시골에서 살게 되었는데

인종 차별 같은 것 하나도 못 느끼고

정말 동네 사람들 도움 받고 잘 살았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밀라노나 로마, 파리처럼 온갖 외국인이 섞여 있는 곳은

인종 차별이 더 없을 것 같은데, 사실 더 심하다.


아마도, 현지인과 맞지 않은 외국인들을 많이 봐 와서

말하자면 학습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나도 여기서 외국인이지만,

그런 고정관념을 느끼는 마음도 이해가 아니 가진 않는다.



예를 들면,

초록 머리 사람들이 자꾸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걸 봤다고 하면,

멀쩡한 초록 머리를 봐도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으니까.


이래서 교육이 중요한 것이라고 몬테소리가 말했던가.

방정환 선생님이 말했던가.




내가 사는 곳은

원래 이탈리아가 아니었는데, 후에 이탈리아에 편입된 곳으로

동구권 사람들 또는 그 후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이다.


이런 곳일수록

비슷한 타향 살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헤아려 줄 것 같지만,


인종차별 당한 사람들이 더 심하게 인종차별을 한다.

시집살이 당한 며느리가 더 독하게 시집살이 한다는 것과 비슷한 것이려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고 프랑스에서

중동인이 동양인을 무차별 폭행한 이야기는 기사에도 나왔던 걸로 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역 인종차별도 심한데,

예를 들면, 본인들보다 좀 더 낫다고 생각되는 나라에서 온

미국인이나 북유럽인이나 일본인에 대해서는

또, 대놓고

그놈들이 도둑놈들이어도 무조건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네 말이 다 맞다고 해 준다는 것이다.




어쨌든

오늘도 사무실 출근길에

똥을 밟고 나니,


이런 생각이 나를 잠식했다.



- 도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 한국에서라면 이런 어이없는 무시는 받지도 않았을 거고,

받더라도 그 사람이 더 부끄럽게 즉시 쏘아붙일 수 있었을 텐데.



하루 기분을 망쳐 버렸다.



사실은,

이런 일이 종종 있다 보니, 나만의 즉각 반응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다소 유치하지만 무식한 사람들 입 닥치게 하는 데 잘 써먹기도 했다.


1.

A. 니하오! 칭총챙!

나. 나 중국인 아님. 너 중국인이니?

A. 아니...

B. 그럼 왜 중국말함?


2.

모르는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이상한 말 걸 때.

나. 저를 아십니까?

A. 아니, 근데 이제 알아가면 되지.(이 사람들이 이렇게 느글거립니다... 보통이 아님)

나. 모르는 사람 그렇게 쳐다보지 마시오. 예의 없는 짓이니까.



이제 오늘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3.

A. 안돼. 안돼. 여기서 안돼. 노 노.

나. 뭐라고요? 나한테 설명을 제대로 해 보세요.




하긴 한국에서라고 무슨 공작부인 대접 받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 어디든 또라이들이 일정량 존재한다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도 있으니,


인종차별이고 아니고

내 나라라고 아니고를 떠나

어떤 기분 나쁘거나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중요한 것은 나의 태도인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옳다.

내가 실수했다고?

그럴 수도 있지. 모르니까 실수했지.

그러니까 네가 알려줘 봐.





나는 오늘도 내 갈길 간다.

어떤 미친 놈도 막을 수는 없으십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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