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화면 속 인물의 위치에 따른 메시지
<Zone of Interesst> 리뷰는 오랜 고심 끝에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ㅎ
일단은 워낙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에 섣불리 리뷰를 할 엄두가 안 나기도 하거니와 이미 워낙 다양한 리뷰가 존재하기에 너무 중복된 내용만을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가장 앞섰습니다. 그나마 조명해 보면 좋겠다 싶었던 부분은 영화의 제목입니다. 특히, 왜 'Zone'과 'Interest'라는 단어를 썼을까에 대한 고찰을 지속적으로 해보았으나 아직은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혹시 좀 더 생각이 정리가 된다면 리뷰를 고민해 보겠습니다.
대신, 우연히 추석 특선영화로 방영하는 것을 보게 된 <Past Lives>를 리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말 잘 만든 영화이고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러 부문에 걸쳐 후보작으로 오르기에 손색이 없더군요. 약간의 대진운이 따르지 않았고 지난 몇 년간 워낙 한국 영화의 강세가 이어졌기에 아카데미 입장에서도 다시금 한국 영화에 대해 큰 상을 주기에는 부담이 있었을 거라 짐작해 보며 타이밍 측면에서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린 송 감독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작품입니다.
<Past Lives>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주제는 '인연' 그리고 '윤회사상'과 같은 상당히 동양적인, 특히 불교에 그 근간을 두고 있는 사상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두 개념에 대한 고찰과 해석을 다루고 있죠. 허나 영화를 쭉 보며 제게 더욱 눈에 띄었던 주제의식은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들이 마주하는 불확실성과 절망감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이는 극 중 해외로 이민을 간 여주인공 나영과, 한국에 머물러 살아온 남주인공 해성의 대비되는 행보, 이들 각자의 자아,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영화적 장치들로 인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죠.
나영의 캐나다 이민이 결정되고 작별인사를 마친 후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두 주인공의 뒷모습을 나타내는 영화 초반부 장면이 흥미롭습니다. 나영은 파스텔톤으로 꾸며진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는 반면 해성은 색감이 실종된, 오히려 잿빛으로까지 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퇴장하죠. 꽤나 연극적인 연출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장면에서부터 두 주인공의 앞날이 암시되는 듯하죠.
이후 영화는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두 주인공이 각자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캐나다로 이민을 갔던 나영은 글 작가가 되어 꿈과 희망을 품고 뉴욕으로 다시 이주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햇살이 나영의 얼굴을 비추고 미소 짓는 나영의 표정과 합쳐지며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나타납니다.
반면 해성은 어떨까요? 스틸샷을 찾지 못해 연합뉴스 이미지로 대체했습니다만 대충 아래와 같은 느낌이죠.
여느 대한민국 남성과 같이 해성은 군입대를 하여 행군을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에서 흥미로운 포인트가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역광이라 인물들의 얼굴이 사실상 아예 안 보인다는 점, 가뜩이나 안 보이는데 감독은 주인공인 해성을 클로즈업 하거나 집중 조명해서 비추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행군하는 병사들 너머로는 아파트 단지가 보여 더 큰 현타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입니다. 다르게 해석을 하자면 확실한 자아를 찾아 주도적으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나영과 달리 해성은 시스템 속에 갇힌 채 독창적인 개인이 아닌 무리 속, 혹은 사회 속 "one of them"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이후에도 비슷한 대비는 이어집니다. 몇 장면을 더 들여다볼까요?
시차라는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나영과 해성은 각각 본인의 낮 시간에 영상통화를 하기도, 늦은 밤에 영상통화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지 시간에 관계없이 나영은 주변에 충분한 자연광 또는 인공조명을 갖추고 통화에 임하는 장면이 대부분인 반면에 해성은 어둠 속에서 오로지 컴퓨터 화면에서 나오는 빛(나영의 모습)에만 의존한 채, 혹은 작은 휴대폰 화면을 보며 통화에 임하죠. 확대 해석 하자면 나영에게 있어 해성과의 통화는 본인이 속해 있는 더 밝고 큰 세상 속의 일부이지만 반대로 해성에게는 건너편 화면에 비추어진 나영의 모습과 그녀의 주변환경이 더 큰 세계로의 창 역할을 한다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빛과 어둠의 대조는 다른 몇몇 장면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지죠.
해성이 상하이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장면과 뉴욕에 처음 도착한 장면에서 조차도 그는 본인의 주변 환경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항상 굳게 닫혀 있는 창문이 있고, 어두운 방 안에서 창문을 통해서만 화려한 바깥세상을 구경할 뿐이죠. 더 밝고 넓은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영은 어떨까요?
나영은 항상 빛과 함께 하고 있고, 그에게 세상으로 향하는 문은 열려 있습니다. 화면이나 창을 통해서만 세상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세상 속으로 뛰어든다는 점에서 해성과의 차이점이 명확하게 드러나죠.
나영이 남편을 만나게 되는 환경 또한 해성이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는 환경과 대조됩니다.
해성이 상하이에서 여자친구를 처음 만나는 장면을 보면 구도가 상당히 재밌습니다. 마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일행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둘이서만 남겨져 있는 상황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옆에 앉아 있긴 하나 동시에 따로 앉아 있고, 같은 방향을 보고 앉아 있으나 서로 응시하는 곳은 다릅니다. 아이러니하게 같은 방향을 향해 앉아 있는 두 사람이지만 해성은 나영에게 여자친구와 이런저런 "조건"이 맞지 않아 결혼은 힘들 것 같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죠. 나영과 해성이 각자 속해 있는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연애관과 결혼관의 차이 또한 극명함을 나타내는 대목입니다.
뉴욕에 도착한 해성은 비로소 나영과 마주한 이후에야 드디어 빛을 마주합니다. 컴퓨터 화면 너머 빛의 역할을 했던 나영을 현실에서 마주하자 해성의 세상이 빛으로 드디어 물들게 됩니다. 의미심장하죠. 그리고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회전목마 장면의 구도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장면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카메라 구도가 특이하죠. 촬영 실수인가 싶을 정도로 의도적으로 화면의 중심축과 회전목마의 중심축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특히 해성은 회전목마의 범주 안에서 정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죠. 오직 나영만이 신이 거듭됨에 따라 회전목마의 중심을 향해 이동합니다.
이미 여러 번 언급이 된 해석 내용이긴 한데 이 영화에서 회전목마는 윤회사항을 의미하죠. 해당 신에서 나영은 회전목마의 범주 안에 안착해 있는데 비해 해성은 위태롭게 걸쳐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마 동일한 윤회사상 안에서도 나영은 주도적으로 본인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 통제하고 있는 반면에 해성은 그렇지 못함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원의 중심에 위치한 나영은 보다 안정적인 반면, 원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해성은 원의 회전과 이동에 따라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휩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후에도 비슷한 화면 배치는 몇 번 더 이어지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다다라서야 해성인 다시 나영을 정면으로 응시한 채 화면 가운데 위치하게 됩니다. 작별인사를 한 후 두 주인공은 다시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각자 갈 길을 향하죠.
나영이 해성을 배웅해 주고 뒤돌아 집 방향으로 다시 걸어오는 길에 지나치는 간판들이 상당히 재밌고 의미심장합니다.
채 50미터가 되지 않는 거리이지만 나영의 집과 해성이 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차에 탑승하는 지점 사이에는 나영의 집을 기준으로 정체 모를 (제가 놓친 걸 수도 있겠지만) maple leaf(캐나다의 상징)이 그려진 간판이 하나 나오고, 거기서 좀 더 왼쪽으로 걸어가면 Dry Cleaners, 즉 세탁소가 나옵니다. 영화에서 나영은 본인이 한국을 떠나 캐나다를 거쳐 뉴욕으로, 두 번씩이나 이민을 간 후에야 지금의 삶을 얻었다고 설명을 하는 부분이 나오죠. 세탁소는 아시아계 이민 1세대들을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는 업종입니다. 나영은 해성을 배웅해 주기 위에 잠시 과거로 역행했던 것이죠. 뉴욕 본인의 집에서 캐나다의 상징을 거쳐,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상징과 같은 곳을 지나 해성의 승차 지점으로.... 반대로 다시 세탁소를 지나 maple leaf를 거쳐 다시 남편에게로 돌아옵니다. 나영의 이민 과정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는 것이죠.
잠시 과거를 방문했다 현재로 돌아온 나영은 남편의 품에 안긴 채 울다가 계단을 지나 집으로 올라갑니다. 영화 초반에 해성과 나영이 헤어지던 장면과 일맥상통하죠. 나영은 다시 계단을 오릅니다. 해성은 반대 방향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해성의 차량은 화면이 전환되자 해가 떠오르고 있는 뉴욕을 가로질러 가고 있고, 여기서 드디어 해성은 창문을 내리고, 가림막 없이 바깥세상을 마주합니다. 그토록 염원했던 나영과의 단 한 번의 재회를 이루고 나니 이제 과거를 지나 드디어 해성도, 온전하게 본인만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이토록 일관 되게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두 사람을 두고 인연을 얘기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그 비밀은 윤회사상에 있습니다. 회전목마처럼 회전하는 세상 속에서는 해성과 그의 여자 친구처럼 같은 방향을 향해 있으면 오히려 만날 수가 없습니다. 끝까지 평행 관계가 되는 거죠. 반면, 나영과 해성처럼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윤회사상이라는 원 안에서 그들은 언젠가 다시 만날 인연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생에서는 이 정도 사이에 그쳤지만 다음 생은 우리가 어떤 관계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해성의 영화 속 대사처럼.... 다음 overlap을 기대하며 현생에서의 인연을 고이 접어 마음속에 간직하겠다는 것일 수 있겠죠.
이래저래 참 잘 만든 영황입니다. 울림이 있었고, 뭔가 단순 인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청춘이, 한 인간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과 세상을 마주하는 과정, 그 속에서 직면한 과제와 어려움, 이민의 난관, 아이러니하게 이민을 가지 못 해서 마주하는 난관까지도... 두 번의 이민을 거쳐 뉴욕에서 정착한 나영이 결국 만나 결혼한 백인 남자도 마침 유대인이라는 점도 저는 개인적으로 재밌는 장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것은 맞지만 흔히 얘기하는 WASP - White, Anglo-Saxon, Protestant - 범주 안에는 들지 못해 나름 괄시를 받기도 하는 민족이며 교육관이나 생활력 등에 있어 한국 사람들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평가를 받기도 하는 민족이기에 이민을 두 번이나 갔지만 결국 완벽한 미국의 찐 주류는 아닌, 한국인과 다소 흡사한 모습을 한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는 설정이 재밌었습니다.)
이 모든 메시지를 생각하자면 다소 씁쓸한 면도 분명 있는 영화입니다만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 매우 고급스러운 기술을 썼기에 이 영화가 찬사를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고 셀린 송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추천드리는 바이며 보시며 메시지뿐만 아니라 빛과 화면 구도 사용을 주목해서 보시면 더욱 재밌게 감상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Till nex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