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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Nov 17. 2019

브런치 식사 중에 발견한 보물창고

Aviz cafe. Moreira da Costa.

한 번씩 소개팅에 나가서 종종 상대방과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침 식사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을 때가 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다니시나요?"


그냥 의도 없이 물어본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내 나이 때 소개팅은 대부분 사람들이 상대와의 결혼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질문에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신중을 가하게 된다.


"네, '아침을 챙겨 먹자.'는 주의라서 웬만하면 챙겨 먹고 다녀요."


사실 예전에는 아침을 챙겨 먹는다는 것이 건강을 챙기는 올바른 습관이라는 생각에 자신 있게 대답을 했었지만 세상에는 나와 다른 습관이나 가치관이 옳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나의 단호한 대답에 과연 사람들은 어떤 반응일지 떠올려보게 된다.


'유별나다고 생각할까?'

'쓸데없이 부지런하다고 생각할까?'

'혹시나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매일 아침밥을 챙겨줘야 하는지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 않을까?'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해서는 예전처럼 당당하게 답을 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아침 식사를 챙겨 먹는 것은 나에게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대방의 의견도 생각해볼 법한 나이가 된 것 같다.


아침 9시. 오늘도 '여전히 중요한' 아침 식사를 해결하려 이른 시간에 숙소를 나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텅 빈 거리에는 비둘기들이 부지런히 걸어 다니며 두리번두리번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음식점을 찾아 돌아다니는 나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것이 괜히 평소에는 없던 짠한 동정심마저 생기려 했다.


'AVIZ'


길을 걷다 보니 커다란 간판이 걸린 카페가 보였다. 건물 앞에는 야외테이블과 의자가 질서 있게 놓아져 있어 왠지 마음이 갔다. 결정적으로 더 나아 보이는 음식점을 찾고 싶은 것보다 당장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한 탓에 여기서 멈춰 서기로 했다.


조용한 카페 안에는 벽에 걸린 커다란 티비만이 아무도 없는 새벽 2시의 도로 신호등처럼 홀로 열심히 제 일을 하고 있었다. 햇볕이 들어오는 널찍한 창이 있는 테이블에 자리에 앉아 있으니 직원이 와서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메뉴 3 : 스크램블 에그 + 소시지 + 베이컨 + 토스트 + 오렌지 주스 + 카푸치노 (8.75 유로)'


가장 듬직해 보이는 브런치 메뉴를 시켰다. 곧 주문한 음식이 등장했고 소시지와 베이컨을 잘라 스크램블 에그와 함께 한 입을 입에 넣으니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Livreiros antiquarios'


창 밖 너머 맞은편에 책이 진열되어 있는 서점이 보였다. 간판에 적혀 있는 포르투갈어를 정확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 ‘antiq-’라는 생김새를 보아 오래된 책을 취급하는 서점인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고 향할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바로 저곳이다.'


식사를 마치고 반대편에 있는 서점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서점 안에는 정말 오래되어 보이는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진열된 책 표지에 적혀 있는 출판년도를 확인하니 1800-1900년대는 기본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조선시대에 인쇄된 책들이 너무 흔하게도 선반을 꽉 채우고 있는 셈이다. 서점이 아니라 고서 박물관 같은 느낌이었다. 많게는 몇백 년이나 된 책들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느껴본다는 것이 매우 신기하고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찾는 책이 있나요, 손님?"


서점의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멀리서 다가왔다. 이렇게나 오래된 책들이 많이 있는 것을 처음 본다며 감탄을 멈추지 않고 떠들어대자 아저씨도 신이 났는지 몇몇 책을 보여주며 이 서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곳은 그의 조부께서 고서적을 수집해온 것을 시작으로 1902년부터 3대째 서점을 운영해 오고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책을 찾느냐는 그의 물음에 시집과 철학책에 관심이 있다고 답하였더니 몇 가지 책을 추천해주었다. 책 내용을 전부 들어보고서는 1908년 출판한 포르투갈어 시집과 1885년 출판한 포르투갈어 철학서적, 그리고 1775년 파리에서 출판한 라틴어 철학서적 총 3권의 책을 바로 구입해버렸다. 가격도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었기에 빠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동양인 한 명이 와서 고서적에 관심을 가지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거기에 책도 여러 권 구입하니 주인아저씨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평소에 공개하지 않는 곳이 있는데 특별히 보여주겠다며 서점 안쪽에 있는 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가 갑자기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멈춰 섰다.


“맙소사......”


내가 계단 위에서 아래를 계속 보고 있자 아저씨가 아래에서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책에 쌓인 먼지가 매우 많아 호흡기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5분 정도밖에 못 있어요. 어서 내려와요."


계단을 조금 더 내려가니 오래된 종이에서 베어 나오는 특유의 냄새가 후각 세포를 자극하며 고서적으로 가득 찬 지하창고의 이미지를 더욱 극대화시키는 듯했다.


"여기에는 총 5만 권 정도 책이 있어요."


정말 박물관이 따로 없었다. 포르투에서 '해리포터'로 유명하다던 렐루서점 안을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그곳이 전혀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이곳이 가져다주는 감동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이제 여기도 월세가 너무 올라서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가야 할 상황이에요. 근데 이 많은 책을 다 옮기는 일도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고민이 많답니다."


박물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가치를 보관하고 있는 이곳이 월세 때문에 떠나야 할 정도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고 하니, 자주 찾아가던 맛집이 임대료 인상으로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껴졌던 아쉬움 비슷한 감정이 가슴 한켠을 메웠다. 우리나라 같으면 미디어에 몇 번은 소개되었을 법한데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제가 한국에 돌아가면 이곳을 많이 많이 알릴게요. 그리고 언젠가 포르투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 꼭 들를게요."


한 가족의 가업이자 개인의 사업일 수도 있지만 역사의 보존을 위해 힘쓰는 한 사람의 노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떠나기 전에 진심을 담아 그에게 말을 전했다.


그러자 그는 처음 나를 맞이하던 부드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젊은 친구. 꼭 한번 또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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