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K Mar 20. 2023

돌연사의 가능성

소설 캡틴 Q


"심전도 소견상 우각차단 양상과 동시에 우흉부유도상(V1-3) ST절의 상승 소견을 보여 부르가다 증후군이 의심됨. 해당 전문의의 진찰을 요함"


부르가다 증후군? 

캡틴 Q는 의사의 소견을 듣는 중 길을 잃었다.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항공종사자 신체검사를 마치고 의사에게 들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전도 검사 결과의 이상으로 전문의의 진찰과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뒤지고서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심실세동에 의한 심인성  돌연사, 즉 급사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6개월마다 치르는 항공종사자 신체검사가 추운 12월에 그 사이클이 걸리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곧 다음 달에는 중국 항공사로 이직을 하기 위한 신체검사도 해야 했다.

그런데 심전도에 이상 소견이 나오다니 이건 명확한 빨간불이었다.


 




"지금 심전도 모니터링 기기가 다 사용되고 있어서 없습니다. 하지만 급하시면 병원 모니터와 연결되어 있는 입원 환자용 기기가 하나 있습니다. 이것으로 하면 24시간 안 해도 모니터링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 입원하셔야만 하는데 병동이 다 차서 1인실 밖에 없네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쩔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더티 비지니스 중에 하나가 의료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주어지는 선택지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캡틴 Q는 홀터라는 웨어러블 심전도기를 착용하고 1인실 입원실에 누웠다. 휴대용을 착용할 경우에는 24시간 일상생활을 하면서 심전도 모니터 결과를 판정하면 되지만 이 홀터는 병원과 연결되어 있었다. 입원 준비도 없이 왔다가 제대로 엮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벌써 몸이 망가지기 시작할 나이가 된 건가.

날씨가 추우면 혈관이 수축한다는 말을 어릴 적 병원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겨울이 싫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까지 심장질환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낼 수도 있군.'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가슴에 찬 기기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작동했다. 예민한 그의 성격에 그 상태로 잠들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시로 간호사가 들이닥쳐 기기 점검을 하고 나갔다.


새벽 4시. 어두운 병실 안으로 꽤 큰 기기가 들어오는 듯한 둔탁한 바퀴소리가 들렸다. 기기를 놓고는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캄캄한 병실 안의 공포가 Q의 심장을 더욱 조여 오는 듯했다.   


날이 밝자마자 의사들이 몰려왔다. 이십 대 후 반이나 되었을지 모를 의사 두 명 중 남자 의사가 말했다.  

"심장부하 검사를 할 겁니다. 심장에 부하를 거는 약물을 투여해서 심장의 반응을 체크하는 겁니다. 혹시 검사 진행 중 심장에 무리가 와 비상상태가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심폐소생기를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새벽에 육중한 소릴 내며 들어온 기계가 그것이었다. Q의 머릿속에는 드라마에서 200쥴! 300쥴! 외치면서 다리미 같은 것을 환자 가슴에 대고 전기 충격을 주는 장면이 스쳐 지났다.




 


커다란 주사의 압축기는 일정 시간 간격으로 눌려 들어갔다. 

약물은 그의 심장을 공격했고 심장은 그 움찔거림을 그래프로 나타냈다. 


"야! 출력지 다 떨어졌다. 여분 미리 갔다 놓지 않았어?" 

여성 레지던트의 목소리가 긴장이 팽팽한 병실 공기를 갈랐다. 

영수증 종이롤 같이 생긴 출력프린트 용지가 바닥난 것이다. 

3일은 못 잔 것 같은 떡진 머리를 한 인턴의 눈동자가 커졌다.

"새 용지 가져오겠습니다!" 

그는 후다닥 뛰어 나갔다.


"환자분 지금 검사가 중단돼서 다시 처음부터 약물을 투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캡틴 Q는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말했다.

"선생님, 지금까지 나온 검사량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약물 부하를 또 걸면 무리가 가지 않을까요?"


"지금 한 검사량으로도 괜찮은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의사가 나간 후 Q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보던 '나 홀로 집에'가 떠올랐다.

코미디 영화 한 편 선물로 받은 셈 치기로 했다.






"검사 결과는 받았지만 제가 심장전문의가 아니라서 '비행 가능하다'라는 소견서를  받아오셔야 합니다."

심장 검사 결과지를 항공전문의에게 전달했지만 그는 일말의 책임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다시 한번 심장전문의에게 소견서를 받아올 것을 요구했다.

그런 소견서를 의사가 쉽게 써줄 수 있을까. 


1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심장 검사 결과를 얻었던 종합병원 전문의를 다시 찾았다.

"회사 측에서 비행 가능 여부에 대한 소견을 달라고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써드릴게요."

진찰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Q는 누군가의 의도된 장난에 놀아난 듯했다.




*항공종사자 신체검사는 나이에 따라 검사의 유효기간이 다르며 항공사에서 근무하려면 반드시 제1종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AME라는 항공의료 전문의에 의해 발행된다. 

조종사의 돌연사는 비상사태를 일으키는 위험요소이다. 시뮬레이터 훈련 시 기장과 부기장의 역할에 따라 파트너의 급작스러운 임무불능상태에 대한 훈련을 실시한다. Pilot incapacitaion 상태라고 한다. 

조종사들이 비행할 때 체크리스트를 읽고 답하는 것 외에도 비행상태 인지와 그에 맞는 행동과 실행에 대해서 소리를 내서 말하는 Standard callout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함께 비행하는 파트너의 임무가능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적절한 응답이 없을 경우 상대방의 상태를 살피고 즉시 항공기의 조종 책임 임무를 옮겨 오게 되어 있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날고 싶은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