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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K Jan 21. 2023

OPPAR 3 departure

캡틴Q

     

“Haema1988, taxi to runway 05 via Papa 10, Lima, cross rwy 34 Left.”

캡틴Q는 왼쪽에 대기하고 있던 지상조업 직원을 향해 runway turn off light를 한 번 켰다 껏다.

조업원은 왼손에 든 안전핀을 절도있게 오른손으로 비추어 보였다.

캡틴 K는 엄지를 들고 다른 손가락들은 편 채 왼손을 들어 보이며 출발 신호를 보냈다.


캡틴Q가 “Let’s go!”라고 말하자 부기장 양판은 Taxi light를 켜서 전방을 밝혔다. 

Rudder pedal의 앞 끝을 지긋이 눌러 브레이크를 푼 후 Thrust lever를 앞으로 살짝 밀고 기다리자 드림라이너는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Parking brake off" 양판은 브레이크가 풀린 것을 확인했다.


북경까지의 2시간 40분 거리였다. 

양쪽 날개 안에 있는 연료가 많지 않아 드림라이너 특유의 하늘로 휘어진 날개의 휨새가 더욱 높아 보였다.    

새벽 2시. 그 넓은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움직이는 항공기는 해마1988편 밖에 없었다.

하네다 공항은 도쿄와 가까워 야간의 소음 때문에 밤에는 주로 북동쪽 방향의 05 활주로를 사용했다.

지상활주로 W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가 좌측인 A 방향으로 꺽으면 항공기들의 행어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골목을 지났다. 여기를 지날 때 마다 캡틴Q는 불 꺼진 연남동 골목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골목을 빠져 나오고 나면 오른쪽 R로 접어들게 된다. 지상활주로 R은 05 활주로가 있는 섬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지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길이라 TAXI WAY 중심선인 초록색 등과 양 끝을 비추는 파란색 등이 아치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달이 없는 바다는 별이 없는 밤하늘처럼 검었다. 검다기 보다 텅 비어 Blank 처리된 것 같았다.


“Heading 050, Maintain 9,000 feet, Airspeed 250kt”

05 활주로에 올라타며 캡틴 K는 말했다. 

“OPPAR 3 departure는 이륙 후 오른쪽으로 180도 선회가 되니 바람방향 모니터 해주고 Flap을 올릴 때 속도 주의해서 해줘!” 

“Got it!”

고요한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에 드림라이너는 그르렁거리며 도쿄만을 박차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항공기는 오른쪽으로 긴 선회를 마무리하고는 이륙 방향과 반대 방향인 요코하마시의 남쪽을 지나 도쿄만을 빠져 나갔다. 


     




“OPPAR departure.....히히히, 오빠~ 오빠~”

순항고도에 오르자 여유가 생겼는지 양판은 장난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오빠라는 말을 아네?”

“한국 드라마 보면 맨날 나오던데”

“韩剧(한쥐) 좋아해?”

“그럼 그럼. 그런데 드라마 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런닝맨이야”

“런닝맨? 하하하.....그래? 그럼 너는 그 출연자 중에 누가 제일 좋아?”

“당근 광수지 크크크 너무 웃겨. 광수 때문에 런닝맨 전편을 다 몰아 봤을 정도라니까”     


韩国连续剧(한궈리엔취쥐)의 준말인 韩剧는 중국에서 일상적이었다. 

드라마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콘텐츠가 각종 불법 사이트에서 공공연하게 온 디멘드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캡틴Q는 북경의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응답하라 1988’을 휴대폰으로 보고 있는 MZ들을 발견하곤 했다. 

신기한 것은 어깨너머 보이는 응답하라 시리즈는 대부분 1988이었다.

      

“그럼 너도 ‘응답하라 1988’ 봤어?”

“물론이지. 그건 안 볼 수가 없지.”

“나도 그 드라마 정말 좋아하는데 말이지. 그걸 좋아하는 중국인들을 볼 때마다 궁금한게 있어"

"뭔데?"

"그 드라마는 이야기가 주는 힘도 물론 대단하지만, 사실 그 시절 음악이라던지 화면에 잡히는 작은 소품들까지 정말 정교하게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의 정서를 파고드는 장치들이 곳곳에 보물처럼 박혀 있거든. 그런데 그런 걸 알 턱이 없는 외국인들까지 그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건 신기한 일이야.”

“우린 그런 것 까지는 모르지만 그 드라마를 보면 가족들 생각이 많이나. 형제는 없지만 친구나 친척들과 함께 지냈던 추억이 많거든.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대부분 도시로 나와 일하기 때문에 서로 떨어져 있게 되지. 그래서 생기는 외로움이 드라마를 보게 하는지도 몰라.” 

“좋은 해석이네. 하긴 뭐 그 드라마에서 쌍문동 친구들과 부모들은 이웃을 넘어 친척같았으니까. 옛날엔 다 그렇게 살았지. 그런 걸 보면 마을의 공간적 형태도 중요한 것 같아”

“마을의 공간적 형태? 무슨 뜻이지?”

“내 말은 그 1988에 나오는 집들이 골목이라는 통로를 같이 사용한다는 거지. 결국 서로의 동선이 겹치면서 만나게 되고 이야기하게 되고 식구가 되게 하는 거지”

“골목이 서로를 이어준다고?”

“응, 요즘 그런데 요즘 한국은 아파트에 사는 게 일반적이야. 그런데 아파트라는 것이 그런 공유 면적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발전해 왔지, 타워형 아파트의 경우에는 더 심해져서 심지어 지상에는 주차장도 없지. 엘리베이터, 그리고 각층의 양쪽 문 사이의 작은 복도 정도만이 서로가 마주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지.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도록 하면서도 서로 마주치지 않게 하려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 디자인 같아. 집 현관문 밖으로 나와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차문을 닫는 순간 서로가 눈을 마주칠 일이  없지. 그래서 어떤 때는 그 큰 건물에 혼자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


“그러면 옛날에는 그 골목이 서로를 어어주는 연결망이었다는 거네”

“그렇지. 여기 이 Overhead Panel에 있는 전기시스템들을 연결하는 AC BUS처럼 말이지”

캡틴 Q는 자기 머리 위의 전기 판넬을 손가락으로 가르쳤다. 

그 판넬에는 보조엔진(APU)과 외부전원, 그리고 엔진 제네레이터를 연결하는 “AC BUSES”라는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

“크크크 AC BUSES”

양판의 낄낄거리는 소리를 듣는 동안 캡틴Q는 ‘그래......요즘은 교류가 없네, 교류가 없어.....다 직류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캡틴. 나 사실은 런닝맨 때문에 한국 가고 싶어!”

“진짜?”

“내 위시리스트 중에 하나가 한국에 가서 런닝맨 촬영하는 거 쫓아다니는 거야.”

“아 그래? 너 정말 찐팬이구나.”

“생각만해도 너무 신나는 일이야. 히히”

양판의 입꼬리는 올라가고 눈꼬리는 아래로 쳐져 얼굴은 행복의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그 런닝맨하고 똑같이 프로그램 만들지 않았나? 그건 어땠어?”

“노잼이야......”

캡틴Q는 왜 재미가 없냐고 묻지 않았다. 

     

캡틴Q는 가끔 중국어를 공부하려고 중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볼 때마다 주인공의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에서의 호흡이 너무 늘어진다 생각했다. 

울고짜는 장면이 너무 긴 것이 한국드라마와는 달랐다.

한국드라마는 암시나 은유를 세련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장면전환이나 이야기의 전개도 굉장히 빠르다. 

아마도 그게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콘텐츠의 참신함이나 배우들의 연기력, 감독의 연출력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것은 바로 편집기술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있는 것을 재배치하는 것도 창조라고 할 수 있다. 


“Haema 1988, contact Beijing control 125.25”

비행기는 어느새 황해를 넘어 대륙에 접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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