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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Aug 16. 2022

난생처음 담배를 피웠습니다.

흡연에 대한 단상

 난생처음 흡연을 해보았습니다. 의도치 않게 담배를 입에 대어본 적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몇 번 있었지만, 온전히 나의 의지로 흡연이란 걸 해본 적은 없었으니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것이 스트레스인지 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꾸역꾸역 삼키기가 도저히 어려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삭히고 말았을텐데 그간 쌓인 감정들의 무게가 커졌는지 누르기가 어려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담배의 힘을 한 번 빌려보고 싶었습니다. 흡연하던 지인들의 대답이 떠올라서였는데요, 그들은 연기를 한번 들이켜 뱉고 나면 머리가 '핑'하고 도는 느낌이 들면서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린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몸에 해로운 담배를 왜 피우는지 이해를 못하던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그들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편의점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사보았구요, 주머니에 주섬주섬 흡연 준비물을 넣고서는 사람들이 주로 담배를 피우는 장소로 이동을 했습니다. 출퇴근 길에 아파트 단지로 가는 길에는 늘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들이 흡연을 하는 장소는 늘 같았기 때문에 저도 그곳에서 담배를 피어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너무 싫었습니다. 담배 연기도 싫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침을 뱉거나 꽁초를 아무 곳에 툭하고 던져버렸기 때문에 그 장면이 너무 보기 싫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그들이 되어 그들이 담배를 피우던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게 되었으니 그 느낌은 참 오묘하고 어색했습니다. 물론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치도 보이고요. 

 담배를 한 까치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여봅니다. 불기운이 훅하고 올라 얼굴을 뜨겁게 달구고 담배 막대 끝이 빠알갛게 타오릅니다. 한 모금 쓰읍하고 빨아들이자 매캐한 무언가가 쑤욱 들어오고, 기침을 하면 괜히 초보 흡연자 티가 날 것 같아 숨을 꾹 참고 내뱉습니다. 잠시 멍한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는데 마늘 한 알을 입에 넣고 와득 깨문듯 목구멍에서 알싸한 맛이 납니다. 무언가 마음이 촤아 가라앉는 기분이 드는 것 같다만 그것이 담배 때문인지, 그런 느낌이 든다는 사람들의 대답 때문인지, 심호흡에서 오는 효과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매번 담배를 피워야 한다면 나는 슬퍼질 것 같아 심호흡 덕분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라 믿어보게 됩니다. 

 길었던 담배 막대는 어느새 짧아져 있고 마지막으로 한 모금을 더 들이쉬려는 찰나, 이곳에 담배를 태우던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고민으로, 어떤 분노로, 어떤 슬픔으로 이 자리에 서서 담배를 피우게 되었는지에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을까요.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이런 방식으로도 해보게 되네요.

 담배꽁초를 버리기 위해 쓰레기통을 찾아 십여 분을 걷는 동안 그래도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듯합니다. 억누르기 힘들 것 같았던 화도 스트레스도 공중에 흩뿌려져 희미해진 담배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네요.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아버지께서 집 밖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아버지는 기분이 나아지셨을까요. 

 생각해보면 담배를 피운다거나 술을 진탕 취할 때까지 마시며 스트레스를 푸는 행동을 어리석고 바람직하지 못한 해결책이라고만 치부해왔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혼자서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할 누군가가 없을 때, 그 상황을 감내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순간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해서 지금까지 어쩌면 저는 그만큼 외롭거나 답답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 서랍 한구석 깊숙이 담배를 밀어둡니다. 다시는 꺼낼 일이 없을 듯이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둡니다. 담배를 버리지 못한 것은 어떤 미련이 남아서 일까요. 어쨌든 담배를 꺼낼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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