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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청개구리 Aug 09. 2021

14_날 것과의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 전원주택

도시청년의 귀농 이야기

“인간이 그렇게 한 겹이야?"

출처: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대사이다.

사회화 속에 숨겨진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이보다 울림있게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


돌이켜 보면 전원주택을 짓는 과정은 여러 겹을 걷어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토지를 걷어내고 지면을 단단히 하고 다시 그 속을 파고 들어 내부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전원 주택이 자리잡을 지형지물의 속성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자연만 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땅을 벗겨내고 다시 다지면서 집을 지어나가며 선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여러 겹 뒤에 숨겨진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볼 기회가 참 많다.


나는 해외 여러 국가에서 생활을 하면서 온갖 다양한 유형의 돌아이(?)들과 부대끼며 생활했지만 전원 주택 건립에서 만나는 인간 유형은 또 달랐다. 그리고 자연이라는 날것과의 싸움을 해서 그런지 전원 주택 건축은 여러 겹으로 덮인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간의 본성을 알고 싶다면 토목/건축 일에 종사하거나 혹은 함께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성선설과 성악설을 모두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성선설은 인간은 본래 선하다고 말한다. 앞서 원주민의 텃세 부림을 한 꼭지로 삼아 전원 생활의어려움을 이야기했지만 어디 가든 좋은 사람은 있다. 건축 초기 맨땅만 있을 때 적지 않은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가까운 건물의 시설을 이용하는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가끔은 그들의 집에 잠잘 곳까지 내어주는 등 우리의 정착을 지원해 주었다. 자연 재해로 복구 공사가 시급할 때 재빠르게 도와준 지역 건축 업자 분들도 계셨다. 지역 공무원들, 특히 연령이 어린 공무원들은 공평하게 빠르게 공무 수행을 해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고마운 분들이 참 많았다.


반면 여러 겹의 인격을 보여주며 성악설에 힘을 실어준 사람들도 있다. 지역의 건축 개발 업자와 함께 이상한 요구를 하는 퇴직한 지역 공무원도 있었고, 땅을 두고 온 마을과 소송에 휘말리는 특정 종교의 지도자도 보았다. 지역사회의 꼰대는 도시에서 보이는 직장 꼰대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체면을 유난히 중시하는 시골 꼰대는 표리부동한 간신배의 모습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선거철은 지역 사회 구성원들의 인격을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시골은 큰 이벤트가 없어서 그런지 선거 때마다 지역사회가 산산히 분열된다. 평소에는 체면 치례를 열심히 하다가 한 표를 위한 치열한 공방 속에서 욕망이 만들어내는 원초적인 언행과 행동을 보고 있다면 성악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다양한 대의를 내세우고 종교적 신념을 앞세우지만 결국 인격의 여러 겹을 벗겨보면 끝에는 결국 땅 한치라도 얻고, 작은 합의금이라도 얻어 챙기려는 목적만이 보일 뿐이었다. 공직에서 일했다거나,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은 개인의 인격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 종이위에 그려진 세종대왕과 신사임당은 양반 체면과 종교적 신념보다 강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족이 지어올린 전원 주택은 날(Raw)것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전리품이라 생각한다.


자연과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면 전원 주택을 지어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완공하는 시간까지 건축주는 자연과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모습은 생각보다 다양하기에 여러 맛을 보게 될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예측 못한 불쾌함을 경험할 수도 있고, 기대하지 않은 먼 곳에서 신선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전원주택건립의 과정은 날 것과의 연속적이며 주기적인 전쟁이었다. 원생의 자연은 거칠었고, 원초적인 인간은 달콤씁쓸했다.


그리고 완공된 전원 주택은 날(Raw) 것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전리품이었다. 날 것의 그대로의 자연을 정복하는 것도 있었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과도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집이 튼튼하게 올라가는 동안 나의 멘탈도 성장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우리 집은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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