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을 꿈구는 마음과 갈등 요인들
영화를 좋아한다. 어릴 때는 보지 않을 수 없게 왕성한 호기심 불러일으키는 **부인으로 대표되는 기획물을 제외하고는 한국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히어로들의 활약상이 가슴을 뛰게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잠깐 ‘미제가 최고야!‘를 외치게 만드는 헐리우드 작품들과는 수준 차이가 나도 너무 났었으니까. 그래서 한국 영화는 비디오테이프로나 보는 것이지 극장에 가서 볼 만한 것이 못되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이가 들어서인지 한국 영화의 수준이 올라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영화를 극장에 가서 만나는 일들이 많아졌다. 가끔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완성도가 있는 한국 영화를 만나면 홀랑 빠져 그 깊은 웅덩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곤한다. ’본 건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하는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런 영화 중의 하나가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이다.
명대사들이 숲을 이루고 있지만 그중에 몇차례 반복되는 매우 거슬리는 대사가 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뭐...하기 싫으면 시골에 쳐박혀서 개나 키우던가”하는 식의 강력한 동기부여를 할 때 쓰던 말이다. 복수의 작당모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마지막 쐐기 같은 말로 쓰였다. 거슬렸던 이유는 내가 시골 출신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대사를 들을 때마다 시골에 쳐박혀서 개나 키우며 사는 것이 내가 꿈꾸던 삶이어서 그랬다. 난 정말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삶을 살펴보자. 평생 도시에 살았고 외국의 도시에서도 살았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는 일하고 소비하기 편리하게 구조화 되어있다. 집 밖을 나서자마자 편의점과 슈퍼가 있고 지척에 쇼핑센터들이 즐비하다. 서로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열심이다. 그 열기 속에서 누가 더 정확하게 그 욕구를 빨리 파악하고 그것을 만족시키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돈을 벌어가게 되어 있다. 머리에 서리가 내린 나이가 되면 이런 일에 점점 마뜩치 않아진다. 둔해진 머리와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용모는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 도시민들의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생산자로서 일할 일꾼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오십이 넘어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그런 생산시스템의 주인이 되어 있거나 그동안 쌓아 놓은 돈을 까먹으면서 사는 수밖에 없다.
돌아보니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기에도 벅차 그 일 이외에는 그닥 해본 일이 없는 것 같다. 내 자유와 시간을 희생하고 봉급이라는 것과 맞바꾸며 살았다. 그 자리도 애쓰고 애써서 얻었다. 생존과 의미를 모두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그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일을 끝내기로 한 이유는 지루함이었다. 생존을 이렇게 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일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대단치는 않지만 지속가능하고 느리지만 보람을 맛볼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어디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일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코로나를 통과하고 있는 바로 지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라는 역병은 많은 사람들을 가축처럼 만들었다. 갇혀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기본적인 것만 해결되어도 감사해야 하는 상황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제한된 공간에서 또는 마스크 안에서 자신이 내뱉은 이산화탄소를 다시 코로 들이켜야 했다. 대기에 탄소가 많아져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화가 났다. 어떤 놈이 이런 짓을 했는지 가까운 것들부터 멱살을 잡기 시작했으나 그 누구도 오직 그것에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워 이 상황이 해결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서서히 이것이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자연선택이라는 것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뭔가 이 거대한 지구의 자전과도 같은 누구나 알면서도 멈출 수는 없을 것 같은 당연함에 반발심이 생겼다. 소비하려고 버는 것인지 벌려고 소비하는 것인지 모를 이 시작과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를 이탈하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핸드폰을 들고 자리에 누워 멍하니 유투브를 쳐다보는 것만이 지쳐 있으나 잠은 오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그 자그만 화면 속이 점점 초록으로 채워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시골에 가서 개나 키울 방법을 나도 모르게 찾고 있었던 것이다. 직장을 정리하고 나오면서 그 근원 모를 본능을 따라 행동해 보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육개월을 강원도의 밭 한가운데서 지냈다. 부딪혀보고 나서야 깨닫는 사람이다 보니 머리로 손으로 수집하는 정보만으로는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그리고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보지도 않았는데 농부가 되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인 것을 알았기에 그냥 내 입에 들어가는 먹을거리나 키울 수 있을 정도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에게는 자급자족의 능력이 있는가 돌아보게 된 것이다.
전문직 직업인으로 25년을 일한 것만큼 농부들은 농사에 스페셜리스트들이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며 내 경험은 소중한 것이고 남의 경험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불한당들의 논리가 가끔 먹힐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농업만큼은 그러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내가 만난 농부들은 모두 단단했고 자부심이 강했다. 끊임없이 배우려고 노력했고 새로운 것을 접하는 현장으로 지체 없이 달려갔다. 기후변화는 이미 농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작물재배한계선은 평균기온이 1도씨 오를 때마다 81킬로미터를 북상한다. 한라봉이 고흥으로 사과가 영월과 양구로 복숭아가 춘천까지 올라갔다. 이대로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아버지가 키운 작물을 대를 이은 아들이 똑같이 재배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농사 9단들도 이런 변화에 대처하느라 어려운 형편인데 이제 농사를 시작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과연 현명한 판단일까.
하루 12시간을 일해보았다. 포도 전정, 포도봉지싸기, 밭두둑 만들고 비닐 멀칭하기, 감초밭 김매기 등 등 하나도 쉬운 일이 없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일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고추밭 말뚝을 하루 종일 박고 나서 돌아보면 저 많은 걸 우리가 다 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의 노동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도 깨닫게 되었다. 매일 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파악된다면 그리고 그에 맞는 경작면적이 300평을 넘길 수 있다면 농업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알기 위해서는 먼저 3평 농사를 잘 지어야 하겠고 그것이 성공한다면 300평을, 그리고 그 300평이 성공한다면 3000평 농사를 지어볼 만하다. 통상 두 부부를 기준으로 2천에서 3천평 농사를 짓는 것이 일반적이나 3천평을 넘기면 일손이나 직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농사는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하루아침에 결정하고 덜컥 땅을 사서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래서 자급자족을 위한 3평 농사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해서 앞으로 농촌의 미래는 시설재배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나의 농산물이 남의 입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농업경영체를 운영한다면 스마트팜이 기존의 관행농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며, 시설재배가 안된다면 철저한 유기농으로 무장된 고부가가치 강소농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금 새롭게 농사에 뛰어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성공보다는 실패의 확률이 더 많은 법이어서 선택을 주저하게 하는 갈등 요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농업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가의 평균 농업 수입은 3,576만원이며 농가 평균 경영비는 2,284만원으로 농업으로 얻는 순익은 약 1,300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1억원 이상의 매출 농가는 전체의 3.6%에 불과하며 1억원 이상 매출 농가의 평균 경지면적은 2만에서 3만평으로 농지평균가격을 평당 4만5천원으로 보고 그 경지 규모의 평균 노동시간을 주당 42시간으로 2,200시간이라고 하면 1억원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2만 5천평을 구입하기 위해 11억원을 투자해서 주 40시간 노동을 해야한다. 얼마전 양파 2톤을 출하하고 160만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현실이 농대를 나오고 농업으로 진출하는 젊은이들이 3%에 불과하며 GDP의 절반을 차지하던 농업이 이제는 4%밖에 되지 않는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농지가 원래 있는 농민이면 몰라도 농지를 사서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무모한 투자가 될 수 있으며 용쓰고 돈 안되는 헛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행이 아니라 스마트팜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근래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인하여 자재값이 30%정도 폭등했다. 그래서 농사의 규모를 줄이는 농부들이 늘고 있다. 2% 금리이고 5년거치 10년 상환 조건으로 최대 3억 그리고 주택구입비 7,500만원을 차입했다면 한 달에 적어도 400만원은 벌어야 원금과 이자 그리고 생활비가 해결된다. 농가의 연수입이 4000만원을 넘기는 것은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며 즉각적으로 농산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매우 힘든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아주 스마트하게 빚쟁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귀촌해서 농촌 일자리에 취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1차, 2차까지는 할 수 있어도 3차농업이 되어야만 6차농업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런 서비스업의 창업에는 도시인의 재능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행농들은 3차농업까지 가려는 의지가 없는 듯했다. 매해 반복되는 똑같이 해 오던 농사일에는 이력이 붙어 있지만 새로운 분야로 일을 벌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능력도 인력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더불어 농업이 아닌 다른 일에 대한 가치평가에 매우 인색하다. 자신들같이 땀 흘려서 일하지 않는 일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인건비도 큰 부분이기 때문에 대부분 가족경영을 하고 있고 그 범주를 벗어나는 일은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니 농촌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기 어렵다. 가속되는 농촌인구 감소와 노령화로 1차도 버거운 상황이니 점점 외국인 노동자만 늘어날 뿐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면에서는 상당한 자본을 가지고 농촌의 가능성에 배팅하는 귀농인들이 6차 산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3차 농업, 예를 들면 치유농업이라던지 치유농장, 숙박업을 하기 위해 1차 농업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더 많은 농업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농촌에서 농부들이 늘 이야기하는 것 중에 하나가 부부가 반드시 같이 귀농귀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여름 땡볕에 일할 때 밭에 나와 양산 쓰고 다니면서 땀만 닦아줘도 괜찮으니 부부가 모두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년의 부부가 꼭 함께 생활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에 있는지라 개인적으로는 넘어야 할 산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귀촌에 머물러야 할 수도 있다.
요즈음의 농촌은 예전 같지 않아서 마을 구성원들이 끈끈한 정으로 꽁꽁 뭉쳐져 있지는 않다. 어느 정도 도시같이 내외하며 서로의 선을 지키는 듯했다.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데다 농촌은 삶터와 일터가 하나로 묶여 있어서인지 모든 사안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생각보다 개인적이며 여러갈래의 갈등 구조도 많다. 도시인들에게 배타적으로 텃새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이런 예민함이 도시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마을의 지도자가 중요해진다. 성공적인 농촌 마을의 바탕에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유는 아직 농촌사회가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 보다 지도자의 지도력에 의존하는 문화가 강해서 일지도 모른다.
개를 키우며 조그만 3평 텃밭을 가꾸며 반농반X의 삶을 살고자 하는 소박한 귀촌의 꿈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시작은 작게 해야 하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야 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긴 게임이 될 것이라는 것을 농촌에서 살아보기는 가르쳐 주었다. 귀농귀촌은 삶터와 일터를 동시에 옮겨서 시작하는 것으로 이것은 마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 모든 것을 시작하는 것과도 같다. 아니 어쩌면 이민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농부들이 꼽은 최악의 영화라고 한다. 그 영화의 원본인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리틀포레스트는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를 한 번 더 각색하다 보니 영화가 동화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시골에서 개만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