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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K Dec 21. 2022

최대이륙중량의 무게감과 파일럿

날개 달린 고래 1

  



드라마를 좋아한다. 세상이 좋아져서 옛날에 굉장히 오래된 인기 드라마도 공짜로 볼 수 있다. 그중에 [환상의 커플]이라는 드라마에서 기억을 잃은 주인공 「나상실」은 말버릇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접할 때마다 “꼬라지하고는......”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아니, 이런 말은 뱉는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겠다. 「꼬라지」의 「꼴」은 겉으로 보이는 사물의 모양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모양, 꼴, 꼬라지 순으로 낮잡아 보는 순서라고 할 수 있다. 단어의 어감이 그라데이션 같이 펼쳐지는 것 같다. 우리말은 이렇게 재미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의 꼴은 어떻게 파악할까? 얼굴, 키, 몸집, 태도, 말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는 얼굴을 통해서 그 사람을 처음 본다. 그래서 얼굴이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 「얼굴」이란 말도 재미있다. 글짓기를 해보자면 「얼」은 「혼」을 나타내는 것이고 「굴」은 「구멍」을 말하는 것이므로 「혼이 깃든 구멍들이 있는 곳」이 아닐까? 얼굴에는 눈구멍, 콧구멍, 귓구멍, 입 등 우리의 몸 중에서 구멍이 가장 많은 곳이다.      



파일럿으로 어떤 비행기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공부하는 것은 그 비행기의 한계사항들이다. 「Limitation」이라고 하는 이 부분을 가장 먼저 보는 이유는 그것이 그 비행기의 얼굴과 같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소두핏」이라고 해서 오토바이 헬멧도 머리가 작아 보이게 하려고 애쓴다. 얼굴이 작다면 일단 미인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요즈음은 얼마나 날씬한가도 중요한 듯하다. 모두 살을 빼려고 애쓴다. 얼굴 작고 날씬한 사람이 되면 미인이 되는 것일까?    

  

비행기가 얼마나 날씬한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게에 대한 한계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날아다니는 기계 장치의 종류를 나눌 때 초경량 비행장치, 경량 항공기, 항공기로 나눈다는 것은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무게로 종류를 나눈 것이다. 범위를 좁혀서 우리가 타고 여행을 갈 수 있는 민간 항공기 중에 미국의 보잉사에서 만든 항공기만 보자면 보잉737은 소형기, 보잉787은 중형기, 보잉 777은 대형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비행기는 앞으로 20년 정도 계속 볼 수 있게 될, 그리고 직접 탈 수 있는 비행기이기에 이 비행기들에 관한 이야기로 범위를 제한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이 비행기들은 내가 직접 조종해 본 비행기들이어서 더 그렇다.

     

「최대이륙중량」이라는 말이 있다. 그 비행기가 이륙할 때 제한되는 무게다. 비행기의 무게를 구성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비행기의 자체 무게가 있을 것이다. 당연히 큰 비행기일수록 무겁다. 그리고 그 비행기가 날 수 있도록 기계장치에 필요한 윤활유, 화장실의 물 같은 필수품들과 손님들에게 제공할 음식과 담요 등이 있다. 승무원과 승무원들의 짐, 승객과 승객의 짐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연료의 무게가 있다. 이런 모든 것을 싣고 중력을 이기면서 하늘로 박차오를 수 있는 중량의 한계는 매우 중요하다.     


최신 보잉737-8의 최대이륙중량은 77,746킬로그램, 보잉787-9는 252,650킬로그램, 보잉777 화물기의 경우는 347,810킬로그램이다.                         



소형기는 어른 약 천명이 손을 잡고 하늘을 난다는 것이다. 중력을 이기고 하늘을 나는 4천 5백명의 수퍼맨들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비행기의 승객들이 기내에서 출발이 지연된다는 안내 방송을 들을 때가 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로 ‘탑승에 필요한 서류가 도착하지 않아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조종사들도 모든 비행 준비를 마치고 승객이 탑승을 마치면 관제탑에 「비행허가」를 요청하고 나서는 이 서류를 기다린다. 


승객명단과 함께 몇 명이 탑승했고 총 무게는 얼마이며 이 항공기의 무게중심은 어디에 있다라는 계산 값이 있는 중량 분배 현황이 담겨 있는 「로드시트(Load Sheet)」라는 것이다. 항공기의 이륙성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서류이다. 항공기의 무게중심을 기준으로 균형 있게 무게가 분산되어 승객과 짐이 실려야 항공기가 가뿐하게 중력을 이기고 이륙할 수 있다.   

   

지금 펜을 들어 손가락 위에 가로로 올려서 균형을 잘 잡아 보자. 그리고 천천히 손가락을 돌려서 볼펜 한 쪽이 들려지게 해보자. 균형을 아주 잘 잡은 채로 했다면 손쉽게 한쪽 끝을 올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펜이 쉽게 떨어지고 만다. 「로드시트」는 이 무게중심의 위치를 알려 준다. 그와 함께 현재의 총무게도 알려 주는데 이때 파일럿들은 이 무게가 그 상황에서 한계무게를 넘지 않는가를 따져야 한다. 그 상황이라는 것은 기상 상태라던지 활주로의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위에서 말한 「최대이륙중량」이라는 것은 항공기의 구조적 강도에 의해 제한되는 이륙 중량 중의 하나일 뿐이다. 실제로는 여러 가지로 이륙제한중량이 있다. 그리고 그 여러 가지의 최대이륙중량 중에 가장 작은 값이 그때의 이륙중량 한계값이 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 최대이륙중량이 더 낮아지는 것일까. 먼저 활주로의 상태가 있다. 눈이 내리고 있을 수도 있고 억수같이 비가 내릴 수도 있다. 얼어 있을 수도 있다. 활주로의 표면 상태가 이런 상태에 있다면 항공기가 이륙하려고 활주로를 달리다가 어떤 이유로 이륙을 포기했을 때 활주로 안에서 멈출 수가 없을 수도 있다. 추운 날과 더운 날에 따라 또 달라진다. 비행기는 공기를 가르고 공기를 이용해서 수영하는 고래와 같다. 날이 더워지면 공기의 밀도가 낮아져 지느러미를 아무리 저어도 추운 날처럼 앞으로 잘 나갈 수 없다. 그 공기의 밀도는 기압이라는 수치로도 표현된다. 바람의 영향도 중요하다. 이·착륙을 할 때 비행기는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좋아한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한계에 가까운 무거운 상태에서 이륙할 때는 더욱 앞바람이 간절하다. 뒷바람이 분다면 최대이륙중량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미리 활주로의 상태를 예상해서 계산한 최대이륙중량이 실제 기상 상태가 갑자기 변하면서 달라질 수 있다. 승객과 짐, 그리고 연료 등 필요한 모든 것을 탑재했는데 갑자기 눈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앞에서 말한 대로 최대이륙중량이 낮아져서 무게를 줄여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무게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승객을 내리게 할 수는 없으니 승객의 짐이 아닌 탁송 화물이 있다면 그것부터 줄일 것이다. 또 하나는 연료를 줄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연료를 줄이는 방법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낭비도 심하다. 왜냐하면 한 번 주유한 항공유는 빼내면 오염되어서 다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리 계획된 연료를 덜어낸다는 것은 파일럿들에게는 위험을 감수하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더욱 달갑지 않다. 결국 이런저런 방법이 신통하지 않다면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지연 운항이 시작되는 것이다.


      




「최대이륙중량」이라는 것이 있다면 「최대착륙중량」이라는 것도 있을까? 당연히 그 엄청나게 무거운 비행기가 지구에 내려앉을 때 새처럼 사뿐히 착륙하기 위해서는 「최대착륙중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륙한 후 착륙할 때는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 내려앉는 충격을 줄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륙할 때 실었던 연료가 엔진을 돌리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착륙할 때는 이륙 중량보다 훨씬 적어진다. 보잉777 화물기의 경우 최대이륙중량이 347,810kg인데 반하여 최대착륙중량은 260,815kg으로 약 25%, 그러니까 최대이륙중량에 비해 1/4이 줄어든다.                     



그런데 만약 연료를 쓰지 못하고 이륙하자마자 이륙공항으로 돌아가서 착륙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제로 이륙하자마자 승객의 위급상황이 발생하여 공항 상공에서 연료를 써 버리고 최대착륙중량 이하로 무게를 줄인 경우가 있다. 실제로 2005년 8월 인천공항에서 미국 LA로 가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갑자기 의식을 잃은 다섯 살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 강릉 앞바다 이만 피트 상공에 70톤의 항공유를 쏟아냈다. 약 4천만 원어치였다.      



표 2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소형기인 보잉737의 경우는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약 8.4톤의 연료를 버려야 하고 이는 공항 상공에서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중형기와 대형기의 경우에는 어떤가?      

60에서 80톤에 이르는 연료는 전체 항공기 중량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상당한 비중으로 6시간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실제 70톤을 버린 저 비행기는 이륙 후 한 시간 반 만에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바로 연료방출시스템(Fuel jettison)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중·대형 항공기는 이 장치를 장착하고 있다. 연료방출은 최대착륙중량이하로 설정된 연료량까지 항공기 날개 뒤로 펌프를 이용하여 배출되어 연료감소 시간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소형기의 경우에는 표에서 보는 바대로 최대이륙중량과 최대착륙중량 차이가 11% 정도 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연료방출시스템이 굳이 필요 없는 것이다.  

    

이번에는 좀 더 심각한 상태를 생각해 보자. 만약 연료방출을 하기 위해서 1시간 정도의 공중 대기를 할 시간조차 없는 비상사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를 들면 기내화재나 연기가 발생했다면?      

이런 경우 화재나 연기가 진압되지 않는다면 항공기를 지체 없이 착륙시켜야 할 것이고 항공기의 최대착륙중량은 더 이상 고려 사항이 될 수 없다. 물론 최대착륙중량 이상으로 항공기가 착륙한다면 항공기에 가해지는 착륙 충격이 항공기의 구조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활주로도 피해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비상상황에서는 인명이 더 중요하므로 조종사들은 즉각적인 회항 및 착륙을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결정의 판단은 오로지 책임기장과, 함께 비행하는 조종사들의 몫이 된다. 그 책임감의 무게는 4천500명이 함께 공중으로 나는 것을 떠받드는 것만큼이나 무거운 무게감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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