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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May 27. 2023

탄천을 따라, 자연을 따라

자연이 살아가는 방식,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

사내 부서이동을 하면서 역삼동에서 분당

정자동으로 출근을 하게 된 후,  

좋아진 것이 단 하나 있다면 점심시간 동안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점이다.


광화문으로 잠시 파견을 나가면서 점심식사를

간단히 얼른 끝내고 인왕산 둘레길을,

청계천 천변을 걸어 다닐 때가 참 좋았었는데,


역삼동 사무실로 돌아와서부터는

빨간 벽돌로 쌓아 올린 딱딱한 빌라촌 사이를

걸어 다닐 수밖에 없어서 그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나마 간혹 담 너머로 뻗어있는 나뭇가지에

눈이 라도 돋아나면, 잎사귀 라도 올라오면,

꽃이 라도 활짝 피면, 그 자리에 서서 잠깐 계절의 향기를

맡고서 다시 아스팔트길을 걸어가는 것이 전부였다.


점심시간, 밥보다 산책을 즐기는 내게

사무실 근처에 자연을 가까이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매우 큰 복지와도 같았다.


분당은 비록 출퇴근길 왕복 3시간을 내게서

매일매일 앗아가고 있었지만 그 대신

1시간 가까이 산책을 할 수 있는 탄천을 내어주었다.  


처음 이곳에 왔던 2월 겨울에는

앙상한 나뭇가지와 누렇게 풀 죽은 잎들로

갈색빛 가득한 탄천길을 걸었었고,  


지금은 울긋불긋하고 푸릇푸릇한 풀과 나무

이름 모를 들꽃들로 생기가 가득한 5월의 산책로를

걸으며 미처 모두 메우지 못한 남은 허기를 가득 채워간다.


천변을 느긋이 걸어가며 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미 복잡한 것들은 사무실 너머로 던져둔 채 나선 것이라

그저 피어난 노란 작은 꽃 한 송이를 보며,

머리 위로 피어난 푸른 잎사귀 보며,

나도 그 무리의 하나가 되어 아무

생각 없이 물길을 따라 흘러 걸어간다.


마음을 비우고 걷다 보면 작은 대상

하나가 또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2월에 보았던 가지 앙상한 나무를 떠올리다

지금 5월의 푸른빛 가득한 나무를 보고 있으니,

갑작스레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는 왜 찬 바람을 이겨 잎을 피워내려 하지 않고

때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잎을 피우는 것일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만큼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가 흔히 살아가는 방식의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

나무가 살아가는 방식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장려하거나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문 아닌 의문을 제기해 보게 된 것이다.

 

나무는 고난과 역경을, 상황을 거슬러

자연의 섭리를 억지로 깨어 이겨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 그것의 방식이었다.


나무든, 풀이든, 꽃이든

자연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강요하지 않고

또한 다른 무언가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하며,

지난 나 자신의 모습을 겹쳐보게 되었는데,


나는 아내에게 늘 자연적인 것이 좋다며, 무엇이든

인위적인 것 말고 자연적인 방식을 고집할 때가

이따금 있었다.


나는 어떤 결정을 할 때에는 웬만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자연적인 방식을

선택하는데, 인위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을

온전하게 대체할 수 없다는 나의 옛사람 같은

마인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분명 아내 방식대로 걸어온 삶이

있고 또한 그 연장선을 걸어가고 있을터, 나의 쓸데없는

고집이 결국 안 하느니 못하게 불편함만 일으키고,

돌아 돌아 아내의 의견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는 했다.


내가 만약 '자연적'이라 했던 주장을 하지 않고

아내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그런 불필요한 불편함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적이라 생각한 방식을 주입하려는 나의

마음 자체가 강요였고, 자연적이지 못한 것이었다.


'자연'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자체가 자연적이지 못한 것인데, 결국 나는

'무늬만 자연주의'인 셈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무를 보며 당연하고도 실없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은

그것이 살아가는 방식처럼 살아가지 못한 내 모습이

갑자기 눈에 보여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을 따라, 자연처럼 살아가고 싶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잎을 떨어뜨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겨두기도 하고,

다시 꽃을 피우고.

 

그것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우리가 자연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까닭은

자연은 늘 행복해서 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행복하니,

보는 사람들 또한 행복한 것이겠지.


자연이 보여주는 생의 방식에서

나의 삶이 흘러가야 할 길을 겹쳐본다.


사람보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런 지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에는 소박하고, 때로 불편해 보이지만,

그들이 더욱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자연처럼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흐르는 탄천을 따라 걸으며, 계절 따라 흘러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눈에 익히고 기억하며,  

그렇게 흘러가고 있을 나의 생을 어슴푸레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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