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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암나비 Apr 26. 2024

인도네시아 여행 2022년 7월

처음으로 빗소릴 듣고

6월 25일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여 마음에 다짐을 했다. 덥겠지 하지만 난 견딜 거야.


여행이라고 하기보단 살아보기로 하는 게 더 맞을 거 같다. 물론 족자카르타의 므라삐 화산 지프 투어 미술관 관람 불교사원 등을 2박 3일 근사한 호텔에서 맛있는 뷔페로 다녀오긴 했지만 그래도 해외여행이라면 관광지 강행군으로 새벽부터 저녁까지 욺직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라면 난 1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

딸내미 집에서 황제 밥상에 매일 수영을 하며 뒹굴거리며 하루에 한 번 정도 자카르타 시내 구경을 일삼았기에 여행이라기보다는 살아보기로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어제도 여느 날과 같이 시내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데 처음으로 소나기가 차창을 두드렸다. 소음으로 소리는 없고 흘러내리기만 하였다.

갑자기 수많은 오토바이어가 걱정이 되었으나 그들의 오랜 적응력에 안심이 되었다.

벌써 바지까지 비옷으로 갈아입고 쏜살같이 지나간다.

오늘은 으붇에서 비를 만난다.

새벽잠을 설치며 뒤척이는데 빗소리가 들려 분수 소리겠지 하다가 발코니에 나가서야 확인했다.

참 얌전히도 온다. 흔한 바람소리도 없이 조용한 빗줄기가 야자나무를 적시고 있었다.

불현듯 처음 비 오던 날 옥상 헬스장 주변을 청소하던 청소부 생각이 난다.

하는 일 없이 헬스하고 수영하던 우리를 위해 정말 말끔히 수고하던 그분의 친절하지만 당당한 그의 눈빛이 떠올랐다.

비록 키는 작지만 꼿꼿한 그 자세가 어쩐지 야물 차고 자긍심이 느껴지기에 보면서 약간 숙연해졌다.

이비로 흩어진 낙엽과 흙먼지를 다시 청소하겠지 생각하니 갑자기  안쓰러웠다.

인구밀도는 조밀하지만 자원이 많은 나라이니 열심히 일하는 이나라는 곧 부강한 나라가 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7월 11일이다. 으붇에서의 첫날이다. 도착이야 어제 했지만 바로 침대에 쓰러져서 오늘이 사실상의 첫날인 셈이다.

밖에 비가 오기에 운동하러 가자 할 수도 없고

그저 아침이 오길 기다렸다가 그때나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어라 밥 먹으러 내려가는 길에 로비에 들어서니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져 거의 소나기처럼 퍼붓는다.

비가 와도 분수는 계속 용솟음친다. 어쩐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뷔페라는 게 딱히 입맛에 맞는 게 없는 게 특징인가? 오늘도 버터를 듬뿍 발라 딸기잼으로 한조 각하고 유별나게 진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설탕을 듬뿍 넣어 화난 거처럼 쭈욱 마셔본다.

역시 커피의 본향처럼 쓴맛과 신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후다닥 끝내고 숙소 발코니에서 빗소리를 듣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에 들어온 지 벌써 16일째이다.

그간  건기라서 좀처럼 빗소릴 들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원 없이 비가 내린다. 이 정도는 되어야지 인도네시아의 비라고 하지 하고 가르쳐주려는 듯 마구 퍼붓고 있다.

그래도 수직으로 나리기만 해서 빗소린 우람한데 모든 게 평시처럼 흘러가고 있다.

2012.12월에 처남들하고 처음 발리에 왔을 때는 거북이섬 등 몇몇 곳을 지나긴 했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런 기억이 없었는데 어제 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낯익은 골목길에 예전에 와본 기억을 되살렸으나 앞뒤가 맞지 않아 아닌 것으로 확인되어 한바탕 웃음바다를 만들고 역시나로 결론지었다.

새벽부터 나리기 시작한 비 줄기는 끊임없이 쏟아지며 막연히 갈망했던 비 오는 날에 대한 갈망이 이내 무색하게 되어간다.

오후에 잠시 갠 틈을 이용하여 산정호수가 있는 힌두교 사원 엘 가보기로 하고 해발 1250m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정말 협소한 2차로는 기가 질린다. 서로 교차하는 차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서는 오토바이 집단들은 역주행으로 추월하는 것을 다반사고 인도도 없는 길에 수시로 거닐고 있는 강아지의 출연 특히 우측 핸들의 교통흐름은 도저히 이해 불가한 운전기술이다.

약 45km를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갈 때는 현기증도 느껴졌다. 비는 억수로 쏟아져 도로 옆  하수도는 막혔는지 시커먼 먹물을 위로 솟구쳐 분수처럼 뿜었다.

겨우 겨우 정상에 다 달으니 이내 비가 멈추고 구름이 호수 위에 내려앉아 한 폭의 산수화가 되어 우리를 반겨줬다.

웨스틴 호텔에서 출발할 때 힌두교 율법에 따라 머리에 성수를 뿌리고 귀에 플루메리아 꽃을 꽂고 이마에 쌀을 붙이는 의식을 치렀던 게 혔나 하고 되돌아보며 감사해했다.

단체사진도 찍고 좀 더 놀고 싶었지만 언제 또 빗줄기가 쏟아질 줄 몰라 서둘러 돌아왔다.

다음날도 오전 내내 비가 와서 마당에 물이 흥건히 고여 빠질 줄을 모르고 채워졌다.

넓은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빗소리에 귀 기울이고 멎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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