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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Nov 17. 2019

포르투에는 에펠의 흔적이 있다.

엔리케광장. 볼사궁전.

다음날, 아침 10시로 예약해둔 볼사 궁전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도보로 30-40여분 걸리는 거리를 걸어갈 예정이다. 숙소에서 지하철역이 그리 멀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는 보통 30분 넘게 걸을 일이 잘 없기 때문에, 언제 이렇게 여유롭게 걸어 다니며 몸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결정한 선택이었다. 사실은 스스로에게 맛있는 음식을 살찔 걱정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구실을 만들고자 하는 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히베이라 광장에서 숙소까지 걸어서 40분가량 걸렸던 것 같지만, 정확히 얼마나 걸릴지 가늠이 되지 않아 1시간 정도 일찍 출발했다. 어제 숙소로 걸어오며 지나쳤던 레스토랑, 정육점, 과일가게 그리고 흰색 검은색 돌조각들이 깔린 길바닥이 마치 영상 테잎을 거꾸로 감듯 역순서로 흘러 지나갔다. 한번 걸어봤던 길이라서 그런지 처음에는 멀게만 보였던 길이 생각보다 짧게 느껴졌다. 익숙함은 역시 시간을 압축하고 단축시키는 묘한 능력이 있다.


볼사 궁전 앞에 도착하니 아직 20여분 넘게 시간이 남아 있었다. 지금 안으로 들어가 봤자 투어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지루함만 있을 듯하여 차라리 그 시간에 맞은편에 있는 엔리케 왕자 동상 주변의 광장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향해 가리키고 있는 엔리케 왕자의 동상. 포르투 도심의 한 중간에 그의 동상이 있는 것은 아마도 그가 포르투에서 태어난 만큼 이곳에서 더욱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임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미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있는 세 번째 아들이었기에 왕이 아닌 왕자의 운명으로 살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항로 개척이라는 자신의 모든 열정을 다해 바칠 수 있는 역할의 시작점이 되었다. 물론 그가 왕이 되었다고 해고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타고난 사람의 기질이 결국 그 사람의 운명을 어느 정도 만들어가는 기본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가 남긴 업적은 항로 개척이지만 개인적 삶의 측면에서 봤을 때, 요즘 사람들도 이르기 어려운 자아실현의 길을 걸으며 본인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그의 삶 자체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지 않을까 한다.


광장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얼추 10시가 다 되었다. 볼사 궁전 안내데스크로 가니 10여 명의 방문객이 한 곳에 모여 가이드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어 가이드가 별도로 없었기에 영어로 진행되는 가이드를 들어야 했고 투어 외에 자유 입장은 불가했기 때문에 이곳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나마 가이드 직원이 발음을 비교적 또박또박 천천히 말해줘서 아주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건물의 구조와 장식, 역사 등에 대한 설명과 함께 볼사 궁전의 소개 및 배경 설명이 시작되고, 내 머릿속은 알아들은 영어 단어를 분간하고 앞에서 보이는 장면들과 조합하여 나름대로의 결론을 유추하느라 이미 과부하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몇몇 설명은 놓쳤지만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주인공 찰리 채플린이 컨베이어 벨트 위의 나사를 조이는 장면처럼 겨우겨우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었다. 열심히 설명을 하는 가이드 직원의 분위기에 맞춰 모두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고 가끔 탄성도 지르기도 했다.


설명 중 확실히 이해한 것 중 하나가 이곳의 역사적 배경인데 포르투의 상업협회에 의해 지어져 최근까지 증권거래소 건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볼사 궁전을 둘러볼 때 흔히 떠올리는 그런 귀족적인 궁궐의 느낌보다는 청사나 저택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그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 듯했다.


메인 홀에서 시작한 투어는 여러 테마의 방들을 하나씩 돌아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중 기품 있어 보이는 목재 책상 하나가 창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조그만 방에 잠시 멈춰 섰을 때였다.

"이곳은 에펠의......"


에펠이라니. 에펠은 파리의 에펠탑을 설계한 사람이 아니던가? 가이드의 설명 중 뜬금없이 포르투에서 에펠의 이름이 나오는지 의아해하고 있을 때 같은 그룹에 있던 관람객 중 한 명이 옆에서 속삭이듯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방금 여기가 에펠탑의 그 에펠을 말하는 것인가요?"


나만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니었다. 물론 그녀나 나나 영어가 매우 유창했다면 애초에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았겠지만 - 아니면 아는 것도 짚고 넘어가는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일 수도 있겠다. - 말이다. 그나저나 내가 한국인인 걸 어떻게 알고 처음 본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인지 그 또한 의아했지만 아마도 손에 들고 있는 수첩에 적힌 한글을 봤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혹여나 아니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가이드의 설명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리액션을 하고 있었기에 확신 있는 말투로 대답을 해버렸다. 다행히 설명을 더 듣다 보니 정말 그 에펠이 맞기는 한 듯했다.


생각보다 에펠의 방은 볼사 궁전에서 비중을 크게 차지하지 않는 곳인지 스치듯 지나갔다. 사실 그곳은 그가 직접 머문 방이 아니라 그가 작업을 위해 포르투에서 머무는 동안 사용한 책상과 집기를 전시해둔 곳이었기에 사람들의 감흥을 끌어내지는 못하는 듯 보였다. 대신 투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아랍의 방'이라는 화려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이어 쏟아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에펠의 방이 더욱 감명 깊게 다가왔다. 포르투에는 에펠이 직접 설계한 '마리아 피아 다리'가 있다는 점과 포르투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의 작품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 루이스 다리를 처음 봤을 때 그것이 왜 에펠탑을 눕혀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투어가 끝나고 다 함께 1층 입구로 이어지는 계단길을 내려오면서 내게 질문을 했던 관람객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디가 가장 인상 깊게 느껴지셨어요?"


"음, 저는 에펠의 방이요. 포르투에서 에펠이라니 신기하지 않나요?"


그녀 또한 같은 생각을 했을까? 나 자신에게 물은 듯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에 왠지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순간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어 친근감 비슷한 그 어떠한 느낌을 자아냈고 그의 생각 그리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호기심을 조금씩 불러일으키며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게끔 만들었다. 볼사 궁전 밖으로 나올 때까지 우리는 투어 중 들은 설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남은 퍼즐을 맞추듯 각자 이해 못한 빈 공간을 채워나갔다.


그러다 길을 나서려고 할 때, 불현듯 그녀의 이후 계획이 궁금해졌다.


“이제 어디로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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