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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orn and Whisky May 13. 2024

패왕별희

왜 항우와 우미인이 주인공일까?

[타 플랫폼에 예전에 올린 글이라 발행 시점과 시기적인 맥락이 어긋날 수 있습니다.]

승자가 아닌 패자를 사랑한 여인, 우희 역할을 하는 챙 데이 역할을 하는 장국영

모든 영화가 그렇겠지만 유독 나이대 별로 볼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저에게는 [패왕별희]입니다.

어렸을 때 어렴풋이 본 기억은 나지만 그 당시의 파급력은 미미 했지요.
장국영 배우가 얼마나 대단한지 체감하지 못 했던 나이이고 영화 감상에 풍미를 더해 줄 수 있는 중국 역사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1년여 전, OCN으로 기억합니다.
집에서 와인을 들이키던 중 새벽 1~2시 경 패왕별희를 방송해 주더군요. 무려 무삭제 감독판 디오리지널로다가....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끝까지 다 보고는 영화의 여운과 함께 일출을 맞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천만다행이도 다음 날 출근하는 평일이 아니었기에...)

본격적으로 영화 얘기를 하기에 앞서 잠시 중국 역사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삼국지연의를 비롯한 중국 사대기서도 그렇고 그 외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초한지, 열국지와 같은 중국의 소설들을 보면 다소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승자가 아닌 패자를 주인공 삼고 영웅화 한다는 점이죠.
흥미롭죠. 보통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고들 하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다룬 문학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허나 중국의 숱한 고전들은 승자가 아닌 패자에 더 공감을 하고, 또 이러한 소설들이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죠.
대표적인 예로 위, 오, 촉 중 가장 먼저 멸망한 촉나라의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등을 주인공 삼아 쓰여진 삼국지 연의가 있겠고, 비슷한 급으로 한나라 유방이 아닌 초나라 항우를 더 멋지게 그려낸 초한지가 있겠습니다.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초한지에서 유방 보다 항우가 훨씬 더 멋지게 다가왔고 저 뿐만 그러진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누가 봐도 초한지의 주인공은 천하통일을 이루는 유방이 아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항우와 한신....

어찌보면 중국은 워낙 대륙이기에 아무리 천하통일을 이룩한다 한들 이에 순응하는 세력만 있으리란 법은 없죠.
이는 지금의 소수민족 갈등이나 홍콩의 상황만 보더라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패왕별희]의 핵심 모티브가 되는 경극의 스토리는 천하통일을 위해 유방과 대립하던 초패왕 항우가 패전을 앞두게 되자 그의 부인인 (정확히는 후궁이죠. 영화의 영제도 Farewell My Concubine이니까요) 우희 (aka 우미인)가 마지막 위로 차원에서 노래를 헌사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핵심 줄거리입니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오자면 여러 훌륭한 요소들이 있겠으나 결국... 기승전 장국영 아닐까요?
30대 중반에 다시 보니 그 전에는 몰랐던 얼굴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중 대표적인 배우가 바로 공리 누님이더군요.
나름 리즈 시절 미모를 무기 삼아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장국영 형님이 압승을 해버립니다...

저 새초롬한 표정 무엇... 전설적인 투샷... 아름다움의 극치

훗날 [적벽대전]에서 조조 역할을 멋지게 해내는 장풍의 배우와 장국영 배우 간 호흡도 좋았으나 저는 개인 적으로 장국영과 공리의 투샷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들이라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저 미모와 흠잡을데 없는 연기력으로 평생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비극적인 인물을 그려냈기에 더욱 명연기가 탄생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장국영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 챙 데이는 강압적으로 본인의 성별을 외면해야 했고, 이후에는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외면 당하고, 역사로부터 외면 당하고, 본인이 애지중지 키운 양자 격의 후배에게도 외면 당하고, 결국에는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며 그 중에서도 마지막에는 결국 본인을 되돌아 봐 준 단 한 사람 앞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항우 앞에서 생일 마감했던 우희의 스토리와 정말 많이 닮아 있죠.
챙 데이라는 개인의 스토리에 영화는 중점을 두고 있기는 하나 한편으로 그를 통해 격동적인 시대의 흐름에 따라 외면 받고 왜곡되는 예술과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는 하고자 했던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 상에 따라 두 주인공이 경극 공연을 할 때 달라져 있는 관중들의 모습도 하나의 재미 포인트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술가들은 결국 그들을 보며 환호하던 관중들 앞에 무릎을 끓고 참회를 강요 받습니다.

패왕별희 영화 자체도 워낙 훌륭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 개봉 이후 정확히 10년 뒤 장국영 배우가 생일 마감하게 되어 그로 인해 이 작품도 더욱 회자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나 외면을 받기도, 관심이 왜곡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본인의 정체성 또한 대중들에 의해 왜곡 되었던 명배우...
지금 살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참 궁금해지는 배우.
예전에 모습을 갈수록 찾아 보기 힘들어지는 듯한 한 때 자유로웠던 "홍콩"의 배우...
이래저래 극중 스토리와 현실이 오버랩 되며 장국영 배우의 필모 중에서도 거의 탑으로 꼽히는 영화로 거듭난 작품인 듯 합니다.

해마다 여전한 장국영 배우의 추모 열기

역사 속 패자의 편에 섰던 여인을 연기한; 식어버린 과거의 영광 속에 머물러 있는 비운의 경극 배우를 연기한; 날이 갈수록 대륙속으로 잠식 되어 가는 도시의 자유로운 나날들을 대표했던 배우 중 하나였던 그 분을 기억하며 글을 마무리 지어 봅니다.

정말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 패왕별희, 기회가 되신다면 처음으로 혹은  다시 한 번 관람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Till nex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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