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슨 술을 마시는걸까...?
2010년대 들어 항일 그리고 독립운동을 했던 의인 분들을 다룬 컨텐츠가 유행처럼 쏟아져 나왔죠.
물론 그전에도 일제 강점기나 독립운동을 모티브로 한 컨텐츠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시기에 나온 컨텐츠들은 과거 컨텐츠 대비 분명한 차별점이 있었죠.
이전에는 독립운동 및 일제강점기라는 테마를 떠올리는 가장 먼저 엄습해 오는 감정은 슬픔, 답답함, 무기력함 등등 이었지 싶습니다.
사실이기도 하고요. 저러한 감정들이 수많은 저희 선조들이 당시 실제 느꼈을 감정들이죠.
허나 2010년도 들어서는 조금은 다른 tone and manner가 추가됩니다.
조금은 유쾌하면서도 통쾌하고, 상당히 스타일리쉬 하게 당시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컨텐츠가 많이 나왔고 이러한 현상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영화 <암살>, <밀정>, <아가씨>(어떤면에서는 분명 항일 정신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정도가 떠오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은 현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못 한, 뭔가 찝찝하고 달콤쌉싸름한 맛의 광복과 독립을 초월하여 통쾌함을 기반으로 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적립되는 역사관도 분명 의미 있을테니까요.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꼭 <Inglorious Basters -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같은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조금은 각색하더라도 이를 유쾌하고 통쾌하고 재밌게 풀어낸... 그 때 그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력을 자아내는.... 그런 항일/독립운동 영화가 꼭 나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윤동빈 감독님이 메가폰을 잡으셨으면 좋겠고 주연으로는 마동석, 하정우 배우님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영화 <군도>의 tone and manner를 가진 19금 일본 담그기 영화. 상상만 해도 짜릿하네요.
영화 <밀정>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비슷한 주제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분명한 차별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김지운 감독님의 특장점이 아주 잘 드러난 영화이기도 하죠.
미장센의 색체가 느와르 영화를 연상케 하면서 스토리텔링 또한 아주 훌륭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 할것도 없었고요.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한국형 Stylish Thriller 장르가 나온 듯 했고, 일제 강점기에 독립투사들과 밀정들이 벌인 일들은 이런 장르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소재였죠.
명장면과 명대사가 워낙 많지만 본 영화도 역시.... 최고의 명장면은 술과 함께 합니다.
<밀정>에서는 음주 장면이 (제가 기억하기로는) 총 세 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독립운동가 김우진(공유)과 일본을 위해 일하는 조선인 경감 이정출(송강호)이 서로 간을 보기 위해 양주(위스키 추정)를 들이키는 장면이죠.
두 번째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정채산(이병헌)과 김우진, 이정출의 낮술 신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영화의 클라이막스 직전에 등장하는 기차 식당칸에서 이정출이 생맥주를 마시는 장면입니다.
첫 번째 장면과 세 번째 장면은 상대방의 의도와 비밀을 파악해 내는 것이 주된 목적인 바 다소 긴장김이 흐릅니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인 셈이죠.
다만, 두 번째 장면도 어찌 보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일 수는 있겠으나 훨씬 더 유쾌하고 영업 술자리 성격에 더 가깝죠.
처음에는 긴장감이 흐르다가 나중에는 그냥 웃긴 장면이 되어 버리는.... 그런 형국입니다.
바로 그것이 이 장면의 참된 가치라고 볼 수도 있겠죠.
정채산을 잡으려는 자를 오히려 회유하고자 하는, 극딜 영업신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영업이 성공하기에 관객은 더욱 카타르시스를 느낄테고요.
안 그러신 분들도 있겠지만 많은 분들이 본인의 인생을 바꿨다고 평가할 수 있을만한 술자리가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죠. 이정출이라는 인물에게는 이 술자리가 그 의미를 가지기에 영화 전체를 봤을 때도 가장 중요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럼 역시나 이 장면을 보다 보면 궁금해 지는게 있죠.
저 분들 도대체... 무슨 술을 드시는거지?
장면을 회상해 보면 술을 엄청 큰 나무 통에 가득 담아 장정 둘이 들고 나오죠. 그러고는 작은 밥그롯 내지는 사발에 가까워 보이는 잔에 맑은 술을 "자!"라는 구령과 함께 나누어 담아 마시기 시작합니다. "고향 얘기나 실컷 하자"라는 정채산의 뭉클한 큐사인과 함께...
일부 커뮤니티 같은데서도 대체 저거 무슨 술이냐라며 토론이 벌어지고 여러 의견이 제시된 것을 봤습니다.
일부는 중국이니 중국술 아니겠냐라는 의견도 있고, 맑은 것을 보니 정종 같다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제가 가장 공감한 의견은 바로 동동주일 것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막걸리를 담그면 묵직한 부분은 저층으로 가라 앉고, 가볍 산뜻 맑은 부분만 위로 떠올라 있는 그 부분을 일컫는 술이 바로 동동주이지요.
등장인물들이 아무리 주당이고, 이게 아무리 픽션 영화라지만 중국술이나 정종을 사발에 담아 마시면 죽지 않을까요?
아님 아예 필름이 끊겨 기절해 있거나...
그리고 더욱 결정적인 힌트는 첫 술통을 비우고 나서 정채산이 담배를 물고 갈색 호리병에 담긴 (이건 진짜 중국술로 추정되는) 술을 또 내오는데 병과 함께 흔히 중국집에 가면 볼 수 있는 고량주 잔을 함께 내옵니다.
그간 마신 술은 고량주는 아니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바이죠.
술의 주종도 주종이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향 얘기나 실컷 하며 먹자라는 대사가 참 인상적입니다.
이 대사가 본 장면이 나머지 두 음주 장면과는 본질적으로 다름을 보여주고 있죠.
서로 대립관계 있는 사람들끼리 가지는 술자리가 아닌... 동포, 같은 조선인들끼리의 술자리이다라고 정채산이 마치 선언하는 바와 같죠.
이어지는 밤낚시 시퀀스에서도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이 이어집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채산이 본인의 시계를 이정출에게 건네며 "제 남은 시간을 이경부께 맡기는 의미입니다."라는 대사를 던질 때는 소름이 쫙 돋았었죠...
아마도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님께서 서로 시계를 맞교환 했던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지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대사가 이병헌 배우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 되어 더욱 울림이 있었던 듯 합니다.
두서 없이 썼는데 정리하자면 앞으로도 이런 소재를 한 영화가 더 나오고 오히려 한 술 더 떴으면 좋겠다, 밀정에서 낮술 장면에서 마시던 술은 동동주일 가능성이 높다, 이병헌은 멋있다... 정도가 되겠네요...
정말 stylish 하고 멋졌던 영화, <밀정>에 대한 썰을 이만 마칩니다.
Till nex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