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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삼사오육칠팔구 Jul 03. 2024

여름


내가 이탈리아에서 살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여름을 증오했을 것이다.




볼록렌즈를 통과한 것 같은 진득하게 농축된 햇빛

모기들이 열광하는 습습함

바다의 짠내와 우글거리는 사람들과 젊은이들의 욕설

아이를 부르는 다급하고 우렁찬 목소리

장마에 젖은 무거운 신발

비 비린내와 음식 썩은 냄새

눈부셔 일그러지는 얼굴

조지클루니 손도 잡기 싫은 끈적함




이제 나는 여름이 좋다.

아마도 내가 그렇게나 미워하던 이탈리아인들이

한순간 웃기고 순박하다고 느낀 시점과 얼추 일치하는 것 같다.


나는

이곳의 여름이 좋다.




이탈리아에 여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탈리아가 아닐 것이다.




피부가 타들어갈 것처럼 뜨겁지만

뻥튀기 같은 건조함.

그래, 이 건조함이 좋다.


사람들은 네깟 것들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피부가 까매지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잡티나 주름 같은 게 뭔지도 모르는 동물처럼 볕을 쬔다.

이런 네멋대로 늘어짐이 좋다.



어떻게 정말 하나도 같은 게 없을까.

제 각각의 취향이 묻은 형형 색색의 비치 타월 위에

몸을 뉘인 사람들은

어디에 적혀 있지는 않지만

이상하리 만큼이나 그들만의 규칙은 꼭 지킨다.

조용할 것

깨끗할 것

간격을 유지할 것

딱 내 한 몸 뉘일 크기일 것

침범하지 않을 것

사진 찍지 않을 것

쳐다보지 않을 것.


누군가는 브라탑도 벗고

누군가는 엎어져 팬티도 벗고 누워있지만

우린

안전하고 자유롭다.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지만

신경쓰기에

온전한 자연 속의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곳.

여름 해변.



오후 해가 살짝이나마 기울면

아이들은 공터에 나와 열심히도 달리고 재잘거린다.

머리를 맞대고 돌맹이나 꽃잎 같은 것을

엄청 고민하며 줄지어 놓아 두기도 한다.



해변을 달리다 석양이 뉘엇거리면

낮 동안 알맞게 데워진 바닷물에 들어가

수면을 바라본다.

수면 아래로 코를 담그고

보글보글도 해본다.

시칠리아의 오렌지 같은 해가

바다로 서서히 담가진다.



주먹 보다 더 큰 젤라또를 햝아가며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주황색 백열등이 반사되는

민둥거리는 돌바닥 거리를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


숯불에 생선이 익어가는 냄새에 

길고양이처럼 나도 몰래 이끌려 들어간

골목의 식당 길거리 테이블에는

레몬이 그려진 잘 마른 린넨 테이블보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나무 의자에 자리를 잡고

키는 작지만 질렛까지 갖춰입은 친절한 아저씨에게

적당한 와인 한 잔과 바다 음식들을 주문한다.


골목에 울리는

날아다니는 가벼운 단어들.

달그락거리는 식기 부딪히는 소리.

시시각각 내리는 따스한 어둑함.

왕왕거리는 웃음 소리.

말바시아의 상콤함과 생선 짠내.



뛰어나지도 않은 실력의 밴드들이

자정까지 신명나게 불러대는 촌스러운 음악들.

베스파가 지나가는 달달거리는 소리.


창 밖으로 보이는

어둡고도 밝은 코발트 빛 밤하늘을 보며

침대에 몸을 뉘인다.


내일도 해 뜰 녘이면

일찍 일어나는 새들이

벌레는 안 잡고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짹짹거리는 소리로 

얼마 남지 않은 내 여름 중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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